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학원에서 지난 2월 27일 열린 국가정보원 채용 전략 설명회. 수많은 구직자가 몰려 일부는 자리를 못 잡고 서 있기도 했다. 최준필 기자
매년 3월이 되면 종로 곳곳은 어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과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들로 북적인다. 종로를 찾는 구직자들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새로운 기회’가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린다. 국정원 역시 최근 이들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국정원 취업 관련 인터넷 카페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 몇 년 전부터는 아예 국정원 입사만을 전문적으로 대비하는 학원까지 생겼다. 지난 2007년부터 국정원 측에서도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대학교를 찾아다니며 채용설명회를 열기도 할 만큼 국정원 취업은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니다.
국정원 시험은 매년 8월(7급 기준) 정기적으로 치러진다. 전형 과정이 ‘서류-필기-면접’으로 일반 기업의 채용 과정보다 단순한 편. 하지만 필기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고 비공개로 전형이 진행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
지난 2월 말, 기자는 언론고시를 준비하다 최근 국정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구직자로 분해 상담을 받아봤다. 기자가 찾은 곳은 종로에 위치한 한 학원으로 국정원 입사대비 종합반을 운영하는 곳. 입구에서부터 ‘2011년 2차 필기시험 ○○명 합격!! 필기 합격률 1위’라는 홍보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이 학원의 교육담당 박 아무개 실장은 “국정원 모집은 크게 필기와 면접 준비로 나뉜다. 서류 전형은 그 해 선발인원의 2~3배수를 학점과 토익 점수로 솎아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서류와 함께 자기소개서도 써야 하지만 당락을 크게 좌우하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필기시험을 대비할 차례. 국정원 취업의 당락이 대부분 여기서 결정된다. 기자가 ‘언론고시’를 준비해왔다고 밝히자 박 실장은 “시험 과목이 일반 기업이나 다른 공기업에 비해 심플한 편이다. 최근 국정원에서도 필기 못지않게 논술이 중요해졌다. 언론사를 준비했다면 논술에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며 “6개월 정도만 올인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진단했다.
학원 관계자는 “설명회를 듣기 위해 부산과 진주, 울산 등 먼 지역에서 오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상담을 받은 날, 마침 학원에서는 대규모 취업 설명회도 열렸다. 사전에 설명회 참석을 신청한 이는 130여 명 수준. 설명회가 시작하기도 전 강의실은 가득 차 있었고 일부 참석자는 자리를 잡지 못해 서 있기도 했다. 40%가량이 여성이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설명회는 학원장이 직접 진행했는데 그는 자신을 ‘전직 국정원 요원’이라고 소개했다. 원장은 “<아이리스2> 많이들 보시나. 드라마는 국정원이 하는 업무의 1000분의 1도 설명하지 못 한다”라며 “현재 우리 국정원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운을 뗐다. 내용은 앞서 받은 상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 기자가 상담을 받은 경우처럼 언론사나 공기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시험 삼아’ 국정원에 원서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공인 영어점수가 당락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필기시험에서 자격증에 가산점이 주어지는 점, 또 논술 비중이 점차 커지는 있는 것 등이 일반 기업의 전형과 닮아있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정원 특유의 전문성이 결여되고 구직난에 밀려 국정원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 실정이다. 국정원 팀장급 직원은 “국정원도 국가 기관이기에 공정하게 절차가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설사 우연한 기회에 들어오게 되더라도 ‘제로베이스’에서 철저히 훈련받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국정원 요원 출신 원장이 직접 학원을 운영하고 면접을 지도하고 있다는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자칫 보안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전형 과정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 활동 당시 취득한 보안정보를 누설하지 않는 이상 퇴직 이후 학원강사로 일하는 것을 제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반인들 사이에 국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국정원이 일반 직장과 똑같이 인식되는 면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국정원 요원 되는 마지막 관문은? 시험 잘봐도 신원조회서 ‘미역국’ 국정원 입사를 위해 면접을 통과했더라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바로 ‘신원조회’ 단계. 국정원의 업무 특성상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인척들까지 광범위하게 신원조회가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적절성 여부가 평가된다. 필기와 면접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해도 신원조회 과정을 넘지 못하면 국정원 요원이 될 수 없는 셈이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A 씨는 2년에 걸쳐 국정원 시험에 응시해 면접까지 올라갔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고 한다. 탈락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A 씨는 신원조회에서 탈락한 것이라 믿고 있다. A 씨 가족 중 자살한 이가 있는데 면접에서도 거론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신원조회는 어떤 경우가 적발될 지 본인으로선 감을 잡기 어려워 국정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큰 고민거리다. 지금도 국정원 관련 카페에는 “친척 중 실향민이 있는데 걱정입니다” “삼촌이 대학 때 운동권에서 활동했는데 신원조회에 걸리지 않을까요?” 등의 고민을 토로하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