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지난 3월 17일 4대강 종주 준비를 위해 강남의 한 자전거 브랜드숍에 들렀다 나오고 있다. 사진제공=우먼센스
지난 3월 17일, 강남의 한 자전거 브랜드숍에 검은색 세단 1대가 진입했다. 차에서 내린 이는 다름 아닌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 그리고 수행원들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이전부터 “봄에 4대강을 둘러보고 싶다”며 ‘4대강 종주 계획’을 공공연히 밝혀 왔는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자전거숍 방문은 여성지 <우먼센스>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새누리당 당직자(그는 18대 인수위원회에도 참여했다)는 “이 전 대통령의 행보가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내가 그 업체에 관해서 좀 알아봤는데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소매업 같은 곳으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 민주화’에 역행한다는 기사도 있었다”라며 “물론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너무 조심성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평했다.
여권 진영에서 나오는 이 같은 볼멘소리는 4월 방미 계획이 알려지면서 더욱 극대화되는 분위기다. 최근 이 전 대통령은 미국 조지 부시 전 대통령으로부터 ‘부시센터’ 헌정식에 참석해 달라는 공식 초청을 받았다. 헌정식은 오는 4월 25일로 예정됐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시기와 불과 열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전·현직 대통령이 열흘 간격을 두고 차례로 미국을 방문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 더군다나 이 행사에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도 초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오바마 대통령과 5월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맥이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퇴임 후에도 이 전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임재현 비서관은 “초청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방문 여부를 최종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보다 먼저 가는 것에 대해서는 “청와대로부터 어떤 이야기도 직접적으로 들은 것이 없다”며 “방문 목적도 다르고 시기도 같다고 볼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 전 대통령 측은 부시 전 대통령의 초청에 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하금렬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청와대 홍보수석실을 통해 사전 양해까지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적잖은 부담 역시 느끼고 있는 상황으로, 당초 8박 9일 정도로 계획했던 일정을 줄이고 10여 명 규모로 꾸려질 예정이었던 방문단 구성도 축소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시센터가 있는 텍사스 이외 지역에서 교민 격려 행사에 참석하는 일정은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미 건은 전·현직 대통령의 갈등을 빚을 사안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현재는 청와대 쪽에서 한 수 접은 분위기다. 청와대 대변인실 관계자는 “전임 대통령 방미와는 상관없이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정상회담 준비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의 미국행은 미국 대통령의 정식 초청을 받아 이뤄지는 성격도 크기 때문에 청와대가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라며 “청와대 쪽에서는 MB 쪽에서 스스로 포기하기를 바라겠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겠나. 지금 다른 산적한 사안이 많은데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방문과 함께 4월에는 새로운 이 전 대통령의 개인 사무실도 문을 연다. 이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무실과 보좌진 3명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데 논현동 사저 증축 공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사무실 공사에 들어갔다. 코엑스 맞은편에 위치한 이 전 대통령의 사무실은 크기만 430㎡(약 130평)로 인근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보증금 1억 7000만여 원에 월 임대료는 1300만여 원(관리비 포함) 수준이라고 한다.
임재현 비서관은 “정확히 사무실 용도가 무엇이라 말하기 힘들다. 퇴임 이후 면담 요청이 많이 오는데 집에서만 만날 수는 없지 않나. 논현동 사저와 사무실을 오가며 손님 접객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일 것 같다”며 “별도의 개소식은 예정돼 있지 않지만 공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지인 몇 명을 초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4대강 종주 준비에 미국 방문과 사무실 마련까지, 이 전 대통령의 최근 한 달은 전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보석 문제도 걸려있고, 최근 4대강 비리 의혹도 조금씩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튀는 행보는 독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전직 새누리당 의원은 “박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볼 때 두 사람의 갈등이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왕성한 SNS 활동 눈길 이제서야 ‘소통의 문’ 활짝 그는 방문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 만나러 갑니다. 천안함 용사들을”이라고 썼다. 이 전 대통령은 조문록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여러분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시신을 거두지 못한 한 병장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퇴임 후 한층 ‘소통’에 집중하며 눈길을 끄는 것이다. 딱 한 달 전, 퇴임 이튿날인 2월 27일 이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정말 오랜만에 옛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내와 함께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함께 쳐다보며 웃었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애완견인 ‘청돌이’가 한가롭게 낮잠을 자는 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현대건설 신입사원 수련회 당시 찍은 사진, 동호인들과 함께 테니스를 치는 모습까지 공개했다. 대통령의 인간적이고 소탈한 모습에 많은 이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김희동 스마트소셜 대표는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대선경선 때도 박 대통령에 비해 쇼맨십과 스킨십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오프라인 유세에 이어 SNS에서까지 그 능력이 십분 발휘되면서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