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왼쪽)과 구리 9단.
그러나 여전히 정식 발표는 아니다. 위의 조건들에 대해 두 대국자가 합의했다는 것인데, 그 전후에 한국기원과 중국기원의 공식 언급이 없다. 한국기원도 여전히 가타부타 말이 없다. 보름 전에 이세돌과 구리가 한-중 정상으로 겨루었던 ‘천신약업배’ 때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한국기원보다 시중 일간지가 먼저 보도했다. 한국기원은 관여하지 않았고,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인가?
구체적인 소식이 일단 반가웠으나 정황을 짚어보니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우선 그동안 군불을 너무 때 김이 많이 샜다는 것이다. 몇 번이나 ‘한다’ ‘할 예정이다’, 그런 게 흥행의 극대화를 노린 전술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유치하다는 말이 많았다. 세계대회는 변히 주최하는 게 없으면서 이런 이벤트에는 거금을 투자하는 속내도 궁금하다. 이런 게 중국적 스타일인지. 그리고 이제 시간도 꽤 흘렀다. 몇 년 전처럼 지금도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이 과연 확실한 ‘세계 투톱’이냐에 대해서도 슬슬 이론의 여지가 생기고 있다.
이건 또 다른 얘기겠지만, “‘10번기’라는 명칭은 어떤 비장미를 담고 있는 바둑의 역사적 술어인데, 이세돌-구리 10번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장할 것 같지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옛날의 10번기를 추억하는 사람들이다.
“진다고 해서 기사 생명이 끝나는 것도 아닐 것이고, 다른 세계대회에 나와 이기고, 우승하고 하면 회복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친하게 지내는 두 사람에게 옛날 10번기처럼 처절하게 두라 말라 할 수도 없다. 그러니 10번기 대신 다른 명칭을 쓰는 것은 어떨까.”
두 사람은 “성사되면 전부를 동원해, 혼신의 힘으로 멋지게 싸우겠다”고 말했다는데, “그건 7억 원의 상금을 놓고 최고 수준의 기술을 겨루는, 스포츠의 경연일 뿐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10번기의 비장미. 사실은 그런 게 진부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사이좋은 두 사람의 운동 경기를 보는 것은,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감동적일 것 같지는 않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
경기가 끝나고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 같은 게 운동장에서는 스포츠맨십일 것이나 바둑판 앞에서는 별로 느낌이 없을 것 같다. 10번기, 10번기, 너무 바람 잡지 말기를 바란다. 또 만날 중국에 끌려 다니지 않기를 바란다. 실제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얼른 보기에는 꼭 그런 것 같으니 말이다.
이광구 객원기자
14회 맥심커피배 흑 박정환 9단 백 이세돌 9단 강수 대 맥점 공방 쎈돌이 ‘발 삐끗’ 3월 27일 강릉 메이플비치리조트 특설대국실에서 열린, 이세돌-박정환의 제14회 맥심커피배 결승3번기 제2국. 이세돌 9단이 백이다. <1도> 좌변 흑이 1로 뛰어나오자 백2로 붙인 장면. 백A로 끊어 잡지 않고 껴붙인 백2가 이세돌 9단의 재기가 번뜩인 점이었다고 한다. 백2로 A면 흑은 일단 좌하로 달려가 흑B(여기도 아주 급한 곳), 백C, 흑D, 백E로 정리하고 백2 자리에 늘어두는 진행이 예상된다. 긴 바둑의 그림이다. 백2는 노림이 있었다. 박정환 9단도 그걸 간파하고 우변 백을 향해 F로 손을 돌렸는데, 이 9단은 그쪽은 쳐다보지 않고 다시 G로 끊어 개운하게 잡아버렸다. <2도> 흑1로 이으면? 백2로 끼우는 게 노림이다. 흑3이면 백4로 되단수치는 것이 연결타. 다음 흑A로 따내면 백B로 흑 넉 점을 잡는다. 흑3으로…. <3도> 흑1쪽에서 단수치면? 백2 잇고 흑3 이을 때 백4, 6으로 끊고 나온다. 계속해서 <4도> 백7까지(흑4는 백에 이음)는 흑이 힘겨운 싸움이라고 한다. <1도> 백2로 이 9단은 국면을 리드하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이 죽 이어졌는데…. <5도> 흑1로 갖다붙인 점이 박정환의 마지막 승부수였다. <6도> 백은 1로 젖히고 흑은 2로 빠졌다. 강수 공방이다. 백3도 어쨌든 여기는 끊어야 할 자리. 흑은 4로 몰고 6에 끊어 장군멍군. 이번에는 강수 대 맥점의 공방이다. <7도>는 이어지는 실전진행. 백은 또 1로 끊고 3에 이어 두 점을 살렸는데, 바로 이게 이세돌의 실수, 문제였다고 한다. 흑4에서 6-8-10으로 실리를 벌며 넘어가서는 마침내 만회, 박정환의 역전 무드라는 것. 백3으로는 이쪽 두 점을 살릴 것이 아니라 <8도> 백1 이하로 이쪽을 살려야 했다는 것. 흑2에서 6으로 우하귀가 크게 들어가지만 좌변 흑 전체를 잡은 것이 물론 더 커서 백이 지는 일은 없었다는 것. 박정환은 이 바둑을 이겨 2 대 0으로 맥심배를 차지했다. 이세돌을 상대로, 그것도 2 대 0으로 이긴 것이어서 의미가 각별했다. 이광구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