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랜드 정영삼(오른쪽)과 KCC 강병현의 경기 모습. 사진제공=KBL
# 군 입대 동기는 곧 나의 스승
지난해 2월 9일 고양 오리온스와의 홈경기에서 21점을 기록하며 원주 동부의 승리를 이끈 슈터 이광재는 경기 후 기자회견실에 입장하자마자 울산 모비스 소속 함지훈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광재는 “지훈이가 복귀해서 인터뷰를 하게 되면 내 이야기를 꼭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안하더라”며 웃는 얼굴로 입담을 풀기 시작했다. 그 내용이 흥미로웠다.
이광재는 “지훈이가 나와 함께 특훈을 한 덕분에 슛이 정확해졌다고 말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지 않아서 내가 대신 해야겠다. 우리 둘이 따로 연습을 많이 했다. 지켜보니 지훈이는 원래 슈팅 능력이 좋았다. 함께 특훈하면서 지훈이 슛이 많이 늘었다. 지훈이는 나를 복덩이라 부른다”며 즐거워했다.
이광재와 함지훈은 2010년 상무 입대 동기다. 그동안 서로 다른 대학과 프로 구단에서 뛰는 코트의 동료였다면 상무에서는 끈끈한 전우의 정을 나눴다. 함지훈은 연습 시간에 이광재의 장점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광재도 흔쾌히 스승의 역할을 자처했다. 이광재는 자타가 공인하는 정상급 슈터. 함지훈의 외곽슛은 그렇게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올해 2월에도 상무에서 병역 의무를 마친 선수들이 대거 프로농구 코트로 돌아왔다. 정영삼(인천 전자랜드), 강병현(전주 KCC), 차재영(서울 삼성), 기승호(창원 LG) 그리고 김명훈(원주 동부) 등 5명의 선수가 다시 원 소속구단의 유니폼을 입었다.
코트 복귀를 앞두고 만난 기승호는 “상무에서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흥미로운 답변을 했다. “개인 연습을 많이 했다. 특히 개인기가 좋은 정영삼, 강병현 선수와 1대1을 많이 했다. 또 옆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이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정영삼과 강병현은 돌파력과 외곽슛을 겸비한 선수들로 리그 최정상급 슈팅가드로 손꼽힌다. 다양한 기술을 보유했다. 기승호는 군 입대 전까지 공격보다는 수비로 더 많이 알려진 선수였다. 기승호는 군 복무 기간 동안 입대 동기들의 장점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LG 복귀 후 매 경기 두 자릿수 득점 행진을 달리며 팀에 기여하고 있다. 복귀 두 번째 경기였던 고양 오리온스 전에서는 2008년 프로 데뷔 후 자신의 한 경기 최다 기록인 30점을 퍼붓기도 했다. 공수를 겸비한 선수로 크게 성장해 돌아온 기승호의 모습을 LG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동부 이광재(오른쪽)가 모비스 함지훈의 수비를 뚫고 슛을 던지고 있다. 사진제공=KBL
모비스는 지난 시즌 함지훈의 군 복귀를 계기로 단숨에 우승 후보가 됐다. 6강 플레이오프를 가볍게 통과했고 4강 무대에서 정규리그 챔피언 동부에 밀리지 않는 승부를 펼쳤다. 올해는 정영삼과 강병현이 복귀하자마자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우승에 도전해야 하는 전자랜드는 정영삼이 봄의 해결사가 되어주기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
군 제대 선수의 가세는 신인선수의 입단과는 급이 다른 임팩트를 남긴다. 준비된 선수이기 때문이다. 프로 감독은 제대를 앞둔 소속팀 선수에게 미리 팀에 필요한 부분을 준비할 수 있도록 귀띔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상무는 대회에 출전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전국체전과 농구대잔치, 세계군인농구선수권 대회 등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무대가 제한적이다. 그러나 군복을 입은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러하듯이 2년의 시간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차분히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허재 KCC 감독은 강병현을 두고 “여유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군 제대 선수들의 맹활약에는 이훈재 감독의 지도 철학이 밑바탕으로 깔려 있다. 이훈재 감독은 “상무에서는 농구 외에도 군인으로서 하는 일이 많다. 또래 선후배들과 같이 먹고 자고 지내면서 희생 정신과 배려심을 배운다. 그게 팀워크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상무에서 자신감을 얻고 가는 선수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군 복무를 하는 기간 동안 선수는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이름을 알리기는 어렵지만 잊히는 것은 빠른 요즘 세상이다.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고 싶어 하는 것은 프로 선수의 본능이다. 그러한 의지가 군 제대하자마자 불꽃을 튀게 한다. 대학교에 다니다 입대한 학생은 복학한 첫 학기에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뽐내며 입대 전과는 다른 학점을 받아올 때가 많다. 그와 비슷한 경우다.
경우는 다르지만 김태술(안양 KGC인삼공사)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기간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한번은 안양 홈 경기장을 찾았는데 팬들이 지나가던 김태술을 붙잡았다. 김태술은 내심 속으로 ‘살아있네~’를 외쳤다. 자신을 잊지 않고 알아보는 팬에 고마웠다. 그러나 전혀 생각 못한 질문이 들어왔다. 김태술을 붙잡은 팬은 “여기 매점이 어디에요?”라고 물었다. 김태술이 망치로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강한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빨리 잊히는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 ‘돌아가자마자 나를 각인시켜야겠다’. 1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져야 하는 모든 선수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