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간판 아나운서였던 오상진이 프리랜서 선언 후 SBS <땡큐>에 출연했다. 사진제공=SBS
오상진과의 전속계약을 발표하며 프레인TPC는 “회사를 그만둔 뒤 미처 주변 정리를 하기도 전에 예상 외로 많은 분들이 이런 저런 제안을 주고 있는데 그 양이 혼자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 부득이하게 신속하게 응대를 해줄 회사를 정하게 됐다”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방송 관계자들에게 보냈다.
오상진 측은 “모두 MBC에 사표를 제출한 후 진행된 일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LTE급’ 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이 공문을 받은 MBC 예능국의 한 PD는 “그동안 회사에서 오상진이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파업 기간 동안 같이 고생하고 아직 회사에 남아있는 동료들을 고려했다면 한 템포 쉬어가도 좋았을 것 같다. MBC에 남은 동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아나운서는 ‘연예인에 가장 가까운 비(非)연예인’이다. 몸값이 회당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에 호가하는 전문 방송인들과 호흡을 맞추는 그들은 월급 외에 회당 2만~3만원의 수당을 챙긴다. 밤샘 촬영이 이어져도 다음 날 어김없이 출근해야 하고 장거리를 이동할 때도 직접 이동수단을 해결해야 한다.
오상진에 앞서 프리랜서 선언을 한 전현무는 얼마 전 나눈 인터뷰에서 “과거 KBS ‘남자의 자격’에 출연할 때 지방 촬영을 위해 내가 직접 운전을 하고 지방을 다녔다. 출장비가 5만 원인데 기름 값을 따지면 당연히 적자다. 그보다 새벽 촬영이 있으면 하루 전날 출발한다. 휴게소 3군데 들러서 쪽잠을 자고 갔다. 하지만 이제는 매니저가 모는 차 안에서 잠을 청할 수 있다”고 KBS 아나운서 시절을 회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능력 있는 아나운서들은 달콤한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 외주 제작사가 늘면서 탄탄한 실력을 갖춘 MC를 확보하려는 경쟁 역시 치열하다. 아이돌 시대를 연 SM엔터테인먼트가 자회사 SM C&C를 론칭하며 강호동 신동엽 이수근 등 내로라하는 MC들과 전속 계약을 맺은 것은 향후 예능 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SM C&C 외에 코엔스타즈와 싸이더스HQ 등도 유명 MC들을 확보하기 위해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MC의 경우 몸값이 점차 오르는 추세고 겹치기 출연도 용이하다. 드라마의 경우 회당 수억 원을 투자해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기 어렵지만 예능은 대표적인 ‘저비용 고효율’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예능프로그램을 진행할 능력을 갖춘 MC들은 손에 꼽을 정도기 때문에 MC 확보가 급선무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고 인지도가 높은 지상파 아나운서들은 숱한 연예기획사의 타깃이 되곤 한다. 연예인에 비해 영입 조건이 덜 까다롭고 몸값이 아직 높지 않기 때문에 매력적인 영입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사표를 제출하기 전 특정 연예 기획사와 접촉이 있었어도 이는 외부에는 비밀이다. 자칫 ‘돈에 팔려간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현무의 경우 SM C&C와 전속 계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전 3~4차례 ‘SM C&C행’ 보도가 있었다. 양측은 번번이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전현무와 SM C&C는 결국 손을 잡았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아나운서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프리랜서 선언을 할 때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연예기획사와 전속계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방송사를 나온 직후 월급이 끊기면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특정 연예기획사와 물밑 접촉을 통해 갈 곳을 정해놓고 사표를 제출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인정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 귀띔했다.
프리랜서 활동을 선언한 아나운서들이 수익을 배분해야 함에도 연예기획사와 손잡는 건 꾸준한 방송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프리랜서 선언 직후에는 ‘전관예우’가 있지만 향후 TV 노출 빈도가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찾는 이도 줄어든다. 새로운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등장할 때마다 밥그릇 싸움은 치열해진다. 때문에 전문 매니지먼트의 관리를 받으며 안정적인 방송 활동을 보장받는 것이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
방송사들 문턱 낮춘 까닭 ‘철밥통’ 아나들 긴장해 최근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바라보는 타 방송사의 시선이 부드러워진 것도 아나운서들의 프리랜서 선언에 힘을 싣고 있다. 한동안 MBC에 출연하지 못하던 김성주는 지난해 2012 런던올림픽을 계기로 친정에 복귀한 데 이어 M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으로 발돋움한 <일밤-아빠 어디가>에 출연 중이다. MBC는 전현무에게도 문을 열었다. <무릎팍도사>에 초대했을 뿐만 아니라 <블라인드 테스트 180도>의 MC도 맡겼다. 이외에도 각각 KBS SBS 출신인 최영일과 김범수는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했고 SBS는 MBC 이미지가 가시지 않은 오상진 아나운서를 받아들였다. SBS의 한 관계자는 “실력이 있다면 프리랜서 아나운서도 기꺼이 출연시키겠다는 PD가 늘고 있다. 지난해 MBC가 장기파업을 거치며 자사 아나운서를 기용할 수 없게 되자 이런 분위기가 더욱 거세졌다. 아울러 ‘철밥통’을 안고 있는 자사 아나운서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며 “요즘은 타사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에게 대한 문턱보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가로 막는 문턱이 더 낮다”고 말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