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은 지난 19일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열린 전주 KCC와의 경기를 끝으로 프로농구 코트를 떠났다. 사진제공=KBL
# 마지막 남은 스타가 떠났다
서장훈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나에게 스타라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타라는 말을 아무한테나 함부로 붙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스타라는 말을 듣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서장훈은 모두가 인정하는 스타다. 농구 팬을 넘어 대다수의 국민이 서장훈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고 길거리에 나서면 대부분이 그를 알아본다.
일화가 있다. 서장훈은 서울 삼성에서 뛰는 김승현과 친한 사이다. 쉬는 날 함께 다닐 때가 많았다. 가끔 이런 얘기를 들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 당신 매니저냐고. 서장훈은 충격을 받았다. 김승현이 누구인가. 농구대잔치 시절 이후에 농구계에 등장한 최고의 스타, 가장 강력한 티켓 파워를 가졌던 선수가 아닌가.
과거에 동료들과 함께 식당을 가면 난리가 났다. 서장훈만 주목을 받은 게 아니었다.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등 연세대 동료들이나 현주엽, 전희철 등 고려대 라이벌들 모두가 주목받는 스타였다. 요즘은 다르다. 서장훈과 지인들로 바라본다.
서장훈은 마음이 아프다. “후배들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지금 처해있는 농구의 환경이나 본인의 위치를 제대로 보고 파악하면 좋겠다. 인터넷 기사에 자기 이름 몇 줄 나온다고 해서 스타가 됐다고 착각하거나 홈 경기장에서 자기들을 좋아해주는 팬들 때문에 현실을 착각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소위 스타라고 불리려면, 또 그렇게 되고 싶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단순히 농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남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자질을 키워야 한다”고 쓴소리를 남겼다.
농구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승부조작 파문이 터지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지 모른다. 한 농구 관계자는 “서장훈이 은퇴하면서 이제 코트 밖에서도 모두가 알아보는 프로농구 선수는 더 이상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장훈이 농구의 황금기 시절에 나타난 선수이기에 더 나아가 늘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장훈은 후배들이 농구를 다시 예전의 위치로 올려놓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진정한 스타가 탄생하기를 희망한다.
21일 은퇴 기자회견(오른쪽)에서 후배들에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라”며 따끔한 조언을 했다. 사진제공=KBL
서장훈이 최근 몇 년 동안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서장훈 선수 아직도 뛰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서 뛰어요?” 농구 선수 서장훈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추억 속에서만 머물고 있다는 게 문제다. 서장훈은 씁쓸함을 느꼈다. 달라진 농구의 위상이 누구보다 피부로 와 닿는다.
서장훈은 오래전부터 농구의 인기와 국제대회의 성적은 무관하다고 얘기해왔다.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다고 해서 농구에 관심을 갖지 않던 일반 대중들이 갑자기 코트를 찾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서장훈은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지만 관중이 늘지 않았다. 농구 인기와 국제대회 성적은 관계가 없다. 다들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서장훈은 “농구의 인기에 있어 국제 경쟁력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가장 우선시돼야 하는 부분이 국제 경쟁력은 아니라고 본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든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하든 대중들이 알 기회 자체가 없다. 국가대표가 시합을 하는지 안하는지도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토대로 인기가 올라간다? 잘못된 생각 같다”고 말했다.
많은 농구 관계자들은 국제대회 선전이야말로 농구의 인기를 예전처럼 되돌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서장훈의 생각은 다르다. 농구가 대중이 즐기는 하나의 문화가 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방법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농구의 라이벌은 더 이상 배구가 아니다. <7번방의 선물>과 같은 1000만 관객 영화, <내 딸 서영이>와 같은 국민 드라마, 온갖 콘서트와 공연 등 대중이 즐기는 다른 문화 콘텐츠와 경쟁해야 한다.
서장훈은 “농구는 상당히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패션이라든가 음악이라든가 젊은이들의 문화와 융합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국제 경쟁력? 선수들의 실력? 경기 수준은 중요하지만 단순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야구를 보자. 다들 야구 유니폼을 입고 모자를 쓰고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율동도 따라 한다. 문화를 즐기는 것 아닌가. 농구도 문화를 팔아야 한다. 가족이 함께 경기장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장훈은 KBL(한국프로농구연맹)이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BL이 지금까지 유지해온 것은 예전의 농구 인기에 기댄 측면이 많지 않느냐”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지적이다.
전주 KCC와 경기 전 KCC 허재 감독과 포옹을 하는 모습.
최근 한 매체는 제보를 바탕으로 올 시즌에도 승부조작이 벌어졌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전주를 통해 얻은 정보로 어느 팀이 경기 첫 득점을 할 것인가 등을 예상 베팅해 적중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다. 검찰이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내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제보의 신빙성이나 사실 여부를 떠나 승부조작 파문의 충격은 당분간 농구계를 뜨겁게 달굴 것이 분명하다.
서장훈은 “프로스포츠가 존재하는 한 사설 불법 도박이 없어지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라며 비교적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첫 득점 같은 경우는 양 팀 선수 전체가 연루되지 않는 한 조작하기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며 검찰 수사를 통한 명쾌한 해답이 나오기 전까지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승부조작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코트를 떠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서장훈은 “마침 내가 농구를 떠나는 마당에 이런 일이 벌어져 마음이 아프다”며 “강동희 감독은 너무 좋아하는 선배다. 가슴이 아프다. 다만 언론에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판단을 뒤로 미뤄주시면 어떨까 하는 게 내 생각”이라며 당부의 말을 건넸다.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남과 다를 바 없다. 코트를 떠나지만 농구를 걱정하는 마음은 오히려 더 커진 듯한 느낌이다.
박세운 CBS 스포츠부 기자
‘코트의 별’ 줄줄이 곤두박질 왼쪽부터 강동희, 방성윤, 현주엽 어디 그뿐인가. 방성윤은 대학을 마치고 KBL이 아닌 미국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미국프로농구(NBA) 하부리그인 로어노크 대즐에 입단해 NBA 진출을 타진했다.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2005년 KBL 무대로 돌아와 첫 해 신인왕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다. 코트에서 가장 막기 힘든 선수 중 한 명이었고 팬들을 코트로 불러들이는 티켓 파워도 가진 몇 안 되는 선수였다. 하지만 농구 인생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신인 때부터 계약 문제로 잡음을 일으켰고 소속팀 서울 SK와도 마찰이 적잖았다. 트레이드를 요청했다가 불발되자 은퇴를 선언했다. 2011년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서른도 안 된 농구 스타의 쓸쓸한 퇴장이었다. 그런데 최근 방성윤의 소식이 들려와 농구계를 안타깝게 했다. 방성윤은 폭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은퇴 후 사업을 벌이던 방성윤은 사업 파트너 이 씨를 골프채와 아이스하키 스틱 등으로 허벅지를 때렸고 주먹과 손바닥으로 수차례 얼굴을 때렸으며 BB탄 총을 쏘는 등 폭력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서울 혜화경찰서 형사 2팀은 수개월 동안 진행된 수사 끝에 지난 19일 피의자 방성윤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실 농구계는 충격을 받을 힘도 없었다. 이미 강동희 전 동부 감독의 구속으로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한때 팬들을 설레게 했고 또 선망의 대상이었던 불세출 스타들의 씁쓸한 추락에 농구인들은 할 말을 잃었다. 방성윤은 2002년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군 면제 혜택을 받았다. 농구인들은 방성윤이 큰 선물을 받은 만큼 한국 남자농구를 위해 더 많이 봉사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는 기대에 엇나갔다. 보통 재능이 아니었기에 실망감은 더욱 컸다. 은퇴 후 수도권의 몇몇 구단들이 방성윤을 복귀시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다시 코트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방성윤의 의지가 너무나 확고했다. 그리고 이처럼 안타까운 일이 벌어져 아쉬움은 더욱 컸다. 서장훈의 은퇴를 계기로 농구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이 있다. 서장훈의 휘문고 후배이자 영원한 라이벌 현주엽이다. 현주엽은 은퇴 후 선물 투자로 17억 원대 사기를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농구계를 가슴 아프게 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동창생을 상대로 수억 원대 소송을 냈다. 선물회사 직원과 공동 불법행위로 선물 투자에 끌어들여 투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며 7억 4000만 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농구계는 현주엽을 그리워하고 있다. 최근 상을 당한 고려대 후배를 위로하기 위해 모처럼 얼굴을 드러냈다. 모두가 반가워했다. 그리고 또 ‘잠수’. 앞서 KBL은 지난 1월에 개최된 레전드 올스타전 때 현주엽을 섭외 직전까지 갔다가 불발되기도 했다. 체면 때문일까.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매직히포’다. 박세운 CBS 스포츠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