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후보들을 둘러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고소·고발이 난무했다. 지난 12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남 아무개 씨(48)가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공직자에 대한 인격과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려는 법 집행이라는 의견과 표현의 자유와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의 기회를 억압하려는 행위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투표 현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홀로 어머니를 모시고 중고차 매매상을 하던 남 씨는 따로 정당 활동이나 정치적 운동을 한 적이 없었다. 대신 그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정치와 관련된 글을 써왔다. 그가 적은 게시물은 대부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와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러던 중 남 씨는 박 후보의 당선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박 후보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비방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이 문제 삼은 게시물들은 지난해 7월에서 9월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자 신분이었을 때 올린 15개의 글이었다. 그 글에는 ‘국회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의 뒤에는 박 후보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의 잔재의 책임을 박 후보가 져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남 씨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린 게시물에 대해 “박 후보를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견해를 표현한 게 아니라 한 명의 유권자로서 대통령 후보를 검증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남 씨가 적시한 내용이 근거 없이 악의적인 허위사실이라며 고의적인 범행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적극적으로 의혹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러한 의혹이 있다는 것을 수긍할 만한 자료를 제시할 책임이 있다”며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다면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허위사실 공표와 후보자 비방에 의한 공직선거법 위반죄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하고 유권자의 의사결정에 혼란을 가져올 위험성이 크다”고 적시했다. 특히 남 씨의 ‘행위’에 대해 “악의적이고 저속한 표현 등에 비춰 죄질이 가볍지 않고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요신문DB
반면 장 아무개 변호사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퍼져나가고, 이로 인해 치열한 선거 국면에서 후보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어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며 “증거가 명백하고 확신범이라고 판단이 되면 간혹 가다 실형이 선고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과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이번 판례가 가져올 영향에 우려가 된다”이라고 귀띔했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 정권 초기에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법조계가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한편 서울의 한 구치소에 구속돼 있는 남 씨는 지난 16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선거가 끝나고 남은 건 법적 책임뿐? 남 아무개 씨의 이번 법정 판결 말고도 지난해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후보자들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들은 수도 없이 많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조웅 목사를 긴급체포했다. 자신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쿠데타를 주도한 중앙정보부 창설 멤버라고 소개한 조 목사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씨가 박 당선인의 모든 결정을 좌지우지 한다”는 등의 내용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자유청년연합’은 조 목사를 박 당선인을 비방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나섰고 검찰은 바로 조 목사를 구속한 것이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통상 고발장이 접수되면 부서 배당 등을 결정하는 데만 3일 정도 걸린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속전속결이다”라며 “벌써부터 검찰이 박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지난해 8월에도 오 아무개 씨(65)가 검찰에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매체 게시판 등에 “2002년 5월 A녀(박 대통령을 지칭)가 북한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등의 글을 5차례 게시해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에 대해서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들도 있다. 김중태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따라 북쪽으로 가서는 김일성 무덤에 헌화하고 참배하면서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무덤에는 참배도 하지 않은 배은망덕한 인간”이라고 발언해 문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지난 10일 불구속 기소됐다. [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