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시즌 한화는 류현진의 복귀, 노시환, 문동주 등의 성장으로 ‘리빌딩 종료’를 선언한 바 있다. 개막 직후 7연승으로 리그 선두를 달렸으나 곧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이에 구단은 개막 이후 약 2개월 만에 감독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고 김경문 감독을 선택했다.
김 감독은 누구보다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었다. 두산에서는 ‘왕조’의 기틀을 만들었다. 유망주 활약이 이어지는 모습에 ‘화수분 야구’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다. NC 지휘봉을 잡고서는 신생팀으로서 빠르게 팀을 1군 무대에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고서는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겼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다만 프로 무대에서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만을 경험했다.
한화는 김 감독의 경험에 기대를 걸었다. 장기간 이어온 암흑기를 끝낼 인물로 낙점했다. 김 감독이 부임한 2024시즌 당시 팀 순위는 8위였다. 분위기를 수습해 한때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놓고 경쟁하는 등 가능성을 보였다. 다만 뒷심 부족으로 결국 8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부임 2년 차에는 반전을 만들어냈다. 한화는 신구장(대전 한화생명볼파크) 개장과 함께 신바람을 냈다. 팬들도 연일 매진 행렬로 화답했다. 10연승 이상의 연승 구간을 두 번이나 만들어 내며 선두 싸움을 이어갔다. 한때 2위와 5.5게임차로 1위 자리에 올라 정규리그 우승이 유력해 보이기도 했다. 문현빈, 문동주, 김서현 등 유망주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김 감독 개인에게도 의미 있는 이정표가 남았다. 2025년 8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전 승리로 개인 통산 1000승을 달성한 것이다. 이전까지 김응용, 김성근 감독만이 쌓아 올린 기록이었다.
한화 반전의 중심에는 외국인 투수들이 있었다. 폰세는 29경기에 등판해 17승 1패, 평균자책점 1.89로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와이스 역시 30경기에서 16승 5패, 평균자책점 2.87을 기록하며 원투펀치를 이뤘다. 류현진과 문동주도 함께 강력한 선발 로테이션을 구축했다. 이들 4인이 합작한 승수만 53승, 탈삼진은 716개였다.
한화의 1992년 이후 첫 정규리그 1위 달성은 시즌 종료가 임박해 좌절됐다. 남은 2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면 1위에 오를 수 있었으나 1무 1패를 기록해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SSG 랜더스와의 143번째 경기는 9회까지 앞서다 역전을 내줬다. 구원으로 나선 투수가 흔들리는 가운데 김 감독의 아쉬운 투수 운용이 지적을 받았다.
결국 플레이오프부터 가을야구에 나서게 됐다. 삼성을 시리즈 전적 3-2로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하지만 체력적 우위를 점한 LG 트윈스에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김 감독 커리어 통산 다섯 번째 준우승이었다.

7년 만에 다시 오른 가을야구 무대, 구단 창단 이래 최다승(83승) 기록 등으로 한화 팬들은 오랜 암흑기의 종료를 바라봤다. 김경문 감독 역시 우승의 꿈에 한발 다가서는 듯했다.
김 감독에게 한국시리즈는 특히 남다른 무대였다. 앞서 우승을 눈앞에 두고 좌절이 반복됐다. 다섯 번째 도전에서도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 계약 마지막 해인 2026시즌, 다시 절치부심할 수밖에 없었다.
시즌을 앞두고선 적극 투자에 나섰다. FA 시장 ‘최대어’로 불리던 강백호를 영입했다. 외국인 투수 원투펀치가 메이저리그로 떠난 공백을 공격력으로 메워보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우승은 곧 먼 이야기가 됐다. 의도한 대로 공격력 강화에는 성공했다. 팀 홈런 1위(176개)에 오르는 등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마운드 약화를 극복하지 못했다. 시즌 중반까지 중위권을 오갔다. 가을야구 진출권 경쟁을 이어갔으나 버텨내지 못했다. 김 감독은 반등에 실패했다.
한 시즌 만에 팀이 무너진 배경은 마운드 붕괴였다. 폰세와 와이스가 나가고 자리를 채운 외국인 투수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화가 자랑하던 문동주, 김서현, 황준서 등 투수 유망주들은 부상, 체력 등 각자의 문제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준우승 과정에서 핵심 불펜으로 기용되던 김범수, 한승혁 등이 각각 FA, 보상선수 등으로 팀을 떠났으나 적절한 보강이 이뤄지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으로선 계약 기간을 모두 채웠다는 점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시즌 초반부터 경질설이 돌기도 했으나 최종전까지 자리를 지켰다. 과거 두산과 NC에서는 시즌 중에 팀을 떠나야 했다. 한화 구단은 리그 최고령 감독의 계약 기간을 지키면서 예우했다.
#결국 발목 잡은 투수 운용
2년 반가량을 보낸 한화에서 김경문 감독이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요인으로는 투수 운용 실패가 지적을 받는다. 이전부터 야수 육성에는 강점을 보이지만 투수 운용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는 평가를 받아온 지도자다.
김 감독은 선수에게 강한 신뢰를 보이는 성향을 가진 지도자로 분류된다. 가능성을 확인하면 선수에게 꾸준히 기회를 준다. 젊은 선수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방식이다. 한화에서도 적지 않은 선수들이 궤도에 올랐다.
다만 부작용도 존재한다. 특히 투수 운용에서는 좁은 선수 기용 폭이 문제로 작용한다. 특정 자원에게 중요한 순간을 반복해서 맡기거나 부진한 선수를 계속 기용하는 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한화에 부임해서는 투수 코칭에 일가견이 있다는 양상문 투수코치와 의기투합했다. 과거와 유사한 투수 운용이 지적을 받았으나 2025시즌에는 좋은 결과가 나오면서 비판을 피해갔다.
쌓였던 문제는 2026년 터져 나왔다. 특히 선수단 피로가 누적된 8월, 3승 15패로 극도의 부진을 보이며 포스트시즌에서 멀어져 갔다. 리드를 잡고 있다가도 불펜에서 역전을 허용하는 경기가 늘었다. 공교롭게도 김 감독의 한화는 1년 전인 2025년 8월에도 부진했다.
단기전에서의 투수 운용 또한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2025년 정규시즌 막판, 결정적인 역전패로 정규리그 우승이 좌절됐다. 이어진 포스트시즌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향방에 중요한 기점이었던 4차전, 한화는 역전패를 허용했다.
야구계 일부에서는 양상문 코치와의 갈등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투수 교체를 놓고 이견을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한화는 결정적인 순간 이해하기 어려운 교체 타이밍으로 경기를 내주는 경우가 있었다.
결국 한화에서도 김 감독의 명암이 드러났다. 선수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팀을 상위권으로 올리는 능력을 증명했다. 반면 주요 선수들의 부진을 극복하는 대처는 보여주지 못했다.
김 감독은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한화에서도 지휘봉을 놓게 됐다. 한화에서 받아든 최종 성적표는 182승 184패 9무.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에서 각각 준우승을 기록했다.
김 감독은 올림픽 금메달, KBO리그 통산 1000승을 달성하고도 한국시리즈 우승만큼은 끝내 이루지 못한 과제로 남았다. 지휘한 세 구단을 모두 한국시리즈로 올려놨다. 그러나 한화에서도 결국 ‘무관’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한 채 팀을 떠나게 됐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