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성인만화 원작의 <행복의 시간>은 매회 노골적 성 표현으로 논란이 됐다. 사진은 방송 화면 캡처.
욕하면서 보게 되는 막장 드라마는 시청률을 올리는 데 일등공신이다. 후지 TV 드라마 <행복의 시간>은 지난해 11월 5일 첫 방송이 끝난 뒤 순식간에 화제가 됐다.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물게 남녀 간의 정사 장면을 노골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오후 1시 30분에 방영되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첫 회 9.6%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전작인 <붉은 실의 여인>의 평균 시청률이 4.3%였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다.
극 중 남편은 수많은 여성들과 어울리며 육체적인 외도를 한다. 아내는 아내대로 첫사랑을 만나 불륜을 저지르고, 아들은 매춘부와, 딸은 아버지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특히 미성년인 딸은 아버지의 친구 앞에서 옷을 벗더니 급기야 부적절한 성관계까지 맺어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다.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 집안이 없다. 그야말로 ‘막장 가족’이다.
드라마는 매회 강간, 불륜, 원조교제 등 자극적인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도 모자라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목욕하는 모습을 엿보는 장면까지 방영한다. 베드신도 점점 노골적으로 묘사됐다. 이후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어른만 시청하는 채널이라면 몰라도 지상파 방송이다”, “낮 시간대에 강도 높은 베드신을 방송할 필요가 있는가” 등 시청자들은 19금 성인만화를 여과 없이 지상파 드라마로 옮긴 것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다.
사태가 커지자 방송윤리·프로그램향상기구(BPO)가 드라마 ‘선정성’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우선, BPO는 드라마에서 허리를 격렬하게 움직여 성행위를 묘사한 장면과 여중생이 남성 앞에서 교복을 벗는 장면을 문제로 삼았다. 성표현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며, 아동 포르노물을 연상시킨다는 것이 이유다. 또한 “프로그램 제작자는 사적 이익보다 국민의 교양 형성이라고 하는 ‘공공선(公共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통해 제작사측에 주의 촉구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이로써 드라마 ‘행복의 시간’은 BPO 담화가 발표된 드라마의 첫 번째 사례로 남게 됐다.
일본 대중 주간지에 게재된 그라비아 화보들.
성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일본은 과거 여성의 누드가 지상파 방송에서 그대로 전파를 탄 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방송국의 자율규제가 강해져 상당히 순화됐다. 규제가 강해진 이유에는 BPO의 존재가 크다. BPO는 시청자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2003년 설립된 독립기관으로, 정확한 방송과 방송 윤리 감시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에 비해 위성방송이나 케이블 TV의 유료 성인 채널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최근 이곳 역시 ‘총무성에 의해 방송사업자 면허가 박탈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긴장하고 있다. 업계는 외설 논란을 최대한 피해 가기 위해 노출 표현 방법을 다양하게 궁리 중이다.
이처럼 2013년 들어 일본은 유독 ‘선정성’과 ‘외설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드라마 <행복의 시간>을 제외하고도 주간지와 그라비아 화보집 등에서도 “외설이다” “아니다”를 두고 당국과 미디어의 치열한 공방이 연이어 펼쳐졌다.
가장 대표적인 ‘외설 논란’의 예로는 <주간포스트>에서 여성 성기를 본뜬 작품을 사진으로 게재한 것을 들 수 있다. 경시청은 “사진이 여성의 성기 모양과 똑같아 외설성이 높다”고 구두 경고했다. 잡지는 불특정 다수가 출입하는 장소에서 판매되고,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문제의 사진은 ‘외설 도화 진열죄’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잡지사 측은 “사진 속 작품은 갤러리에서 일반 공개됐다.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반박 주장을 펼쳤다.
과연 외설이 아닌 성 표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일본 네티즌들은 “외설인지 아닌지는 당국이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는 견식을 높여 각자가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