“밤새 고문을 당했습니다. 같이 고문을 받던 친구가 죽었어요. 하도 무서워서 검찰청 비상계단을 통해 도주했어요.”
“어떻게 고문을 받았어요?”
“검찰 수사관들이 바닥에 눕혀놓고 양다리를 들어 머리 뒤쪽으로 꽉 눌러 접었어요. 그리고 다리 사이의 낭심을 잡아 뜯었죠. 친구가 그런 고문을 받다가 죽었어요.”

“저보고 조사실 바닥에 누워서 손발을 들고 있으래요.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정말 굴욕감이 들더라구요.”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구치소에서 온몸이 구렁이 껍질같이 얼룩이 졌고 멍투성이인 의뢰인을 본 적이 있다.
“검찰청 지하실 바닥에 엎어져서 깔렸어요. 뒤에서 수사관 두 명이 몽둥이질을 하고 발로 짓이기더라구요. 밤새 얻어맞았어요. 같이 잡힌 친구는 뼈가 부러졌어요. 우리 상처들이 드러날까봐 검사는 3주간 외부인 접견 금지 조치를 내렸어요.”
그 후 법정에서 그가 담당 검사에게 말했다.
“나는 밤새껏 맞고 자백했지만 나보고 검사님을 때려주라고 하면 5분 만에 없는 것도 실토하게 할 수 있어요.”
그 말에 검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번은 검사 앞에서 조서를 꾸미는 검찰 수사관에게 물었다.
“왜 검찰공무원이 됐어요?”
“저는 원래 문공부 공무원이었어요. 거기서는 ‘갑’이 아니라 ‘을’ 역할만 했는데 검찰 수사관이 되니까 정말 좋아요. 방에 어떤 높은 놈이 들어와도 내 앞에서 머리를 굽히고 절절매니까.”
검찰청이 없어지고 중대범죄수사청이 생겼다. 검찰 출신들이 대거 중수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는 없다. 중수청에 고문을 했던 검찰 수사관들이 스며들 위험성은 없을까. 검찰이 왜 공중분해 됐을까. 고문만이 독이 아니었다. ‘권력의 개’가 치명적인 독이었다. 내가 경험한 사실이 있다. 2016년 2월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에 나선 전직 경찰청장이 뇌물죄로 구속이 됐었다. 구치소에서 죄수복을 입은 그가 말했다.
“출마하려면 청와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괘씸죄에 걸린 것 같아. 선거 당일 압수수색을 하고 구속을 하는 거야.”
변호사인 나는 담당 검사를 찾아갔다. 그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하는 건 ‘정무’지 수사가 아닙니다. 청와대에서 구체적으로 뇌물죄로 잡아넣으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게 안 되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다 뒤져 보라고 했어요. 매일매일 결과를 청와대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선거가 끝나자 뇌물죄 부분은 무죄가, 정치자금법 위반은 일부 유죄가 선고됐다. 그 후 그 전직 경찰청장은 갑자기 죽었다.
검사는 옷을 벗으면 변호사가 된다. 그래도 청와대의 명령에 꼬리를 내렸다. 변호사 자격이 없는 중수청 수사관은 어떨까. 위에서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압력을 거부할 수 있을까. 거부하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그들 위의 행정안전부 장관은 어차피 정치인이다. 검찰 수사의 독립을 지킬 강력한 장치가 검찰청법에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의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
중수청장이 방파제가 될 수 있을까.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가 먹혀들까. 남의 머리를 숙이게 하는 맛을 본 사람은 조직을 옮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소리는 아니다. 소수라도 흙탕물을 일으키는 데 충분하다.
일제강점기 친일파 경찰을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쓰다가 역사가 얼룩졌다. 군 특무대의 무자비한 하사관들이 중앙정보부에서 오명을 남겼다. 검찰개혁은 맞다. 그러나 검찰 출신이 희망하면 시험 없이 중수청 수사관이 되는 건 문제다. 전문성 때문이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독은 걸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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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journalis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