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열린 창원 LG와 고양 오리온스의 경기. 창원 LG는 성의 없는 경기 운영으로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사진제공=KBL
# 성의 없는 경기 운영
지난 12일 프로농구 구단들은 난리가 났다. KBL이 10개 구단의 감독, 선수, 관계자들에게 발송한 공문 한 장 때문이다. 여기에는 “매경기 최강의 선수를 기용해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통해 선수들의 노력, 땀, 열정 등이 팬들에게 잘 전달돼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최고의 감동을 선사해 줄 것을 독려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일요신문>은 지난 1월 20일 ‘프로농구 순위경쟁 불편한 진실’이라는 기사를 통해 비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중위권 순위 경쟁의 문제점을 진단한 바 있다. 요지는 이렇다. 올해 10월에 개최되는 신인드래프트에는 국가대표 센터 김종규, 제2의 김선형으로 평가받는 김민구(이상 경희대) 등 대어급 유망주가 등장한다. 10년 대계(大計)를 위해 1년 농사쯤은 포기할 수 있다는 정서가 시즌 전부터 팽배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창원 LG가 집중포화를 맞았다. LG는 올스타 휴식기까지 공동 5위 그룹에 1경기차 뒤진 8위였다. 포스트시즌 진출 마지노선은 6위로 LG는 충분히 6강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리그 정상급 센터인 로드 벤슨을 헐값에 팔아치워 논란을 일으켰다. 6강 진입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설상가상으로 6강 경쟁팀인 부산 KT와 고양 오리온스전에서는 성의없는 경기 운영으로 일관해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LG와 KT의 경기가 열린 지난 2일 창원실내체육관에는 한선교 KBL 총재가 있었다. 대한농구협회 회장 선거 운동차 방문한 자리였지만 그곳에서 순위 경쟁의 불편한 진실을 몸소 느꼈다. 사실상 고의 패배 의혹을 인정한 KBL의 결정은 한선교 총재의 단호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프로농구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 만큼 자칫 승부조작으로 비칠 수도 있는 고의패배 의혹을 뿌리뽑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전주 KCC는 일찌감치 6강 진출 경쟁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진제공=KBL
고의패배 의혹의 중심에는 LG가 있다. 하지만 일부러 패한 적은 없다고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LG는 지난 13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삼성전에서 3쿼터까지 접전을 벌이다 4쿼터에 갑자기 무너져 결국 26점차로 완패했다. KBL이 공문을 발송한 다음 날이다. 현장 관계자들은 “오늘만큼은 LG가 최선을 다한 것은 확실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경기 후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김진 감독에게 “요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맞냐”는 등 날선 질문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이 자리에서 김진 감독은 “나름 지금 있는 자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팬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최근 경기 운영에 대해서는 “벤치의 실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선수 교체에는 체력이나 전략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팬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하다. LG뿐만이 아니다. 시즌 초반 무성의한 경기 운영으로 500만 원 벌금을 부과받았던 전창진 감독의 부산 KT 역시 팬들이 “일부러 떨어지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는 구단이다. 최근에는 원주 동부마저 6강 경쟁을 포기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전주 KCC는 시즌 전 샐러리캡 하한선에 못 미치는 선수 구성을 해 일찌감치 경쟁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선수들은 일부 구단의 행태를 두고 “성의 없이 경기를 운영하는 티가 많이 난다”며 수군대고 있다. 몇몇 선수들은 프로의 본분을 망각한 채 큰 판을 짜는 구단과 감독을 향해 “진정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된다”는 쓴소리도 했다.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프로농구는 프로스포츠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KBL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LG와 KCC가 샐러리캡의 최소 충족 기준인 70%를 채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허락해 준 책임은 KBL에 있기 때문이다. 공정 경쟁의 틀은 이때부터 깨졌다. 향후 순위 경쟁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도 많다. 연맹이 의혹을 인정한 만큼 앞으로 경기 운영을 바라보는 시선이 삐딱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이제 승부처에서 장면 하나하나를 두고 의심하게 될 텐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 대안 찾기는 가능한가
다수의 구단 관계자들은 “고의로 내려가려는 구단의 잘못도 크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제도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4개 구단은 드래프트 1순위 지명 획득 확률로 각각 23.5%씩을 얻는다. 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지는 못한 4개 구단에게는 각각 1.5%씩 돌아간다. 확률 배정을 전면 재조정하는 방안이 해결책이 될까? KBL이 의견 수렴에 나섰지만 해답 찾기는 어렵다. 하위권 팀에게 높은 확률은 주는 것은 전력평준화를 위해서다. KBL이 출범 때부터 일관되게 유지해온 정책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다만, 제도 개선을 통해 각 구단이 최선의 선수 구성을 하도록 만들 수는 있다. 미국프로농구(NBA)는 샐러리캡 하한선이 무려 85%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 구단은 모자라는 금액만큼을 리그 사무국에 벌금으로 내야 한다. 현재 KBL 규약에는 샐러리캡 하한선을 채우지 못한 구단을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2의 LG, KCC가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른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