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들의 예능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사진은 SBS ‘땡큐’ 촬영 모습. 왼쪽부터 차인표, 혜민 스님, 박찬호. 사진제공=SBS
# 그라운드, 코트 떠나 브라운관으로
최근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인 MBC ‘아빠! 어디가?’에는 스포츠 팬들에게 반가운 얼굴이 등장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스타, 바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송종국이다. 루이스 피구를 쩔쩔매게 했던 송종국은 요즘 윤후에게 푹 빠진 딸 지아 때문에 쩔쩔 맨다.
양준혁은 그라운드를 떠난 뒤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출연해 그의 은퇴를 아쉬워했던 팬들을 달랬다. 수많은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비쳤던 ‘코트의 황태자’ 우지원은 최근 선수 시절 못지않게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3’에 출연해 국가대표 댄스스포츠 선수와 호흡을 맞춰 멋진 공연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은퇴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SBS ‘땡큐’에 출연했고, 한국 여자역도의 간판스타 장미란도 최근 KBS ‘1박2일’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 바벨 대신 시청자들의 사랑을 들었다.
과거에는 은퇴하는 순간 팬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게 보통이었다. 감독이나 코치 등 지도자나 방송사의 해설위원 등 은퇴 후 걸을 수 있는 길이 한정적이었다. 요즘은 추세가 달라진 느낌이다. 수많은 은퇴 선수들이 브라운관을 향해 뛰어들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운동장에서 발휘했던 끼와 재능을 살려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스포츠 스타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를 원하는 방송사의 절묘한 만남이다.
최근 또 한 명의 태극전사가 예능 무대에 뛰어들었다.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SBS ‘정글의 법칙 in 히말라야’에 합류했다. 안정환은 평소 즐겨본 프로그램이라며 흔쾌히 섭외에 응했다는 후문이다. 방송사가 거는 기대도 크다. ‘정글의 법칙’의 백정렬 책임프로듀서(CP)는 “스포츠 스타는 연예인보다 진정성이나 순수성이 더 크게 느껴진다. 평소 운동하는 모습만 보다가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시청자들이 스포츠 스타들의 예능 출연을 더 좋게 본다”고 말했다.
MBC ‘아빠! 어디가?’에서 딸 지아와 함께 출연 중인 송종국. 사진제공=MBC.
시청자들은 스포츠 스타의 예능 출연을 특별하게 받아들인다. 평소보다 기대치도 높아진다. 왜 그럴까.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스포츠 스타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지점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먼저 “운동선수는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준다. 요즘 대중은 땀을 흘리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 스타들의 이미지가 좋게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우지원은 “김완선 누나나 아이돌 그룹 출신 등 춤의 전문가들은 나와 비교가 안 된다. 그 분들에게 1~2시간이면 충분한 게 나는 일주일 내내 해도 못 따라 간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운동선수 출신답게 집념만큼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두 번째로 스포츠 스타들의 방송 감각이 예상보다 뛰어난 경우가 많다. 정덕현 평론가는 “운동에서 필요한 순발력과 연관이 있다. 이렇게 말을 잘하는 줄 몰랐다면서 의외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덕현 평론가는 “스포츠 스타들은 유명인 중에서도 투박하게 말을 던지는 편이다. 그 모습이 시청자들에게는 진솔하게 다가간다”고 평가했다.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한 우지원. 사진제공=MBC
우지원은 ‘댄싱 위드 더 스타’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고 고민이 많았다. 평소 음치에 박치란다.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게 싫은 성격이다. 그러다 마음을 바꿨다. “선수 생활도 끝났고 내가 못하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코트를 떠나 사회 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안 되는 것을 되게끔 하는 게 나의 운동 철학이기도 했다”며 방송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우지원은 이미 축구의 송종국이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던 사례를 위안과 용기로 삼았다.
평생 운동만 한 선수에게 방송 출연은 분명 낯설고 두려운 일이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또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보수적이었다. 은퇴 선수가 해당 종목에 남아 관련 업무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재능이 넘치는 스포츠 스타들이 은퇴 후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더 생겼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유가 생겼다.
그렇지만 국민 MC로 거듭난 천하장사 출신의 강호동처럼 누구나 롱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덕현 평론가는 “전문 방송인이 되기 위해서는 준비할 게 많다. 강호동도 엄청난 노력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콩트부터 시작해 다양한 경험을 했다. 토크쇼에서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맞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지원은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춤 연습을 하다 최근 발목을 다쳤다. 뼛조각이 돌아다니니 그만두라는 의사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청자와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 선수 시절에 몸으로 익힌 포기하지 않는 열정, 그 자세만큼은 전문 방송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언젠가 제2, 제3의 강호동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