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관 인사청문회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의 찬반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유승민 국방위원장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원안은 이한구 원내대표(왼쪽)와 황우여 대표. 일요신문 DB
상황이 고약해졌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유 위원장이 야당을 설득해 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 또 통과시킨다면 ‘박근혜 울타리’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것이요, 반대로 야당의 뜻대로 청문회 셔터를 올리지도 못하고 김 후보자가 낙마하면 ‘박근혜 맨’이라는 문패를 영원히 내려놓아야 할 것이라는 해석에 있다. 유승민의 선택에 대한 한 정치권 인사의 진단을 이랬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 정두언 같은 인물은 건전하고 건강한 당을 위해 꼭 필요하다. 지금의 집권 여당에서 굳이 꼽으라면 유 위원장밖에 없다. 박 대통령에 얹혀 비단길로 갈 생각을 버리고 가시밭길을 걷는다면 보스로 올라설 기회가 될 것이다. 고난의 길이지만 사는 길이다. 지역구민과 국민이 어떤 생각인지만 보고 가야 한다.”
유 위원장은 이슈메이커로서 존재감이 크다. 과거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대화할 때는 한계를 느낀다”고 지적하면서 박 대통령의 불통 문제에 불씨를 지폈고, 앞서 “박 위원장이 잘못된 보좌를 받아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박 대통령 주변 인물에 대한 검증 국면이 지난해 대선 정국에서 계속됐다.
유 위원장의 이런 지적들이 제대로 된 고언이라는 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두 달 동안 입증되면서 그의 체급이 한층 높아졌다. 유 위원장은 예전에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박 전 대표와 나의 관계는 상하, 주종, 고용주와 피고용주 관계가 아니다”라며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했고 도와드렸다”고 밝힌 바 있다.
왼쪽부터 최경환 의원, 김재원 의원
먼저 지난해 5·15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움직임이 주목을 받는다. 정치권에서는 그에 대해 무색무취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대선정국,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귀에 들어올 만한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대통령직 인수위가 아마추어리즘, 아카데미즘에 빠져 있을 때에도 애써 외면했다는 지적을 낳았다. 박 대통령이 친정체제를 구축하는데 그만한 인물이 없다는 게 정설. 그러니 내년 5월까지는 대표 임기를 다 채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황 대표가 박 대통령만 오롯이하는 지도력을 보여줄 땐 당 대표 이후의 자리는 찾기 어려울 것이란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아직 정치를 잘 모르는 초선들에서부터 황 대표에 대한 비토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당의 존재감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오는 4월 재보선이나 10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원치 않는 결과를 불러온다면 황 대표가 조기 퇴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근혜 최측근으로 통하는 최경환 의원이 방향키를 어떻게 움직일지도 눈길을 잡아끈다. 신설될 국회 미래창조과학위원장 자리를 탐내는지, 5월에 있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전해 원내 수장으로서 대통령을 여의도에서 보좌할지 관심사다. 최근 최 의원이 ‘최경환 키즈’를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원내대표 자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사퇴한 뒤 두문불출했던 최 의원은 여자프로농구 총재로서 간간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난 1월 자신의 지역구인 경산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WKBL) 올스타전에 먼 거리를 마다치 않고 새누리당 일부 초선들이 참석하면서 “세를 불리는 모양”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이 자리엔 S, H, L, L, P 의원이 참석했다.
지난해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에 내정됐다가 하루 만에 물러난 김재원 의원은 정중동하고 있다. 이메일을 통한 ‘김재원의 아침편지’가 재가동됐고, 그의 장기인 ‘TV·라디오 출연 정치’도 재개된 것이다. “박 당선인이 대통령을 하려는 것은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다가 혼쭐이 난 그지만 여전히 대통령 탄생 이전 ‘정치인 박근혜의 집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 정치권 인사는 “김 의원은 박 대통령의 약점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 중의 하나다. 쉽게 내칠 리 없다”고 평가했다.
왼쪽부터 이재오 의원, 정몽준 의원
5월에 물러나는 이한구 원내대표는 이미 시험대의 말미에서 판단을 잘해야 할 것이란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지난해 19대 국회가 열린 직후 정두언 체포 동의안 부결로 원내대표 사퇴 선언을 했던 그는 슬쩍 자세를 바꿔 지금껏 원내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경북(TK) 정치권의 좌장으로서 ‘TK 역차별’에 대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지역구 내에서 “별로”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4선임에도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교환과 거래, 협상’의 묘를 살리지 못해 원내 수장으로서 이미지도 말이 아니다. 그가 야당의 목소리를 얼마나 들어주면서 새누리당과 새 정부의 요구를 녹여내느냐에 따라 앞길이 달라질 것이란 이야기가 있다.
그런 와중에 이재오 의원은 개헌 카드를 통해 새 정부 힘 빼기에 나서고, 정몽준 의원도 “당 지도부는 야당만 설득할 것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도 설득해야 한다”고 호통을 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새누리당은 당권을 놓고 비박계와 친박계, 그리고 친박계 내부에서 암투가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선우완 언론인
‘식물 여당’의 미래 “이대로면 내년 6월 지선 필패” “지나치게 편향된 사람이라는 지적에 동감합니다. 객관성을 잃은 사람이라는 데 대해서두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48%의 국민이 어떤 생각을 할지 걱정됩니다.”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인 한 중진 의원이 윤창중, 김행 청와대 대변인 내정을 놓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말이다. 윤창중 대변인에 대해 “두 달짜리 인수위 대변인으로선 참을 만했는데 새 정부의 ‘입’으로서는 부적격한 인사”라고 한 정치권 인사도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대변인 인선에 대한 논평이 없다. 아직 반기를 들 시기가 아니라는 뜻인지, 할 말이 없다는 제스처인지 해석이 분분하지만 절반의 국회를 장악한 건강한 여당의 모습은 아니라는 게 정치권 호사가들의 이야기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집권 여당의 뉴스가 ‘실종상태’라고 진단했다. 인수위 때에는 국민적 관심이 거기에 쏠렸기 때문이라지만, 청문회 정국으로 국회에 공이 넘어온 지금에는 여당이 생산하는 이슈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의 구상이면 여당이 100% 실현해줘야 합니까”라는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새 정부의 방패막이로서의 방어 이슈에만 골몰해 존재감을 잃고 있다. 그야말로 ‘식물 여당’으로서 너무 무기력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친정 장악력’은 상상 이상이다. 그가 대권 후보로 있던 시기인 2006년 즈음부터 지금까지 “인물을 너무 키우지 않았던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나오고 있다. 1997년 신한국당 때에는 ‘9룡(김덕룡 박찬종 이수성 이인제 이한동 이홍구 이회창 최병렬 최형우)’이, 2007년 한나라당 때에만 해도 박근혜 정몽준 이재오 김문수 원희룡 홍준표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차기 잠룡’을 꼽을라치면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좌장’이나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대통령이 용인술은 집권 이후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까지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정세 분석에 능한 한 인사의 평을 들어보자. “새누리당은 2007년 이후부터 박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는데 길들어 있었고, 그의 치마폭에서 조련됐다. 친박계는 태생적으로 고분고분한 사람들로 민족적 저항이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인물이 별로 없다.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율사 출신, 관료, 전문가 등은 체제옹호적인 성향으로 야성이 없다. 18대, 19대 총선 정국에서 결국 공천을 받은 인물은 자기경쟁력이나 자생력이 있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얼마나 ‘예스맨’인가를 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치권은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새누리당이 무기력증을 계속 앓을 경우 선거에서 패하는 것은 물론 박근혜 정부의 국정 동력도 대부분 상실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계개편론과 개헌론이 돌출하면서 이슈를 잡아먹을 것이란 이야기다. 언론이 과거의 관행과는 달리 청문회 정국에서부터 새 정부와의 허니문을 종료한 것을 두고 앞으로 언론이 새 정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복선이 깔려 있기도 하다. 선우완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