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고려인 사업가 '장 회장'과 수감 중인 옛 동업자 '박 안톤'(가명). 이들은 한때 식품사업을 함께한 평범한 동업자로 보였다. 이후 두 사람 관계는 틀어져 법적 소송전을 벌였다. 그런데 두 사람 관계를 되짚어가면 △러시아 마피아 유착 △총기 은닉 △범죄 피의자 밀항 △자금세탁 △현직 경찰관과의 석연치 않은 관계 등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힘든 의혹과 사건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일요신문은 안톤의 진술과 통화 녹취 및 휴대전화 메시지, 금융 관련 자료, 사정당국 작성 문건 등을 토대로 ‘장 회장-박 안톤’ 두 사람 주변에서 2020년부터 벌어진 사건과 의혹 전말을 서울과 부산, 김해 등지에서 9개월 동안 추적했다.
[연재 순서][일요신문] 아파트 1층 공동 현관으로 들어선 러시아 마피아 두목 뒤로 괴한이 나타났다. 다른 마피아 조직에서 고용한 살인청부업자였다. 벙거지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괴한은 소음기 달린 권총을 겨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준은 정확했다. 마피아 두목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선박 37척을 보유하며 러시아 극동 해역 수산업을 주무르던 마피아 두목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마피아의 심부름꾼 ①] 총기와 밀항, 그리고 돈세탁
[마피아의 심부름꾼 ②] 2020년 고려인 난투극, 사라진 한 사람
[마피아의 심부름꾼 ③] "술 상자에 돈 넣어 경찰에 바쳤다"
[마피아의 심부름꾼 ④] 난투극 도망자 밀항, 경찰관은 알고 있었다…녹취 속 그날 대화
[마피아의 심부름꾼 ⑤] 은행서 막힌 수십만 달러, 주인은 누구?
[마피아의 심부름꾼 ⑥] 고려인 성공신화 장 회장, 은둔하는 까닭
[마피아의 심부름꾼 ⑦] 대게 수입 독점 '대게왕' 검은돈 어디로…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드넓은 극동 해역에서 러시아 중앙 정부의 공권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나우모프 바실리뿐만 아니라 여러 마피아들이 수산업에 뛰어들었다. 마피아들은 뇌물로 국경수비대, 세관은 물론 주의회 의원, 주지사까지 매수했다. 협력을 거부한 공직자에겐 테러 위협이 가해졌다.
마피아 두목을 겨냥한 암살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나우모프 바실리는 수산물 사업 이권을 노리는 경쟁 마피아 조직에게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는 1998년 총기 습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이후 위협을 피해 러시아에서 일본, 뒤이어 한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끝내 경쟁 마피아 조직의 집요함을 이겨내지 못했다. 부산에서 총격으로 피살됐다.
나우모프 바실리 피살 사건이 알려지자 부산이 국제 범죄 온상이 됐다는 우려가 나왔다. 나우모프 바실리 총격범은 몰래 들여온 총기로 범행을 저지른 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유유히 출국했다. 피살당한 나우모프 바실리는 위조 여권을 사용해 한국을 여러 차례 드나든 것으로 확인됐다. 러시아 내무부 장관은 나우모프 바실리가 2002년 5월 사할린 국경수비대 부사령관 암살을 사주한 용의자라고 밝혔다.
부산에서 암약하는 러시아 마피아 실태는 정치권에서도 언급됐다. 2003년 10월 부산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강래 의원은 “평균 60여 척의 러시아 선박이 감천항에 정박해 있는데 주변 철조망으로 총기 등 밀반입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세관의 장비나 인력이 부족해 너무 허술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2006년 11월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원혜영 의원은 “현재 국내에 러시아 마피아와 일본 야쿠자 등 43개 해외 범죄 단체와 크고 작은 370여 개 국내 범죄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며 “외국 수산물 거래에서 마약 밀반입, 부동산 거래 등 점차 합법적인 탈을 쓴 채 기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름은 A 경감. 박 안톤(가명)은 러시아 마피아 장 회장 지시로 A 경감에게 2020년 돈을 세 차례 전달했다고 고백했다. 안톤은 2020년 6월 20일 경남 김해 도심에서 벌어진 고려인 집단 난투극에 가담한 러시아 마피아 밀레닌 알렉산드르가 밀항으로 출국했다는 사실도 A 경감에게 털어놓았다. 안톤의 말대로라면 20여 년 전 러시아인 범죄를 수사하던 A 경감이 언젠가부터 러시아 마피아와 유착한 셈이다.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나우모프 바실리 피살 사건은 세월이 흐르며 잊혔다. 하지만 안톤은 장 회장 등 합법적 사업가로 가장한 러시아 마피아가 국내에 여전히 암약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안톤은 장 회장이 밀수한 총기를 갖고 있다는 점을 특히 걱정한다. 총격 사건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2020년 6월 20일 고려인 난투극 현장에도 총기가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마피아는 표면적으로는 대게 등 수산물 수출로 합법적인 사업가 행세를 하고 있다. 대게는 러시아 수입 의존도가 높다. 수입 대게 중 러시아산은 99.9%로 사실상 100%다. 한국에 수입되는 러시아 대게는 매년 8000~9000톤(t)으로 2000억~3000억 원 규모다. 대게는 차가운 바다에 주로 서식해 러시아 극동 해역 깊은 곳에서 주로 잡힌다. 지구 온난화로 수온이 상승하면서 국내에서 잡히는 대게 물량은 급격히 줄고 있다.

올레크 칸이 선두 사업자로 올라서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2005년 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이후 그는 자신의 살인을 청부한 사람이 수산업 경쟁자 발레리 프히덴코라고 의심하고, 2010년 발레리 프히덴코 살인을 청부했다.
올레크 칸은 사업이 가장 번창했던 2018년 러시아 극동 해역에서 사업체 20여 개를 운영하며 ‘대게 왕’(Crab King)으로 불렸다. 그가 확보한 대게 어획 할당량은 1만 9000톤에 달했다. 올레크 칸의 사업 방식은 나우모프 바실리와 비슷했다.
올레크 칸은 러시아 당국에 신고한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대게를 한국, 일본 등지에 팔면서 검은돈을 축적했다. 파나마 등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유령회사를 거래 중간에 끼워 넣는 방식이었다. 할당량을 초과한 대게를 어획해 팔기도 했다.
올레크 칸이 축적한 재산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2023년 올레크 칸을 러시아에서 배당 소득이 48번째로 많은 인물로 뽑았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올레크 칸과 그의 가족이 배당금으로 받은 돈은 총 168억 루블이었다. 약 3000억 원이다.
올레크 칸은 한국에서도 활동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한 부동산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올레크 칸은 2007년 경남 양산시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던 한국 법인에 41억 원을 빌려줬다. 이후 그는 부산항에 자리한 국내 해운 기업 B 사 사내이사를 2011년 2월~2018년 1월 지냈다. 그는 2012년 B 사 지분 85.4%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했다. B 사는 2017년 3월 심규언 강원도 동해시장과 대게 공급 업무협약을 맺었다.
심 시장은 동해 러시아 대게 마을 조성을 역점 사업으로 삼았다. 동해항을 통해 수입되는 러시아 대게를 활용한 먹거리 사업을 지역 특화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였다. 심 시장 측은 러시아 대게 공급처로 B 사를 점 찍고 2016년부터 B 사에 대게 공급 협약 체결을 제안했다.
그런데 B 사는 2017년 대게 보관 창고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토지 소유주와 분쟁을 겪었다. 이 때문에 동해시에서 사업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다. 이후 B 사는 2018년 12월 해산했다. 2018년 12월은 러시아 국영방송 프로그램 ‘체스니 데텍티프’에 올레크 칸의 대게 밀수출 등 각종 의혹이 심층 보도됐던 시기다.
러시아 국영방송 기자가 부산에 있는 B 사 사무실을 찾아간 장면도 당시 보도에 나왔다. 장 회장은 올레크 칸 조직 핵심 인물로 거론됐다. 러시아 검찰은 올레크 칸 주거지와 사업체 압수수색에 나섰다. 올레크 칸을 잡지는 못했다. 올레크 칸은 이미 러시아 밖으로 달아난 뒤였다.
올레크 칸은 러시아 밖을 전전하던 2020년 3월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코로나19 지원 성금으로 1억 2025만 원을 기부했다. 그는 부산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잡지에 “한국은 제2의 고향”이라며 “부모님도 안산에 살고 계시고 현지 한국인 친구들도 많다”고 말했다.

국내 수사기관은 2020년 6월 경남 김해에서 벌어진 고려인 집단 난투극 배후 인물이 올레크 칸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안톤은 한국에서 지내던 올레크 칸이 곧 국제 수배 대상이 된다는 소식을 A 경감을 통해 전해 듣고 황급히 출국했다고 회상했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국내 사정당국의 ‘국내 러시아 마피아 활동 사항’ 문건에도 올레크 칸은 주요 인물로 거론된다. 문건에 따르면 올레크 칸은 2011년 한국 영주권을 취득하고 2019년까지 약 10년간 국내 유통되는 대게 수입을 거의 독점해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다. 문건에서 장 회장은 올레크 칸 조직의 한국 수괴로 적시됐다.
올레크 칸은 이제 세상에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사람이 됐다. 그의 변호인단은 올레크 칸이 2023년 2월 영국 런던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올레크 칸이 사망했으니 올레크 칸에 대한 형사 재판도 종결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할린에서는 올레크 칸 시신이 한국에 묻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러시아 검찰은 올레크 칸이 사법 처리를 피하려고 위장 사망 쇼를 벌였다고 반박했다. 러시아 법원은 올레크 칸이 사망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러시아 법원은 피고인이 불출석한 상태로 진행하는 궐석 재판을 이어갔다.
결국 올레크 칸은 살인 청부 혐의로 2024년 4월 연해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17년을 선고 받았다. 또 올레크 칸은 범죄조직 결성, 밀수, 탈세 등 혐의로 블라디보스토크 프룬젠스키 지방법원에서 2025년 12월 징역 24년을 선고 받았다. 2014년~2019년 대게 3400톤을 불법 수출한 혐의가 인정됐다.
올레크 칸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민사소송도 당했다. 수산물 밀수출로 국가 수산 자원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였다. 러시아 법원은 올레크 칸이 정부에 3580억 루블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현재 환율로 약 5조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러시아 법원은 올레크 칸이 실소유한 한국 법인 C 사를 판결문에서 중요하게 적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올레크 칸 소유 수산업 회사들은 수산물 45~100%를 C 사에 수출했다. 매출보다 많은 금액을 C 사에 장비 구입이나 선박 수리비 등 명목으로 지출하기도 했다. 러시아 법원은 “실제 장비 구입이나 선박 수리비를 초과하는 자금 세탁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한국 법인이 러시아 마피아의 자금 세탁에 활용된 것이다.

A 경감은 장 회장과 올레크 칸의 관계에 대해 묘한 대답을 내놨다. A 경감은 “장 회장과 올레크 칸은 고향(사할린)이 같다. 지인 관계 아니었겠나”라며 “장 회장과 올레크 칸은 부산에서도 같이 살았다. 둘이 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른다”고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밝혔다. A 경감은 “장 회장이 올레크 칸과 아는 사이라고 해서 뭔가 장담할 수는 없다”며 “러시아 당국에서도 장 회장에게 문제가 있었으면 한국 경찰에 이야기를 해줬을 텐데 공식적인 건 없었다”고 말했다.
남경식·김지영·주현웅·최희주 기자 ngs@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