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태양광 발전소. 오른쪽은 태양광 발전 핵심소재인 폴리실리콘 기업 OCI그룹의 대표이사에 선임된 이우현 사장. 연합뉴스
지난 2005년 OCI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입사한 이우현 사장은 최근까지 사업총괄(CMO) 부사장으로 폴리실리콘 등 사업 전반을 이끌어 왔다. 이 사장의 대표이사 선임에 대해 OCI 관계자는 “사업 총괄을 해 왔던 이 사장이 아직 인사나 재무 파트 업무는 해 보지 않았다”며 “앞으로 대표이사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또한 지난 21일 OCI그룹의 태양광 부품소재 전문업체 OCI스페셜티의 등기이사에도 선임됐다. 이로써 이 사장의 OCI그룹 내에서의 영향력이 더욱 굳건해질 전망이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 사장이 주력 계열사인 OCI를 맡고, 차남인 이우정 대표(44)가 넥솔론을 맡는 OCI 경영 후계구도가 사실상 가닥을 잡게 됐다는 점도 이번 인사의 빼 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이우정 넥솔론 최고전략대표(CSO) 사장은 일찍부터 넥솔론 경영에 집중해와 그동안 재계에서는 넥솔론이 이 대표 몫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넥솔론은 태양광 발전용 잉곳 및 웨이퍼 전문 제조업체로 생산량 기준 국내 1위·세계 5위 태양광 웨이퍼 업체다. 이 회사는 지난 2007년 이우현 사장과 이우정 대표가 각각 50억 원씩 출자해 설립했다. 설립 당시 두 형제의 지분율은 거의 비슷했지만 거듭된 유상증자를 통해 이 대표의 지분율이 형인 이우현 사장보다 많아졌다.
지난 3월 초에도 넥솔론은 최대주주인 이 대표를 대상으로 100억 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이 대표의 지분율은 기존 18.63%에서 23.09%로 늘어난 반면, 이 사장은 지분 희석으로 지분율이 13.11%로 줄어들었다. 이 대표의 넥솔론 경영권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수영 회장
OCI는 지난해 4분기 연결 기준, 622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으며, 지난해 제4공장의 건설도 중단한 상태다. 태양광 산업이 대호황을 누리던 지난 2008년 1㎏당 가격이 400달러에 육박하던 폴리실리콘 가격이 10달러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에서 자국 업체 보호 명목으로 외국 업체들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점도 OCI로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이 사장에게 다행스러운 점은 업황이 점차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고 소진과 수요 증가로 시장이 점차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다”며 “아직 낙관하기는 이르지만 업황이 바닥을 쳤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폴리실리콘 가격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태양광 가격정보사이트 ‘PV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3월 27일 기준 고순도 폴리실리콘 평균 가격은 전주와 마찬가지로 1㎏당 18.59달러를 기록했다. 최근 몇 개월간 급등세가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모습이지만 상승세가 뚜렷하다. OCI도 이에 맞춰 한때 50% 수준까지 떨어졌던 공장 가동률을 급격히 끌어올리며 시장에 훈기를 불어 넣고 있다.
결국 OCI의 ‘황태자’로서 입지를 굳힌 이 사장이 아버지 이 회장의 든든한 지원 아래 업황 회복의 분위기를 잘 살려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경우, 경영권 승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수영 회장이 아직은 OCI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남을 대표이사로 올린 데는 그만한 믿음이 있을 것”이라며 “태양광 발전 사업 등 회사의 신성장 동력을 조기 정착하는 것도 본격적인 경영능력 시험대에 오른 이 사장에게 주어진 큰 미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OCI그룹은? ‘동양화학’ 모태 화학산업 한우물 OCI의 모태는 지난 1959년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유명한 고 송암 이회림 창업주가 설립한 동양화학이다. 거의 모든 공업 생필품과 중화학 공업의 기초 원료인 ‘소다회’로 첫 발을 내디딘 동양화학은 50년 넘게 많은 인수·합병(M&A)을 진행하면서도 무기화학, 석유·석탄화학, 정밀화학 등 화학산업 한 우물만 팠다. 2000년대 들어서는 동양제철화학과 OCI로 두 번 사명을 바꿨다. 최근에는 태양광 전지의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이회림 창업주는 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인 이수영 OCI 회장은 최근까지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을 지냈다. 삼광유리와 이테크건설의 대표이사인 이복영 회장이 차남이며, 유니드 이화영 회장이 삼남이다. 이들 오너 2세가 운영하는 회사들은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묶여있지만 사실상 독립경영을 펼치고 있다. 이복영 회장과 이화영 회장이 그룹 주력사인 OCI의 지분을 각각 5.49%와 5.43%를 갖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2세간 지분 정리는 거의 끝난 상태다. 재계에서는 2~3세로 내려가면서 계열분리가 진행된 삼성, 현대, LG가처럼 OCI그룹도 오너 3세 체제가 정착될 즈음 법적인 계열분리도 수순을 밟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
재벌가 2~3세 경영 엇갈린 행보 정부정책 따라 속도 조절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먼저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3월 15일 열린 주주총회를 통해 신세계와 이마트 등기임원 및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당시 신세계그룹 측은 정용진 부회장의 사임에 대해 “각 사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뒤이어 지난 3월 22일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도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등기이사직은 유지했지만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다. 이들 오너들이 사임할 당시 재계 일각에서는 이들의 행보가 최근 유통업계로 향하는 정부의 고강도 전방위 압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들과 반대로 최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새로 등기이사로 선임되며 경영 승계 절차를 본격화한 오너 2~3세들도 있다.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은 3월 21일 정기주주총회에서 GS에너지 신규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지난해 12월 GS에너지 부사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3개월 만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허 부사장은 GS그룹 창업주인 고 허만정 회장의 5남 허완구 승산 회장의 장남으로, 허창수 GS그룹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등과 사촌 관계다.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동양그룹의 경우 현재현 회장의 장남 현승담 동양네트웍스 경영지원본부장(상무보)이 이 회사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장녀인 현정담 동양매직 상무에 이어 두 번째다. 현 상무보가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그룹의 경영권 후계 구도도 경쟁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대성의 핵심 계열사인 대성산업도 최근 김영대 회장의 삼남 김신한 부사장을 신규 등기이사로 선임했다. 김 부사장은 장남인 김정한 부사장보다 먼저 등기이사에 오르면서 일단 후계 구도에서 한 발 앞설 수 있게 됐다. 신규 선임은 아니지만 OCI의 경우, 이수영 회장의 장남 이우현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재벌 오너들의 사뭇 다른 책임경영 방법에 대해 경제민주화 바람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지난해부터 유독 다른 업종에 비해 정부의 고강도 압박을 받고 있는 유통업계와 그 외의 다른 업종들과는 대처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책임경영을 하려면 등기이사에 등재돼야 하는 게 맞다”며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더라도 지분 등을 모두 가진 상태에서 회사의 모든 경영활동에서 실권을 갖고 있다면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유통업계에 연일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며 오너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많이 생기면서 이런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