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쌍등배에서 4연승을 한 신예 김채영 초단. 그의 아버지는 김성래 4단으로 국내 두 번째 부녀 프로기사다.
중국 장쑤성 정옌시에서 열린 제3회 황룡사쌍등배에서는 한국 소녀 김채영이 4연승 소식을 전해왔다. 김채영은 1996년생, 2011년 입단, 올해 덕수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간다. 작년, 재작년에 헝가리에서 바둑을 보급하고 돌아온 김성래 4단(50)이 아빠다. 권갑룡 8단(56)-권효진 6단(31)에 이어 국내 두 번째 부녀 프로기사이며, 두 살 아래 동생 김다영도 프로입단을 꿈꾸고 있는 바둑 가족이어서 세계 최초 3부녀 프로기사가 탄생이 지금 초읽기에 들어가 있다.
황룡사쌍등배는 한-중-일 여류프로들의 힘겨루기 승발전. 김채영은 한국 1번 주자로 나서 2월 19일부터 23일까지, 첫날은, 중국 선발로 출전한 강완의 재중동포 송용혜 5단(21)의 대마를 잡는 것으로 스타트를 끊고, 이튿날엔 일본의 선봉 오사와 나루미(37)와 피 말리는 접전 끝에 반집을 건졌다. 오사와는 이번 대회 최고령이며 그동안 국제무대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었으나 균형 잡힌 기량은 만만치 않았다.
계속해서 김채영은 중국의 천이밍 2단(21), 일본 관서기원 소속으로 방송에서 바둑프로를 진행하는, 미모의 이이시 아카네 2단(31)을 물리쳐 4연승을 기록한 후, 자기보다도 한 살이 어린 열여섯 중국 위즈잉 2단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내려왔다. 5연승에 실패했지만, 김채영은 황룡사쌍등배에 앞서 연초에 있었던 한중교류전에서 중국 여류와 겨루어 7연승을 올렸는데, 그걸 포함하면 중국 여류에게는 9연승을 기록한 것. 이를 지켜본 중국 팀 남자 기사들은 김채영을 가리키며 “서봉수 9단 이후 최고로 무서운 중국 킬러가 등장했다”고 짐짓 호들갑을 떨었다. 김채영의 선전에 누구보다도 흐뭇해한 사람은 물론 바둑 길잡이면서 스승이기도 했던 아빠다.
“기대 이상이어서 기쁘고 고맙지요. 대개 입단 직후에는 성적을 냅니다. 상승세라는 것이 있거든요. 그게 얼마나 지속하느냐가 문제지요. 그런데 채영이는 입단 직후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제가 서른넷, 늦게야 입단했지요. 그래서 기대를 걸었는데…뭔가 후련해진 기분입니다. 프로기사는 승부끼가 제일 중요한데, 승부끼도 점점 보이고… 성격은 좋은 편입니다. 저하고요? 저하고는 바둑을 안 둡니다. 어릴 때 바둑 가르치면서 제가 몇 번 크게 혼낸 일이 있습니다. 그게 지금도 마음에 걸려 있어서 그런지…^^”
김채영 다음으로 위즈잉이 일본의 오쿠다 아야 3단(25), 한국 김혜림 2단(21)을 연파, 3연승을 올리고 1차전이 끝났다. 일본은 변함없이 약세고, 결국은 한-중 대결이다. 우리도 지난해에는 1승도 못하고 일패도지했고 우리 선수들은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달아오른다”면서 투지를 불사르고 있다. 우리는 박지은 9단(30), 문도원 2단(22), 최정 3단이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위즈잉과 리허 5단(21), 왕천싱 5단(22)이 남았다. 피차 만만한 상대는 없다. 그중에서도 왕천싱은 요주의 인물. 지난해 무려 8연승, 지난 대회는 왕천싱의 독무대, 왕천싱을 위한 마당이었다.
황룡사쌍등배는 우리가 주최했던 정관장배의 후신인데, 정관장배는 흥행 성적이 아주 좋았는데도 왜 갑자기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2011년 벽두 제9회 정관장배에서 우리 새내기 1장 문도원 2단이 무려 7연승으로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리를 흥분시켰던 기억이 새롭다. 문도원 전에, 2000년대 중반에는 이민진 7단(29)이 고정 멤버로 출연하면서 5연승, 3연승 등으로 ‘정관장배의 여신’이란 별명을 얻었다.
잘나가던 기전이 어느 날 후원회사 수뇌부가 바뀌고, 수뇌부가 바둑에 관심이 없으면 돌연 사라지곤 하는데, 정관장배도 그런 경우인지. 어쨌든 무책임한 일이다. 성원하던 팬들에 대해서는 결례다. 대신 중국이 바통을 넘겨받아 재미를 보고 있다. 황룡사는 절 이름이 아니다. 중국 청나라 시대 국수급 바둑 고수의 이름이다.
이광구 객원기자
제14회 농심배 3차전 백 천야오예 9단 흑 최철한 9단 오늘 소개하는 기보는 최철한-천야오예의 일전. 최 9단이 백. <1도>는 중반의 막바지 모습이다. 형세는 팽팽했다고 한다. 백1로 우하귀에 붙여가자 흑A로 받지 않고, 흑2로 반발한 장면. 결론부터 말하면 흑2는 무리였고, 따라서 백1은 승착 1호가 되었다. 흑2는 다음 <2도> 백1~흑6을 기대한 것이었겠지만, 최 9단은 <3도> 백1로 부딪쳐 갔다. 흑2에는 백3, 안에서 살겠다는 것. 흑은 4로 끊고 6-8로 대응했는데, 검토실은 고개를 흔들었다. 잘될 것 같지가 않다는 것. <4도> 백1-3으로 넘어가는 수가 있는 것.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흑4-6 때 백9로 넘어가고 만 것은 최 9단이 형세가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자중한 것이란다.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면 <5도> 백1-3으로 잡으러 가는 수도 있었다는 것. 흑4에는 백5가 좋은 응수. 다음 흑A는 백B로 환격. 다만 이후 조금 복잡한 구석이 있고 시간도 없으므로 안전책을 택한 것. <3도> 백1-3 때 흑은 그때라도 <6도>처럼 백을 살려주어야 했다고 한다. 알맹이를 전부 빼앗긴 모습이어서 허망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래야 그나마 훗날을 도모해 볼 수 있다는 얘기. <7도>는 종반의 입구. 좌상귀 흑1은 프로들이 선호하는 실리의 수. 그러나 지금은 이게 마지막 패착이었다고 한다. 백2가 기민했고, 거기서 백6으로 중앙을 둘러싸으면서 승부의 윤곽이 분명해졌다는 것. 보통은 ‘중앙보다 귀’지만 지금은 귀보다 중앙이었다는 것. 게다가 우변에는 아직도 백A로 파호하면 흑B로 잡으며 살아가야 하니 백C의 큰 패도 남는다. 그냥 백D로 치며 넘어가는 수도 있다. 흑은 <8도> 1로 중앙을 삭감하는 것이 먼저였다고 한다. 이랬으면 조금은 더 긴 승부였다는 것. 이광구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