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민 6단
3월 12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8기 가그린배 프로여류국수전 결승3번기 2국에서 김혜민 6단이 17기 여류국수 박지연 3단에게 백을 들고 164수 만에 불계승, 종합 전적 2 대 0으로 새 여류국수에 올랐다. 김 6단은 2월 19일의 제1국에서도 흑으로 181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었다.
요즘은 바둑 동네에서도 나이 얘기를 자주 듣는다. 한국 중국에서 어린 기재들이 줄지어 나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이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탓이다. 여류국수 김혜민은 1986년생, 스물일곱이다. 1999년, 열세 살 때 입단했다. 빠른 편이다. 주변의 기대가 컸는데, 입단 이후의 성장은 느리지 않았고, 평균 이상이었기는 하지만 괄목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꾸준히 조금씩 올라왔고, 안정감이 있었다. 입단 1~2년차에 일단 반짝하는 것이 보통인데 비해 김혜민은 2007년 시즌에 이르러서야 반짝이기 시작했다. 제1회 대리배 세계여자대회에서 박지은 9단과 결승3번기에서 만나 우승을 다투었다. 1승2패했지만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제12회 삼성화재배 본선에 진출하면서 조명을 받았다. 삼성화재배나 LG배 같은 세계대회 본선은 남자 기사들도 어렵다는 것 아닌가.
2008년에는 신예프로10걸전에 진출했고, 제1회 세계 마인드스포츠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따왔으며 제7회 정관장배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2010년에는 제2회 BC카드배와 제15회 삼성화재배, 2개 세계대회 본선을 뚫어 존재감을 과시했고, 지난해에는 제1회 여류십단전 결승에서 조혜연 9단과 겨루어 준우승했다. 그리고 이번에 마침내, 입단 14년 만에 첫 타이틀 획득의 감격과 7단 승단의 기쁨을 누렸다. 거북이의 성공이라는 동료들의 축하가 틀린 말이 아니다.
스물일곱 나이는 바둑 동네에서는 중견이다. 입단 14년차이니 고참 소리를 들을 날이 멀지 않았다. 타이틀은커녕 본선도 점점 어려워질 그런 시기인 것.
박지연은 2012년 시즌 한때는 여자에서는 1등일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지난번에 최정에게 명인전 결승에서 졌고 이번에는 국수를 놓쳤다. 게다가 거의 역전패였다. 결과보다는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갑작스런 부진의 이유가 궁금하다. 박지연은 바둑 말고도 다방면에 재주가 많다고들 하는데, 그게 함정일지 모른다. 승부에서는 재주 많은 것이 대개는 독이다.
어쨌거나 김혜민의 성공은 10대 영재만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 것 같아 대단히 반갑고 흐뭇하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바둑에서는, 10대의 성취가 마냥 반갑기만 한 게 아니다. 바둑이 체육인 것만은 아니고, 바둑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흑1이 좋은 맥점이다. 백A로 받으면 백들이 잡힌다. 그게 잡히면 흑의 삭감은 대성공이고 승부도 끝이다. 백은 2로 버티는 것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2도> 흑은 1을 선수하고 3으로 좌변을 돌파했다. 검토실의 말마따나 “박지연은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일견 그런 것도 같았지만, 바로 여기서 김혜민의 통렬한 반격이 작렬했다.
백4, 6으로 흑의 삭감부대를 통째로 잡으러 간다. 흑은 이건 무리라고 보고 있었다. 흑7, 9로, 거꾸로 백 두 점을 잡는다고 본 것. 다음 백A는 흑B로 안 된다. 흑B에 돌이 놓이면 흑C로 단수치며 이쪽을 돌파하게 되니까. 그러나 백이 찾아낸 수, 흑이 간과하고 있었던 수, 그게 백10의 젖힘이었다.
<3도> 흑1, 3에서 백4로 <2도>의 흑7, 9, 두 점이 잡혔다. 흑은 잠깐 당황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다른 길이 또 있다. 흑11쪽을 뚫어 보는 수. 그 전에 흑5는 시간연장 겸 흑7에서 9로 껴붙이는 것을 도와주려는 수였을 것이고, 9쪽에도 비상구가 하나 있다고 본 것. 그러나 잠시 후 드러나듯 흑7, 9는 자충의 악수, 마지막 패착이었다.
백은 흑11 때 백A가 아니라 백12에서 몰고….
<4도> 흑1~5에는 백2에서 4, 6으로 돌려치는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좌변 흑 전체의 사활이 걸렸다. 잡히면 역전이다.
<5도> 흑1, 3은 백4의 치중으로 안 된다. 대마 절명이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6도> 흑1로, 이쪽으로 넘어가 본 것인데, 백2 먹여치고 백6으로 눌러간 것이 정확한 수순. 흑이 돌을 거두었다.
백6 다음 흑A는 백B로 간단히 안 되고, <7도> 흑1은 백2에서 4로 건너붙이는 수로 안 된다. 흑5로 나와도 백6, 8로 꼭꼭 죄어간다.
흑은 <3도> 7, 9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쪽이 비어있다면 <5도> 흑1, 3으로 대마는 일단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8도>에서 보듯 이제는 흑4로 마늘모하는 맥이 성립하는 것. 백 넉 점이 잡힌다.
그래서 백은 A로 잡고 흑은 2에 내려서 사는 것으로 타협인데, 다음 반상 최대인 우하 B의 곳으로 백이 선행하면, 이제는 이 정도로도 큰 차이는 아니지만 역전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사실은 <2도> 흑1이 이런 상황을 유발한 최초의 패착이었단다. 흑1로는 백2 자리에서 치받아 응수를 물어야 했으며 그랬으면 백이 곤란했고, 흑이 이 바둑을 지는 일은 없었다는 것. 그 변화가 너무 길고 복잡해 지면사정상 소개하기 어려워 다음 기회로 미루거니와 아무튼 가공할 거북이의 뒷발차기. 온화하고 매력적인 김혜민인데, 바둑 둘 때는 때로는 이렇게 사납다. 아니, 김혜민만 그런 게 아니다. 여자 기사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프로-아마 가리지 않고 대개 사납다. 조심해야 한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