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의 승무원 폭행 사건을 계기로 항공기 진상 손님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일요신문 DB
항공기 진상 승객의 유형은 여러 가지다. 먼저 다짜고짜 폭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승객들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다음은 항공업계 관계자가 전하는 폭행사례.
국내 비행사의 승무원 매니저 A 씨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승객들에게 자리 안내를 위해 여객기 입구에서 탑승권 검사를 하고 있었다. A 씨가 한 승객에게 탑승권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자 그는 갑자기 “공항 게이트 앞에서 탑승권 확인을 했는데 왜 또 검사를 하느냐”고 화를 내며 A 씨의 얼굴을 가격했다. 폭행에 A 씨가 쓰러졌지만 고객은 오히려 정신적, 시간적 피해를 입었다며 입구에서 난동을 부렸다. 결국 승무원들이 그를 달래야 했고 그는 폭행에 대한 아무런 처벌 없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승무원 A 씨는 억울했지만 회사 입장에서 안 좋은 소문이 날까 폭행 사실을 쉬쉬하는 바람에 어디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기내에서 탑승객들이 불만을 가장 많이 제기하고 진상을 부리는 것은 식사 때문이라고 승무원들은 입을 모은다.
이번 왕 아무개 전 상무의 경우도 처음엔 기내식의 밥이 마음에 들지 않아 라면을 계속 요구하다 발생한 것이었다. 국내 항공사의 승무원 최아연 씨(가명)는 “식사 메뉴가 맘에 들지 않아 승객들이 폭언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은 예사로 벌어진다”고 전했다.
그는 “한번은 이코노미석의 한 승객이 ‘나는 닭고기 요리를 먹기 위해 이 비행기에 탔다. 닭고기를 무조건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렸다. 승무원들이 ‘메뉴가 바뀌어 닭고기 요리는 없다. 죄송하지만 다른 걸 드시라’고 말하자 폭언을 퍼붓고는 그때부터 음료와 식사 아무 것도 먹지를 않았다. 승무원들 입장에서는 승객이 배를 굶고 있으면 걱정이 돼 어쩔 수 없이 비즈니스석에서 소고기스테이크를 가지고 와 고객에게 제공했다. 그는 그때서야 그것을 받아먹으며 자신의 일행들에게 ‘이렇게 하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고 자랑하더라”며 당시의 허탈한 심정을 전했다.
승객들이 “기내식 메뉴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폭언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경우도 많다. SBS 드라마 <부탁해요 캡틴>의 한 장면.
심지어 승무원들이 탑승객을 부르는 호칭을 두고도 시비를 거는 비즈니스석 승객도 있다. 앞서의 승무원 이 씨는 “비즈니스석의 경우는 고객리스트가 있어 한번 탔던 승객들은 인적사항을 기록해 뒀다가, 다음에 이용할 때 그것을 참고해 호칭도 그의 직함에 맞게 ‘교수님’ ‘대표님’ 등으로 불러준다. 그게 아니면 통상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번은 한 탑승객에게 ‘아무개 선생님’이라고 불렀더니 ‘내가 교수인데 왜 선생님이라고 부르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고 전했다.
이밖에 사소한 것으로도 기내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는 많았다. 승무원 김은비 씨(가명)는 “예전에는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불만신고엽서를 펴놓고 ‘난 언제든 불만을 제기할 준비가 돼있다’는 식으로 대기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그 때문에 올해 초부터는 기내에 엽서가 없어지고 항공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불만을 제기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뿐만 아니라 남성 승객들이 여승무원들에게 치근덕대며 연락처를 물어보거나 만남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심지어 승무원을 계속 쫓아다니거나 스토킹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중에는 한 기업의 회장 이름도 올라 있다. 중견기업의 B 회장은 해외출장을 위해 비즈니스석에 탔다가 승무원 C 씨가 마음에 들어 만남을 요구했다. 그러나 C 씨는 B 회장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B 회장은 승무원들이 머무는 숙소 인근에 방을 잡고, C 씨의 비행스케줄까지 확인해 그 스케줄에 맞춰 다시 비행기를 탔다. B 회장은 기내에서 C 씨만 찾았다. C 씨가 쉬는 시간에도 일부러 C 씨를 지정해 불렀다. 불러놓고도 특별한 요구는 없었다. 그저 C 씨를 귀찮게 하여 만날 약속을 받아내는 게 목적이었다.
그는 심지어 비행기에서 내려서도 공항에 차를 대기시켜놓고 기다렸다가 승무원 C 씨가 나오자 막무가내로 “차에 타라. 아니면 계속 비행기에 타겠다”라고 요구했다. 아예 “비행기를 사버리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B 회장은 C 씨가 탑승한 비행기를 3번이나 더 타며 C 씨를 괴롭혔다.
기내에서 진상을 부리는 건 한국인뿐만이 아니다. 앞서의 승무원 김 씨는 “예전에 일본인 승객이 비행기에 탄 적이 있었다. 승무원이 좌석 위의 선반을 열다 실수로 쿠션이 그의 머리로 떨어졌다. 그는 목을 부여잡더니 계속 아프다고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사과를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는 결국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몇몇 러시아 승객들이 면세점에서 산 보드카 양주를 기내에서 불법으로 뜯어 마시고는 술에 취해 “술을 더 내 놓으라”고 난동을 부려 승무원들이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여승무원 성희롱 실태 호출벨 대신 엉덩이 ‘꾹’ 비행기 승객들이 여승무원을 성희롱하거나 성추행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SBS 드라마 <부탁해요 캡틴>의 한 장면. 국내 항공사에 다니는 승무원 최아연 씨(가명)는 “기내 성희롱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며 “호출벨 대신 여승무원들의 엉덩이를 손으로 찌르는 승객은 너무 많아 성추행 축에도 못 낀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예전에 카트를 끌고 좁은 통로를 지나가고 있는데 누군가 엉덩이를 만지고 지나갔다. 처음엔 동료 승무원이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남자 승객이었다. 그 승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쓱 웃더라”고 섬뜩했던 경험을 되새겼다. 이어 그는 “성희롱·성추행을 하는 승객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다”며 “유럽 미국 등 비행시간이 긴 노선보다 동남아 등 짧은 노선에서 성추행이 더 많다. 아무래도 얼굴을 마주칠 시간이 짧으니 성추행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내에서 성추행이 발생하였을 경우 항공법 상으로는 즉시 대처해 경찰에 인계해야 한다. 그러나 승무원 최 씨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찰나의 순간에 발생하는데 그것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증거도 없다. 경찰에 인계하기 위해선 목격자 진술서 등이 필요한데 승객 중 누가 선뜻 나서 써주겠느냐”며 “또한 혐의를 받은 사람이 ‘증거도 없이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몬다’고 난동을 부리기라도 하면 더 골치 아파진다. 한국 경찰들도 신고를 받아도 ‘그냥 넘어가지’라고 말하며 성추행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성추행을 당해도 그냥 승무원들끼리 ‘오늘 재수 없네’하고 속으로 삭히고 만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승무원 이소연 씨(가명)는 “우리 항공사의 경우 유니폼이 타이트하다보니 몸매가 많이 드러나는 편이다. 그런데 승객들이 뒤에서 대놓고 우리도 다 들리게 ‘몸매가 죽인다’는 등 성희롱을 한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어떻게 하면 승무원들에게 일을 더 시키고 괴롭힐 수 있는지’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다고 들었다. 심지어 ‘승무원이 과일바구니를 사들고 사과하러 오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일을 계속해야 하나’하는 회의가 든다”고 하소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
진상 유명인사 비스토리 대선후보 출신 의원 1분에 한 번씩 호출 2008년 한 명품브랜드의 D 회장이 비즈니스석에 탑승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비즈니스석은 탑승객으로 꽉 차 조금 소란스러웠다. D 회장은 승무원 사무장에게 다가가더니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바쁜 줄 아느냐. 난 할 일이 많아서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야 하는데 소란스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며 “1등석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식사도 필요 없다. 잠만 자겠다”고 덧붙였다. 당시 사무장은 “규정상 기내에서는 좌석 업그레이드가 안 된다”며 만류했지만 D 회장은 이미 1등석에 앉아있던 다른 대기업의 사장에게 친한 척을 하며 막무가내로 1등석에 들어가 앉았다. 그렇게 1등석에 앉아가던 D 회장은 식사가 나오는 시간이 되자 “밥을 안 먹겠다”던 처음 약속과는 달리 “밥에 국만 먹겠다”고 식사를 요구했다. 승무원들은 비즈니스석으로 내려가 식사를 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일어날 줄을 몰랐다. 결국 그는 밥뿐만 아니라 디저트까지 다 챙겨먹어 승무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고 한다. 승무원 이소연 씨(가명)는 “여권의 대선 후보였던 E 의원 역시 승무원들 사이에선 기피대상 1순위로 꼽힌다”고 전했다. 그는 ‘담요를 다시 제대로 덮어 달라’는 등의 시시콜콜한 요구까지 하며 1분에 한 번씩 승무원들을 호출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탑승객 명단에 보이면 승무원들은 탑승 전부터 초긴장 상태에 들어간다고. 톱 여배우인 F 씨는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자신이 좋아하는 값비싼 브랜드의 와인을 요구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 잔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병째로 달라고 한다는 것. F 씨는 비행 내내 와인 한 병을 옆에 끼고 결국엔 다 비웠다. 이에 다른 승객들은 그 와인을 마실 수 없어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고 승무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다고 한다. 또한 여자 아이돌그룹의 G 씨는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승무원이 탑승권을 보여 달라고 하자 “내가 누군지 몰라요”라고 반문하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승무원에게 불쾌함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번 비행기에 탑승할 때 승무원이 다시 탑승권을 요구하자 그 승무원의 얼굴에 탑승권을 던져 구설수에 올랐다고 한다. 이밖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지난 2007년 12월 술에 취해 대항항공 여객기에 탑승해서는 이륙을 위해 등받이를 세워달라는 기장의 지시를 무시하는 등 1시간 동안 소란을 피운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박 회장은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 원에다 120시간 사회봉사명령까지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 원으로 감형됐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