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리그 개막식.
내셔널리그는 지난해 출발할 때 12팀이었는데, 두 팀이 빠지고, 세 팀이 새로 들어와 13팀이 되었다. 빠진 팀은 ‘고양시 바둑선수단’과 ‘광주 무돌’, 신생 팀은 ‘경기 분당’과 ‘전남 순천’, 그리고 ‘전북’이 막판에 합류했다.
1차전 3라운드를 치른 결과 지난해 정규리그 1-2위팀이었던 ‘대구 덕영치과’와 ‘충북’이 3전 전승, 올해도 역시 강팀임을 과시했다. 특히 ‘대구 덕영치과’는 개인 승수에서 11승을 기록, 10승을 올린 충북을 1승 차이로 제치고 단독 선두를 달렸다. 덕영은 지난해 일찌감치 포스트 시즌 최종 결승에 올라가 있다가, 기다리는 것에 다소 지쳤는지, 리그 4위로 포스트 시즌에 턱걸이한 후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를 넘고 넘어온 ‘충남 서해바둑단’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빼앗기며 분루를 삼켰다. 충남은 이번 1차전에서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전력이 약화된 것인지, 슬로 스타터로 시간이 지나면서 저력을 발휘할지 두고 볼 일이다.
올해 선수 엔트리가 한 명 늘어났다. 지난해는 시니어 남자 1명, 주니어 남자 2명, 여자 1명으로 4명이었는데, 시니어 남자가 2명으로 늘어났다. 짝수로 대결하다보니 2 대 2로 비기는 게 많았고, 그러면 주장전의 결과로 승패를 가린다는 등 다소 구차한 규정들도 있었다. 아무튼 팀이 없어지고, 생기고, 엔트리가 늘어나고 하면서 선수 수급과 스카우트로,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이동이 있었다.
내셔널리그 개막식.
해체 이유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으니 속내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 몇 가지 중에서 선수단 해체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시장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2010년 4월 창단 때는 강현석 시장, 김인규 부시장이었다. 강 시장은 바둑 애호가, 김 부시장은 훨씬 더해, 바둑 광팬이다. 2010년 11월 선거에서 최성 후보가 시장에 당선되었다. 최 시장도 바둑 실력이 4~5급 정도였고, 바둑대회 때는 대회장에 어린이 선수들과 바둑을 두곤 했다. 바둑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을 것으로 보였고, 지원도 계속될 것 같았다.
그러나 2011년은 그대로 넘어갔고, 2012년에는 예산이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깎였다가 2013년 예산 심의에서는 전액이 삭감되었다. 사전 경고나 예고나 심의나 의논,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일방적 통고였던 것. 공공기관이나 회사나 우두머리의 성향에 따라 사업의 존폐, 확장-축소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고양 바둑선수단’은 정도가 지나쳤다. 전임자가 시작한 일이어서 그랬을까. 바둑계, 바둑 동호인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몰상식하고 무례하다. 선수 몇 명이 다른 팀에서 둥지를 틀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 할까.
고양시에 거주하는 시니어 안병운 곽웅구 선수와 주니어 김재린 선수는 텃밭지기로 남았다. 창단 멤버 중 김동섭 선수는 신생 ‘경기 분당’, 김동근 선수는 후원자가 바뀐 ‘강원도’ 팀의 주축이 되었다. 주니어 김현찬 조인선 이상헌은 2011~12년 시즌에 프로가 되었고, 주니어 정찬호 이주형은 입대를 앞두고 있다. 여자부 김희수는 신생 ‘전남 순천’, 이선아는 김동섭과 함께 ‘경기 분당’ 팀에 적을 올렸고, 조경진은 호주로 어학 연수를 떠났다. 제 갈 길로 갔지만, 그래도 뿔뿔이 흩어진 것은 우울한 일이다.
‘경기 분당’은 이름이 재미있다. ‘성남시 분당구니까 경기 성남’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겠다. 그러나 ‘서울 동대문구청’도 있는데? 그건 서울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것. 하긴 분당은 성남이 아니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한편 프로에서 은퇴한 김희중 선수와 홍태선 선수가 과연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도 올 시즌 내셔널리그 관전 포인트의 하나. 김희중 선수는 1차전에서 3연승, 속기의 달인, 왕년 프로 타이틀 홀더의 저력을 과시했다.
내셔널리그는 지난해엔 서울 말고 대구 강릉 광주 등지를 순회하며 라운드를 펼쳤는데, 올해는 개막전 외에는 전부 한국기원에서 치른다고 한다. 경비절감이 이유다. 그런 지출을 줄여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혜택을 주겠다는 것인데, 글쎄, 경비절감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재고를 바란다.
왼쪽부터 신진서, 신민준
신진서와 신진서보다 한 살 위인 신민준을 보면, 양재호 9단과 최규병 9단이 잠깐 생각난다. 양재호와 최규병은 1963년생. 양재호가 몇 달 먼저 태어났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뛰어난 기재를 발휘하면서 차세대 선두주자로 경쟁했는데, 성적은 최규병이 앞섰고, 입단은 최규병이 열두 살때인 1975년, 양재호는 열여섯 살 때인 1979년으로 최규병이 많이 앞섰다. 그러다가 최규병은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조금씩 승부에서 멀어진 것에 비해 양재호는 바둑으로만 갔고 1989년 국내 최초의 세계기전이었던 제1회 동양증권배에서 우승, 늘 한 걸음 앞서가던 최규병을 마침내 추월했다.
지금 양재호는 한국기원 사무총장이고 최규병은 한국기원 프로기사회 회장이다. 사무총장은 실무 총책임자. 기사회는 명목상으로는 임의 친목단체지만, 실제 한국기원의 행정 전반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경쟁의 제3라운드라는 느낌이 든다. 신진서와 신민준은 출발한지 얼마 안 돼 아직 뭐라고 말할 것은 없지만, 현재까지는 신진서가 아주 조금 앞서가는 모습. 그러나 들리는 말로는 요즘 신민준이 ‘특단의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흥미롭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울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기사는 꽤 있다. 양재호 최규병 말고도 그들의 선배로 서능욱 조대현, 후배로는 유창혁 김영환 김만수 등이 있다. 그러나 양재호-최규병처럼 둘이 같은 시기에 나타난 것은 신민준-신진서가 오래간만의 케이스. 두 소년의 ‘동반 성장’을 기대한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