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뭐하지… 정부조직 개편이 지연되면서 장관도 차관도 없는 기획재정부는 사실상 업무 공백 상태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치권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열흘이나 지난 6일에서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13일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마치더라도 박근혜 정부 정부조직 개편 핵심 사항 중 하나인 초대 경제부총리가 정부 출범 20일 후에서나 자리를 맡게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 경제 컨트롤 타워인 기재부는 1차관과 2차관 모두 사실상 공백 상태다. 거시경제를 맡고 있는 신제윤 1차관은 금융위원장(장관급)에 지명되면서 청문회 준비에 정신이 없다. 그렇다고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간과할 수는 없어 서울(금융위원회)과 세종시(기재부)를 오가며 양쪽 업무를 모두 맡아보고 있다.
김동연 2차관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 임명되면서 국무총리실로 이동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유일하게 임명된 정홍원 국무총리를 보좌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 것이다. 문제는 기재부 2차관이 예산과 조세, 경제정책 조정을 담당하고 있어 공백이 지속될 경우 박근혜 정부가 내세워 온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이나 부처 간 공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기재부뿐 아니라 교육과학기술부와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등도 새로운 정부의 장관 임명이 언제가 될지 날짜가 잡히지 않으면서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있다. 특히 미래창조과학부로 변신하게 될 교육과학기술부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로 조직개편과 새로운 장관 물색이라는 두 가지 암초를 만나게 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조직개편안이 처리되면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로 나누어진다.
국토해양부 역시 조직개편안이 통과돼야 새로운 수장을 모실 수 있는 탓에 개점휴업 상태가 언제까지 갈 지 모르는 상황이다. 국토해양부는 조직개편이 이뤄지면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로 갈라진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각 부처에 대해 정책 보고 내용을 함구하라고 수차례 요구해 인수위 내부에서 정책 조율을 거친 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최종 결정된 정책을 발표하고 드라이브를 걸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 정책 추진은커녕 정부조직 개편도 못하고, 장차관들도 임명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던 대선 구호가 무색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가 워낙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고위직 공무원들의 관심은 승진 여부에 쏠려있다. 실무직 공무원들도 고위직 인사이동이나 정부조직 개편 이후 있을 추가 인사에 신경을 쓰는 상황”이라며 “새로운 장관이나 차관이 오더라도 업무를 파악하는데 2∼3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본격적인 업무는 5~6월이 되어야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힘이 실리는 정권 초에 아무런 일을 못하고 눈치만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업무 공백은 세종시 이전에 대한 불만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놓은 세종시 수정안을 거부하고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을 밀어붙인 까닭에서다. 특히 대선 기간인 지난해 11월 후보자 자격으로 세종시를 찾았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이후에는 한 번도 세종시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세종시 수정안이 박근혜 대통령과 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총리실과 기재부 등 6개 정부부처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세종시로 이전했다. 당시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일정에 맞춰 정부 부처들을 급하게 세종시로 이주시키다보니 많은 공무원들이 실내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에서 업무를 보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새집증후군’을 호소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았다. 또 급하게 건설을 서두른 탓인지 올 겨울에 청사 곳곳이 동파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기재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에서 누수가 발생했고, 1월에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실 비서실에서 물이 샜다.
세종시로 이전한 한 부처 공무원은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조직 자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아무 일도 안하는 상태로 둘 거였으면 세종시로 빨리 내려가라고 독촉한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일부 공무원들은 매일 서울과 세종시로 출퇴근하느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세종시 이전을 고수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한번쯤 내려와 공무원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청와대 1·2급 비서관 인사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 역시 여러 이유에서 공직사회의 불만을 더하고 있다. 청와대는 비서관 30여 명을 내정하고도 이들의 명단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 열흘 전에 청와대 비서관 37명 중 31명의 명단을 공개한 것이나, 이병박 정부가 취임 사흘 전 비서관 39명 인선을 발표한 것과 비교된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이에 대해 실무를 담당하는 비서관들을 공식 발표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청와대 1급 공무원은 다른 고위 공무원과는 무게가 다르다는 것이 공무원들의 평이다. 청와대와 부처 간 가교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정책의 방향 자체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은 자기 부처와 청와대와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비서관이 누구인지 확인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금융업계로 자리를 옮긴 한 인사는 “일선 공무원의 꿈은 1급을 다는 것이다. 차관이나 장관은 정권의 부침에 따라 결정되지만 1급은 그래도 자신의 실력과 노력에 의해 오를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1급, 그것도 청와대 1급으로 임명됐는데 이들은 단순히 실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니 공식 발표를 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이들이 20∼30년 동안 일하며 쌓은 전문성과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가 힘 있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공직사회와 호흡을 같이 해야 하는데 새 정부가 공무원들의 힘을 빼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