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부부 7쌍 중 한 쌍이 불임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1976년생 용띠 동갑내기 부부에다 아들까지 용띠라 그런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요.”
막 돌 지난 아들을 품에 안은 하 아무개 씨(여·37)의 얼굴은 육아의 고단함도 잊은 듯 행복한 미소로 가득했다. 하지만 아들을 만나기까지 하 씨는 무려 5년 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불임판정부터 실패를 거듭하며 절망했던 시간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저릿하다는 하 씨는 이 순간에도 간절히 임신을 원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전하고자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하 씨가 불임클리닉을 찾게 된 과정은 보통의 경우와 다르지 않았다.
“2007년 10월 결혼식을 할 때만 하더라도 임신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결혼 3년이 되도록 임신이 되지 않아 조바심이 들어 결국 병원을 찾게 됐는데 자궁근종으로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하 씨는 ‘걱정이 없었던 것’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치료를 받는 내내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것. 그는 “치료를 망설이다 막다른 골목까지 떠밀려 병원을 찾게 되면 조급한 마음에 될 일도 안 된다”는 따끔한 충고를 덧붙였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하 씨는 “처음에는 멋모르고 자비로 인공수정을 받았고 나머지 세 번은 정부지원금을 받아 그나마 비용부담은 덜했다. 하지만 인공수정을 받는 내내 형식적이고 성의 없는 의료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낮은 확률에도 인공수정을 시도하는데 앉아서 돈이나 벌자는 의료진의 태도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하 씨의 인공수정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지방에 살던 그는 장거리라도 큰 도시에서 시험관 시술을 시도해보기로 마음먹고 치료를 중단했다. 대신 심신이 지쳐있던 상태라 ‘몸만들기’에 집중했다. 인공수정을 하면서 만사가 귀찮아 접어뒀던 운동도 시작하고 여자에게 좋다는 요가와 명상도 배웠다. 임신에 좋다는 이유로 억지로 먹었던 음식들 대신 시골에서 보내준 자연음식으로 건강한 밥상을 실천하려 노력도 했다.
오로지 건강한 몸만들기와 마음 편히 가지기에 몰두하며 지내길 한 달. 하 씨에게 자연임신이라는 기적이 찾아왔다. 하 씨는 “주변 어르신들의 권유로 한약도 두 첩 먹으면서 마음 편히 시간을 보냈다. 물론 마음을 편히 가진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노력은 할 수 있다”며 “임신을 하고서야 비옥한 밭에서 농작물이 잘 자라듯 엄마의 몸이 만들어지지 않고선 건강한 아기가 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무조건 시술에 매달리기보다는 한번쯤은 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임을 알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임신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던 유 아무개 씨(여·47)도 불임으로 7년을 눈물로 보냈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준비하러 생애 처음 산부인과를 찾았던 유 씨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나이도 많을뿐더러 심각한 난소기능 저하로 자연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에 당장 시험관 시술을 결정했다.
불임치료 때 조바심을 금물. 몸과 마음을 잘 챙겨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유 씨는 “그 후에도 두 번이나 계류유산으로 아기를 떠나보내자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가족이 지켜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마지막이라 생각한 12차 시험관 시술을 앞두곤 남편과 둘이서 강원도 여행도 다녀왔다. 그때 남편이 ‘둘이서도 충분히 행복하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줬다. 그 말을 듣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여행에서 돌아와 요가, 명상을 통해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고 1년 6개월 뒤 쌍둥이 형제를 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임신을 하고서도 또 다시 유산이 될까 35주를 침대에서만 보내고 저체중으로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기까지 인큐베이터에서 3주의 치열한 사투도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어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편안한 마음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백 명의 명의보다 내 마음 하나 다스리는 것이 먼저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빚더미에 오를지라도 아기를 포기할 수 없어 버티다 결국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김 아무개 씨(여·43)도 결혼 2년차였던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불임치료를 받았다. 원인불명의 불임으로 인공수정 5회, 시험관 시술 8회를 시도했지만 매번 원치 않은 결과만 받아들었다.
김 씨는 “2006년부터 정부가 불임시술에 대해 지원을 해줘서 약 900만 원의 혜택을 봤지만 워낙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 자비로도 3500만 원 이상 들었다. 교통비나 민간요법에 사용된 금액까지 합하면 5000만 원은 족히 넘을 것”이라며 “돈도 돈이지만 시험관 시술을 받으며 워낙 주사를 많이 맞아 아직도 엉덩이의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에 무리해서 시술을 받았던 게 몸에 독이 됐다. 이제는 마음을 접었지만 몸에 남은 흔적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절로 흐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씨는 이제 더 이상 나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의 곁에는 두 살배기 딸이 늘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8차 시험관 시술을 실패하고 오랫동안 고민했던 입양을 실천에 옮겼다. 내 미련 때문에 입양이 늦어져 우리 딸과 함께할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닌지 미안할 따름이다”며 웃어보였다. 또한 자신과 같은 절차를 밟고 있는 이들에게 “간절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부디 자신의 몸을 돌봐가며 치료를 받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전문가들의 조언 “하루빨리 병원 찾아라” “불임치료의 정답은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료를 시작해야하는지 고민하는 불임부부들을 위해 불임클리닉 전문의들에게 정석 치료법을 물었으나 이와 같은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불임(난임)의 경우 워낙 발생요인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건강 상태에 맞춰 치료가 진행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치료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1년 이상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몸 상태를 체크해봐야 한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보이던 부부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자연임신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모르고 무리하게 자연임신을 고집하다 시간을 낭비하면 오히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도 놓치게 된다. 병원에서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적극적인 치료에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병원의 도움을 받아 배란을 돕는 주사를 맞거나 임신확률이 높은 날짜를 받아 부부관계를 하는 등의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만약 신체적인 문제가 있거나 병원의 도움을 받아서도 자연임신이 안 된다면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에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결정하는 게 좋다. 서울의 한 불임클리닉 전문의는 “인공수정이 가능한 경우라면 보통 3~5차례 시도를 해보고 시험관 시술을 받는 것을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에 처음부터 시험관시술을 결정하는 부부들이 많다. 간혹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먼저 권하는 병원도 있다”며 “시험관 시술의 경우 인공수정보다 임신확률은 높으나 그만큼 치료과정에서의 고통과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아 힘들어하는 부부들을 볼 때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
불임치료 궁금증 시험관 하면 아들? 말도 안돼 이에 대해 전문의들은 유명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기존의 병원에서 치료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불임치료는 어느 정도 표준화가 된 분야라 몸과 마음이 편한 병원을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차례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되지 않았을 때도 병원이동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의들의 의견이 약간 상반됐으나 대체로 병원이동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에는 동감했다. 병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컨디션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는 휴식기를 가질 수 있으며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치료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병원을 옮겼을 경우 처음부터 치료를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어 불필요한 시간, 체력, 비용을 낭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어쨌든 전문의들은 “환자의 마음이 가장 편한 쪽으로 결정하는 것이 최고”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불임치료를 결정할 때나 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조기폐경과 암에 대한 걱정을 품고 있는 여성 환자들도 있다고 한다. 배란유도제나 호르몬 주사제를 맞는 등의 불임치료 행위가 폐경을 앞당기고 여성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는 어떠한 연구결과에서도 증명되지 않은 사실로 전문의들도 불임치료에 사용되는 약은 안전성을 입증 받은 만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충고했다 때론 머리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걸 알면서도 ‘혹시, 진짜인가’ 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할 때도 있다. 시험관 시술을 통해 아기를 낳으면 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속설도 그 중 하나다. 산부인과에서 만난 한 여성에게서도 “시어머니가 이왕 불임치료를 받을 거면 시험관 시술을 받으라고 하더라. 돈도 지원해주겠다면서. 당시엔 왜 그런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아들을 낳을 확률이 높다는 소릴 듣고 그런 거였다. 처음엔 황당했는데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런 말을 자주 하는 걸 듣다보니 신경이 쓰이긴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허무맹랑한 속설일 뿐이다. 또한 시험관 시술이 아무리 체외수정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것은 법으로 금하고 있기에 아들, 딸을 골라 낳을 수 있다는 소문 역시 사실이 아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