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희 감독이 지난 7일 의정부지방검찰청에 출두했다. 강 감독은 지난 2010-2011 정규시즌에서 승부조작 브로커 최 아무개 씨에게 수천만 원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강동희와 10년 전부터 알고 지낸 후배
의정부지검 형사5부(유혁 부장검사)는 지난 달 28일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브로커 최 아무개 씨를 구속했다.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최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강동희 감독의 이름이 언급됐다. 검찰은 강동희 감독이 2년 전 무렵 승부를 조작하고 그 대가로 3000여만 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강동희 감독은 당당했다. 7일 오후 2시 검찰에 출두, 조사를 앞두고선 “최 씨와는 10여 전 전부터 알고 지낸 후배라 예전부터 금전관계는 있었다. 그러나 (승부조작 대가로) 돈을 받지는 않았다. 대질조사에도 응할 생각이 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피의자 신분의 강 감독은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조사를 받았다. 강 감독은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지만, 의정부지검 형사5부는 8일, 강 감독에 대해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4대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현역 감독에 대해 승부조작 혐의로 영장이 청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강 감독은 최 아무개 씨(37)와 전직 프로야구 선수 출신 조 아무개 씨(39) 등 이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브로커 두 명으로부터 4000여만 원을 받고 2011년 2~3월 모두 4차례 승부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동희 감독이 검찰에 출두하기 하루 전인 지난 6일 동부 원주와 고양 오리온스의 경기에서 작전을 내리고 있다. 오른쪽은 같은 날 승부조작 혐의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KBL
한선교 KBL 총재는 강동희 감독이 검찰에 소환된 7일 울산을 찾았다. 서울 SK가 울산 모비스를 상대로 정규리그 우승에 도전한 날이라 혹시 모를 우승 행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한 총재는 울산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강동희 감독에 구속영장이 청구될 방침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현장을 찾은 취재진은 이번 사태를 대하는 KBL의 입장이 궁금했다. 전반전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한 총재는 신중한 입장이었다. “법원의 최종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문제를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물의를 일으킨 점은 송구스럽지만 강동희 감독의 인생과 명예가 걸린 문제 아닌가. 아직 확정적인 발표가 나온 것도 아니고 장기전이 될 여지도 있다. 검찰은 그동안 브로커들의 말만 들었고 이제부터 강동희 감독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이제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먼저 진실이 명백히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KBL은 8일 오전 긴급 이사회를 개최하고 10개 구단의 단장을 불러 모았다. KBL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를 논의한 결과 한 총재의 뜻대로 짧게는 검찰, 길게는 법원의 결정이 내려진 뒤에 이 문제를 다루기로 결정했다. 만약 승부조작 가담 혐의가 사실로 판명될 경우 강동희 감독은 가장 강력한 제재인 영구제명을 당할 수도 있다.
흉흉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포스트시즌을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KBL 고위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 경우 중계방송사들이 당분간 프로농구 중계 편성을 뺄 수도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제 진실게임이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무고함을 주장하는 강동희 감독과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는 검찰, 그리고 법원의 최종 판결까지, 이번 진실게임에 프로농구의 운명이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
프로농구 의심사례 살펴보니 친한 감독끼리 ‘짬짜미’ 검찰이 보는 승부조작의 개념에는 반드시 금품이 포함돼 있다.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하는 행위는 국민체육진흥법을 위반하는 행위다. 법을 어긴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농구 코트에는 법을 어겼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도덕적으로 얼마든지 문제를 삼을 수 있는 승부조작이 암암리에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이른바 ‘짬짜미’다. 예를 들어 A 팀의 순위가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자. A 팀 감독과 친분이 있는 감독의 B 팀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면 A 팀이 플레이오프를 대비한다는 등 명분을 만들어 주축 선수들을 기용하지 않고 B 팀에게 승리를 내주는 방식이다. 실제로 몇 년 전 모 구단의 정규리그 우승에 있어 이 같은 ‘짬짜미’가 적잖은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팽배했다. 특정 구단의 우승을 밀어주기 위해 몇몇 구단이 그 구단과의 승부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예를 들어 C 팀이 연패를 탈출할 때 누가 봐도 C 팀의 감독과 친한 감독의 D 팀이 연패 탈출의 제물이 되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이때마다 관계자 사이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불거진다. 최근 제기된 ‘져주기’ 의혹은 말할 것도 없다. 신인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권을 얻기 위해 일부러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피한다? 이 자체가 도덕을 위배한 승부조작의 범주에 들어간다. 다만 금품이 오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지 않느냐며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 |
우승해도 찝찝한 ‘서울 SK’ 기적 이루고도 웃지 못할 신세 지난 7일 열린 서울 SK 나이츠와 울산 모비스 피버스와 경기. SK 주희정이 드리블하며 속공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KBL 누구보다 들떠있을 문경은 SK 감독도 착잡한 심경을 숨기지 못했다. 문 감독은 “같은 농구인으로서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10년 이상 대표팀에서 같이 뛰었던 형이다. 그런 성품을 가진 분이 절대 아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만약 SK가 우승해도 주목을 받기 힘든 날이었다. 승부조작 파문에 밀려 SK 우승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렸다. 일부 언론은 사안의 경중을 따져 SK가 우승한다 해도 단신 처리를 하겠다는 방침을 갖기도 했다. 승부조작 파문이 일어난 뒤 강동희 감독이 처음 코트에 등장한 지난 6일 고양 오리온스와의 경기 때 프로농구를 취재하는 28개 언론 회원사 가운데 26개 매체가 현장을 찾았다. 챔피언결정전을 능가하는 취재 열기였다. 반면, 다음 날 울산을 찾은 매체는 그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온통 관심은 의정부지검에 쏠려 있었다. SK에게 올 시즌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열매를 맺을 시기에 프로농구 출범 이래 최악의 악재가 터지면서 문경은 감독은 웃고 싶어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 처지다. 그동안 쏟은 노력, 땀과 눈물, 모두 존중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이미 프로농구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역대 이보다 더 슬픈 챔피언이 또 있을까, 프로농구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