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춤 골퍼’ 제임스 한은 쇼맨십을 갖춘 것은 물론 유머감각도 뛰어나 기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제임스 한은 한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오클랜드에 뿌리를 내려 현재도 이곳에서 정착하고 있다. 골프채는 네 살 때 쥐었다. 부친(한병일)이 오클랜드 공항 근처에서 골프 연습장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형 톰 한도 프로 지망자였으나 중도에 하차했다. AT&T 페블비치 프로암, 노던트러스트 오픈 대회에서 동생의 가방을 메고 캐디를 맡았다.
휴매나 챌린지 대회 기간 동안 제임스 한은 기자들의 집중 취재 대상이었다. 사실 첫날, 특히 루키가 선두로 나섰을 때 ‘반짝세’로 과소평가된다. 그러나 기자실 인터뷰에서 제임스 한의 유머감각은 단연 돋보였다. 분위기가 생소한 루키라는 사실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유머로 기자실을 압도했다. 형 톰 한은 페블비치 대회 때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영혼이 자유롭다”고 동생을 평가했다. 한국말이 어눌한 제임스 한은 항상 웃는 표정을 짓는다.
우승을 거두지 못하고도 기자들의 집중 취재대상이 됐던 까닭은 PGA 투어로 승격하기 전 굴곡이 심했던 삶의 궤적 탓이다. 꿈의 무대로 진출하기 전까지 2003년 프로로 전향해 코리안 투어, 캐너디언 투어, 2부리그 웹닷컴 투어를 전전했다. 명색이 프로였지만 수입이 적어 백화점 노스트럼에서 여자구두를 팔기도 했다. 제임스 한은 “옛날 고생에 대해서 불만은 없다. 여자 구두를 팔았을 때의 옛날 얘기는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 오기 전까지 많은 직업을 경험했다. 그것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나의 꿈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언젠가 PGA 투어에서 활동할 기회가 올 것으로 굳게 믿었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제임스 한은 이민 가족이었지만 다소 안정된 삶을 살았다. 골프연습장을 운영한 부친은 아들에게 골프와 학업을 병행시켰다. 제임스 한은 서부의 명문 버클리대학 졸업생이다. 대학에서는 미국사와 광고학을 전공했다. 광고학을 전공한 탓에 핵심을 찌르는 짧은 문장 구사가 탁월했다. 부친은 나이 든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상으로 엄격했다. 미국 기자가 제임스 한에게 스윙코치가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이때 제임스 한은 “데이비스 러브 3세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부친이 유튜브를 통해 데이비스 러브 3세의 폼을 보고 스윙을 지도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스윙코치로 유명한 부치 하몬, 데이비드 레드베터의 20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을 봐 그들도 자신의 스윙코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미디어들은 제임스 한을 영혼이 자유로웠던 리 트레비노와 곧잘 비교한다. 밑바닥 생활을 거쳐 전설로 우뚝 선 트레비노는 PGA 투어에서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정평이 나 있다. 멕시칸계 미국인인 트레비노는 골프를 하기 위해 캐디를 했다가 프로로 전향해 통산 29승을 거둔 레전더리다.
노던트러스트 오픈에서 만난 제임스 한은 “요즘 돈도 많이 벌고 팬들도 나를 알아봐줘서 행복하다. 지금 나의 인생은 정말 좋다(Life has been so good)”라며 특유의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인생이 즐겁다는 제임스 한에게 2부 투어에서의 고생은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 제임스 한은 오는 8월이면 아버지가 된다.
LA=문상열 마이너리포트 기자
‘루키 라이벌’ 이동환 vs 제임스 한 엘리트 vs 마이너 출신 ‘흥미’ 이동환 제임스 한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을 웹닷컴 투어에서 활동했다. 지난해 웹닷컴 상금랭킹 5위를 차지하면서 올해 PGA 투어 무대로 승격했다. 고진감래다. 지난해까지는 웹닷컴 투어 상위 25명이 PGA 투어 카드를 확보했다. 제임스 한은 지난해 6월 웹닷컴 투어 렉스 호스피털 오픈 우승으로 생애 처음 메이저 대회 US오픈에 출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첫 번째 메이저 대회 경험은 컷오프 탈락의 쓴 잔이었다. 이동환은 엘리트코스를 밟고 PGA 투어에 진입했고, 제임스 한은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승격한 프로라고 보면 된다. 선수의 장기적인 경력을 고려하면 2부리그를 거친 뒤 PGA 투어로 진입하는 게 오히려 좋다. 우승에 대한 경험도 있기 때문에 위기관리 능력이 돋보인다. 마스터스 챔피언 버바 왓슨, 잭 존슨 등이 웹닷컴 투어 출신들이다. Q스쿨은 1주일 페이스가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이동환은 거만하지 않으면서 자신감이 넘친다는 인상을 준다. 가정교육도 잘 받은 예의바른 청년이다. 요즘 젊은 선수들한테선 잘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인터뷰를 해도 가식이 없고 매우 진솔하다. 유머감각도 갖췄다. 아쉽게 지난 1월 소니오픈 때 하와이 숙소에서 자다가 왼쪽 어깨를 눌린 게 초반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5개 대회에 출장해 두 번 컷오프에서 탈락했다. 아직은 기대한 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제임스 한도 엄격한 부친 밑에서 성장한 데다가 명문 대학을 나온 이른바 지덕체를 겸비한 선수다. 시즌 초반 페이스는 제임스 한이 앞서고 있다. 하지만 PGA 투어는 장기레이스다. 아직은 누가 낫다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둘의 의상착용을 보면 제임스 한이 오히려 시골스럽고, 이동환은 매우 화려해 누가 미국에서 사는지 구분이 잘 안 된다. 문상열 마이너리포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