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직원들의 뇌물수수 사건 여파가 국세청 수뇌부와 재계까지 번지고 있다. 일요신문 DB
특히 <일요신문> 취재 결과 현재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몇몇 대기업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사정칼날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국세청 최고위직으로까지 수사 칼날이 향하고 있는 정황도 포착됐다.
메가톤급 후폭풍이 예상되고 있는 국세청 직원 뇌물수수 사건의 이면을 파헤쳐봤다.
경찰이 ‘국세청 직원들이 뇌물을 받고 특정업체 세무조사 편의를 봐줬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첩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해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밀히 사전 조사를 끝낸 경찰은 1월 초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소속 직원을 비롯해 국세청 직원 6~7명을 소환 조사했다.
서울청 조사1국은 주로 대기업 법인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곳이다. 조사를 받은 이들 중 일부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대부분은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1국 직원들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왔다고 해 물어보니 뇌물수수라고 하더라.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나 있는 상태”라고 털어놨다.
국세청 직원들에게 금품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곳은 중견 식품업체 S 사와 해운업계에서 탄탄하기로 유명한 H 사다. 경찰은 S 사와 H 사가 지난 2010년 세무조사를 받을 당시 국세청 직원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상 ‘뇌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뇌물 수사의 핵심은 대가성 입증인데, 시기적으로 보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무조사를 잘 봐달라고 돈을 주지 않았겠느냐. 두 회사의 세무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살펴보고 있다”면서 “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이 부분에 대한 확인에 주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금까지의 수사 상황으로 미뤄볼 때 이번 사건 또한 여타의 다른 뇌물수수 사건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언론매체들이 이 사건에 대해 집중적인 보도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정당국 주변에선 이번 사건이 상당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흘러나오면서 경찰의 수사 추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단순한 뇌물사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새 정부 탄생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실적 달성에 목이 말라 있는 경찰이 이번 사건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했던 경찰 인사들 역시 “수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국세청 실무 직원들 몇 명 잡자고 한 것이 아니다. ‘몸통’으로 접근 중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경찰이 겨냥하고 있는 최우선 ‘타깃’은 다름 아닌 대기업이다. 현재 경찰은 뇌물수수 사건과는 별개로 H 사와 일부 대기업 간의 부당한 거래를 파헤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3~4곳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데 모두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 중공업 회사인지라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H 사가 비용 과다계상, 납품가격 조작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뒤 이를 사업을 발주한 대기업 계열사에 상납하는 고리가 파악됐다”고 귀띔했다. 경찰은 H 사가 국세청 직원들에게 준 돈의 출처가 비자금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경찰이 H 사와 대기업 간의 불법 행위를 파악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는 배경엔 경찰 수뇌부들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게 중론이다. 경찰은 지난 1월 13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나 동반 성장을 저해하는 대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해 적극 수사하겠다. 대기업 관련 내사를 확대하고 수사 인력을 보강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경찰은 지능범죄수사대와 외사과 등에서 이뤄지는 대기업 수사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조직을 보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검찰이 주도했던 대기업 수사를 경찰도 적극 맡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번 국세청 뇌물수수 사건 뒤에 감춰져 있는 대기업 비리 수사에 ‘각별한’ 시선이 쏠리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따라서 이번 경찰 수사 과정에서 국세청 ‘윗선’이 드러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조사한 국세청 직원 외에도 뇌물을 받은 이들이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소환조사를 받은 국세청 직원들이 뇌물로 받은 돈을 상급자에게 전달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국세청 고위직들이 세무조사 당시 S 사나 H 사로부터 ‘다이렉트’로 돈을 받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실무 직원들이 수천만 원씩을 받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액수는 더욱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 측은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이라 아무런 할 말도 없다.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런 와중에 경찰과 국세청 안팎에선 이번 사건이 국세청 내부의 ‘파워게임’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국세청은 이현동 청장(경북 청도)을 필두로 TK(대구·경북) 지역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차기 청장 후보로 거론되는 조현관 서울청장의 경우 대구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 청장과 같은 경북고-영남대 출신이다. 주요 지방청 조사국장 역시 대부분 TK 출신들이다. 따라서 국세청에 대한 수사가 위로 올라갈수록 ‘주류’인 TK 출신들이 상처를 입게 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국세청 인사에서 소외돼 불만을 품고 있던 비TK 출신 중 일부가 정권 교체를 앞두고 이 청장을 비롯한 주류세력을 흠집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리정보를 흘렸을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새정부 출범 앞두고 재계 바싹 엎드린 사연 ‘우리가 동네북이야’ 요즘 재계는 죽을 맛이다. 새 정부 탄생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재계 때리기’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은 물론 관세청, 공정위 등 관련 기관들도 앞 다퉈 대기업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이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통상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면 바싹 엎드리며 눈치를 보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정도가 심하다. 한 군데가 아니라 사방에서 압박해 오니 각 기업들에서 대응할 인력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사정당국의 이러한 행보는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공약 및 중소기업 우대 정책이 반영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권 교체를 앞두고 개혁 대상에 올라 있는 각 기관들이 박 당선인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대기업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손을 보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조그만 기업 아무리 잡아도 티가 안 난다. 그러나 재벌은 다르다. 확실하게 박 당선인의 눈에 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경찰은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대기업 경제사범에 대한 단속 및 근절에 적극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각 지방 경찰청 등 일선엔 대기업 수사를 위한 정보 수집을 지시한 상태다. 이러한 경찰의 움직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검찰 역시 몇몇 대기업들을 수사하기 위해 기초 자료 수집에 한창이다. 새로운 검찰총장이 취임하는 대로 대기업들을 겨냥한 대대적인 사정 드라이브를 구사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인수위 업무보고 때 2005년에 폐지됐던 ‘조사국’과 같은 부서 설치를 보고했다. 이곳에선 대기업 내부거래를 집중 단속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 역시 이에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대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질세라 관세청도 올해 대기업의 관세 탈루 및 외화 유출 등을 적발하는 데 총력전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