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허준이다. 메인 뉴스 <뉴스데스크>의 방영 시간대를 8시로 옮기는 초강수를 둔 뒤에도 별다른 효과를 누리지 못한 MBC는 <뉴스데스크>가 끝난 뒤인 9시대에 일일드라마 <구암 허준>을 배치하면서 극적인 반전을 노리고 있다.
MBC 입장에서 ‘허준’은 말 그대로 ‘비장의 카드’다. MBC가 허준 카드로 처음 큰 재미를 본 것은 지난 1975년이다. 당시 MBC는 일일드라마 <집념>을 방영했는데 바로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였다. 당시 허준 역할은 故 김무생이 맡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번에 <구암 허준>에서 허준 역할을 맡은 김주혁의 아버지다. 부자가 40여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역할을 맡게 된 것.
당시 <집념>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이 드라마의 대본을 담당한 이은성 작가는 1년 뒤 동명의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화하기도 했다. 또한 이 작가는 소설 <동의보감>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 편의 드라마가 영화와 소설로 재탄생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드라마 <집념>은 70년대 중후반 한국 사회에서 엄청난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런 분위기는 1999년 드라마 <허준>으로 이어졌다. 국민드라마에 반열에 오른 <허준>을 통해 MBC는 ‘드라마 왕국’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또한 이 드라마를 통해 사극의 대가 이병훈 PD까지 스타 PD가 됐고 이후 ‘이병훈 표 사극’이 연이어 제작되게 됐다.
사진제공 : MBC
게다가 MBC와 이병훈 PD는 ‘허준’의 후예들도 잘 써먹고 있다. <대장금>의 ‘장금’이와 <마의> ‘광현’이가 대표적인 허준의 후예다. 서자 출신으로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허준이 내의원에 들어가 수의 자리에 올랐듯이 수랏간 나인 출신의 장금이와 사복시 마의 출신의 광현이도 모두 수의 자리에 올라 왕의 총애를 받게 된다.
MBC 드라마국 입장에선 <마의>처럼 고정 시청자 층이 다시 <구암 허준>을 꾸준히 시청해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다. 최소한 <마의>처럼 꾸준히 20%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해 준다면, 흐름을 타고 25%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해 준다면 <구암 허준>은 다시 한 번 MBC에게 한줄기 빛이 될 전망이다.
MBC의 노림수는 결국 KBS <뉴스9>다. <구암 허준>이 20%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한다면 그만큼 KBS <뉴스9>의 시청률이 타격을 입게 되고, 그 시청률이 고스란히 MBC <뉴스데스크>로 유입될 수 있다. 사극 시청층과 뉴스 시청층이 겹치는 터라 <구암 허준>을 보기 위해 KBS <뉴스9> 시청을 포기한 시청자들은 8시 시간대 메인 뉴스를 시청할 것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물론 8시 대에는 SBS <8시 뉴스>도 있다. 그렇지만 <구암 허준> 시청자 층은 채널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MBC <뉴스데스크>를 더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KBS 일일 드라마의 시청률과 KBS <뉴스9>의 시청률의 연관 관계는 방송사에서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지금도 KBS는 일일드라마 <힘내요 미스터 김>이 3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연이은 시간대의 KBS <뉴스9> 역시 25% 전후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구암 허준>의 시작은 미비했다.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8일 첫 방송된 <구암 허준>은 고작 6.7%의 시청률을 기록하녀 동시간대 공중파 채널에서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숙적 KBS <9시뉴스>가 24.6%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가운데 SBS <생활의 달인>(8.5%) KBS2 <위기탈출 넘버원>(7.2%)이 2,3위를 달렸다.
사진제공 : MBC
그렇지만 MBC의 반응은 희망적이다. 9시 시간대 드라마가 굉장히 오랜만임에도 6.7%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도 대단하다는 반응이다.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 금세 두 자리 수로 올라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아역들이 잘 해줘서 초반 분위기만 잘 만들어 주면 김주혁 등 성인 배우들이 투입돼 시청률 급상승을 일궈낼 수도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MBC는 주말에 <구암 허준>의 일주일 치 방송분을 연결해 재방송하는 등 드라마 초반 바람잡이에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내의원 드라마들이 갖는 단조로움이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마의> 역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주인공이 ‘시련’이 오면 이를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유형의 반복이 드라마의 큰 틀일 수밖에 없다는 것. ‘시련-극복-성장’은 <허준>과 <대장금>, 그리고 <마의>에서 동일하게 나타난 스토리 흐름이다. 이는 <구암 허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허준에게 감정이입해서 일일드라마의 묘미에 빠지는 고정 시청자 층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이것만으로 20% 이상의 시청률을 올릴 수는 없다.
또한 정통 내의원 드라마가 이젠 시청자들에게 식상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허준>을 통해 정통 내의원 드라마를 선보인 이병훈 PD는 이후 ‘수랏간’과 ‘사복시’를 거쳐 내의원에 들어온 장금이와 광현이를 통해 스토리 흐름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허준>은 다시 내의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 <집념>(1975)과 <허준>(1999) 당시엔 ‘내의원’만으로도 충분히 이색적인 공간이었지만 이제 시청자들에게 ‘내의원’은 왕이 집무를 보는 ‘대전’만큼이나 궁의 익숙한 공간이 됐다.
결국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줘야만 <구암 허준>은 MBC의 노림수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