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불임 여성들은 아기를 갖게 될 때까지 상당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 아무개 씨(여·46)는 조금 늦은 나이인 34세에 결혼을 준비하면서 임신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매달 일정한 날짜에 생리를 하고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갑내기 김 씨의 남편 역시 신체 건강한 보통의 남성이었기에 그도 불임을 염려하지 않았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에 대한 압박이 사방에서 밀려왔지만 부부는 둘만의 신혼생활을 위해 18개월 동안 피임을 했다. 시간이 흘러 37세가 되던 해, 피임약을 끊으며 임신을 계획했다. 금세 임신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6개월이 지나도록 원하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마음이 급해진 김 씨는 그때부터 민간요법에 의존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하자 그제야 병원을 찾았다.
피검사부터 자궁상태까지 처음으로 임신을 위한 진료를 받은 김 씨는 “자궁근종이 있긴 했으나 임신에 지장을 줄 만큼은 아니다”는 의사의 진단에 안심했다. 이에 김 씨는 “남편도 함께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는 의사의 말을 흘려들은 채, 배란일을 지정받아 다시 자연임신을 시도하겠다고 마음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임시술 전문 진료팀이 불임의 원인을 찾기 위해 자궁구조를 복강경을 이용해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한겨레
갑작스러운 결정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김 씨 부부는 흔히 그렇듯 일단 인터넷 검색을 해본 뒤, 한 유명한 병원으로 향했다. 임신 성공률이 높다고 소문난 의사까지 지정해 그 유명한 병원에 연락을 했지만 1달 뒤에나 예약이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김 씨는 ‘이왕 도움을 받을 거면 큰 병원에서 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 오랜 기다림 끝에 왕복 5시간이 걸리는 서울 유명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시도한 인공수정은 생각보다 몸이 고달프지 않았다. 정부에서 5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아 비용부담도 덜했다. 그러나 내리 3차례나 인공수정에 실패하자 김 씨에게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심신이 지친 상태라 일단 시술을 중단했지만 그 과정에서 임신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을 찾아다니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특히 전국 곳곳의 유명 한의원도 돌아다니며 침을 맞고 한약도 먹었다. 가계부담도 상당했다. 거기다 마음을 편히 가져야 한다는 남편의 말이 듣기 싫어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날도 늘어갔다. ‘죄 없는’ 남편에 대한 짜증과 불만도 쌓여갔다.
우울함에 빠져 살던 김 씨는 남편의 끊임없는 위로와 설득으로 겨우 마음을 추스른 뒤, 불임시술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시험관 시술(체외수정)을 받기로 결심했다. 시험관 시술은 인공수정보다 몇 배 고통이 심했다. 난자 채취를 위해 배와 엉덩이에 주사를 맞고 부작용으로 복수가 차오르는 바람에 몇 차례 응급실에 들락거리기도 했다. 반복된 주사로 엉덩이가 딱딱해져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됐다. 자궁내막 두께도 얇아 착상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험관 시술도 4차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김 씨의 나이 42세. 결국 김 씨는 임신을 포기했다. 한때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가족들의 도움으로 겨우 정상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임신을 위해 억지로 먹었던 음식들 대신 먹고 싶은 것들을 먹고 신혼 때처럼 남편과 단 둘이 여행도 떠났다. 망가진 몸을 회복하고자 꾸준히 걷기운동을 하고 요가도 다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김 씨는 43세 자신의 생일을 맞아 마지막으로 시험관 시술을 해보자고 결심했고 마침내 기적이 찾아와 9달 뒤 건강한 남자아기를 품에 안았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김 씨의 사연이지만 불임부부들은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이와 매우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김 씨 사례를 토대로 보면 불임부부들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대한 맹신, 쉽게 좌절해 중단과 재시도를 반복하는 악순환, 실패에서 오는 좌절감과 부부갈등 등으로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전문의들은 시작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 얼마든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임신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여성의 나이다. 김 씨처럼 30대 중반에 결혼을 했을 경우 당장 임신을 원치 않더라도 자녀계획이 있다면 병원을 찾아 반드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조은산부인과 유재형 원장은 “특히 여성은 산부인과를 가까이 해야 한다. 나이에 따라 치료 효과 차이가 상당히 크게 난다. 섣불리 혼자 불임을 단정 짓고 민간요법 등으로 시간을 낭비하면 치료시기를 놓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초음파 검사로 뱃속 아기의 건강을 확인하고 있다.
병원 결정도 신중해야 한다. 김 씨처럼 명성만 좇다간 원하는 시간에 예약도 제때 되지 않고 의료진과 충분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해 불안감에 시달리는 환자들도 많다. 또 장거리를 오갈 경우 비용부담은 물론이고 체력적으로도 무리가 돼 오히려 임신을 방해할 수도 있다. 이에 전문의들은 여려 요인을 고려한 사전조사와 방문 등을 통해 ‘나와 맞는 병원’을 찾길 권한다. 특히 불임시술이 많이 대중화되고 보편화됐기 때문에 서울과 지방의 기술차이도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병원까지 결정했으면 이때부터는 체력 유지와 마인드 컨트롤이 성패를 가른다. 처음엔 잘하다가도 한두 번 실패가 반복되면 조급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자연스레 오로지 임신에만 맞춘 생활 패턴이 반복되고 급기야 불안장애, 우울장애로 연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불임을 극복한 부부나 전문의들은 이때 마음을 다잡아야만 임신에 이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처음처럼,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것. 물론 불임 여성이 겪는 스트레스는 암환자나 에이즈 환자와 대등한 수준이라는 연구결과에서 볼 수 있듯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임신의 주체가 되는 여성이 받는 스트레스나 부담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마치 자신의 ‘죄’인 것처럼 여겨지는 잘못된 편견을 해소시킬 수 있는 국가적인 관심과 정책지원도 필요하다.
물론 불임여성도 웃음치료 등 외부적인 도움과 꾸준한 운동, 균형 잡힌 식생활 등의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이 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동반자’인 남편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살과의 전쟁’도 과하면 ‘탈’
불임의 원인은 아주 다양하다. 임신에 이르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생식세포의 발생부터 정상적이어야 하며 이후 수정, 배아의 발달, 자궁 내 착상까지 어느 한 단계에서도 이상이 있으면 불임이 될 수 있다.
특히 여성의 나이는 임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정확히 구분 짓긴 어려우나 보통 30세 이상의 여성은 4~5년을 주기로 불임 확률이 30%씩 증가한다고 보고 있다.
최근까지 밝혀진 불임의 요인에는 여성의 경우 난소기능저하, 배란 장애, 난관 손상 및 결착, 난관주위 유착, 자궁경관 또는 면역학적 요인, 자궁인자, 면역학적 이상, 감염 등이 있으며 원인불명인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불임은 여성의 문제로 생각하기 쉬운데 남성 쪽의 문제로 불임이 되는 경우도 40% 이상이다.
여성의 불임은 약 30%가 난관에 이상이 발생해 임신을 어렵게 한다. 난관염이나 난소난종 등 여러 이유로 인해 난관폐쇄가 발생해 난자, 정자, 수정란의 이동을 막아 자연임신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불규칙한 배란도 불임의 주요 원인이다. 과거엔 다낭성 난소증후군, 자궁내막증 등이 불규칙한 배란을 야기했다면 최근엔 과도한 스트레스나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한 저체중, 비만으로 인한 배란 이상도 발생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자궁질환 역시 하나의 불임 원인이다. 각종 종양이나 자궁 내 불필요한 섬유성 띠, 자궁내막증 등은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하는 것을 막을 뿐더러 혹 임신이 되더라도 자연유산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수정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도 황체의 이상으로 자궁내막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번번이 착상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무정자증’도 두드리면 좁은 문 열린다
정자채취실에서 채취한 정자를 확인하고 있다.
치료법은 불임 원인에 따라 명확히 구분된다. 내분비질환이나 농정자증, 면역성 불임, 사정장애 등에 의한 불임일 경우에는 우선적으로 수술보다는 약물치료를 먼저 권한다. 만약 호르몬에 의한 문제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호르몬 요법을 통해 불임을 해결하기도 한다.
최근 남성 불임의 주요 원인이 된 기형정자, 운동성 0% 정자, 무정자증 등 정자에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보다 정밀한 검사를 통해 치료법을 결정한다. 100명에 한 명꼴로 발생하는 무정자증은 원인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지기에 명확한 불임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상적인 부부관계에도 불구하고 결혼 3년차에 접어들 때까지 임신 소식이 없었던 김 아무개 씨(35)도 검사 결과 “정자의 시체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상태”라며 불임이라는 결과를 받아 들었다. 이후 진행된 치료과정은 상당히 힘겨웠다. 남성불임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그리 많지 않아 대구에서 서울까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됐으며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정액검사와 호르몬 검사, 염색체 검사는 기본으로 하는데 여기에만도 40만~50만 원의 비용이 청구됐다. 이후 진행된 초음파 검사와 수술을 대비한 검사가 추가될 때마다 10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했다.
수많은 검사를 하고서야 김 씨는 ‘비폐쇄성 무정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김 씨는 “차라리 폐쇄성 무정자증이면 막힌 곳을 뚫으면 되지만 비폐쇄성이란 소리를 듣고 절망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다중수술만이 최선의 방법이라 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김 씨 는 당장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로 인해 손상된 조직은 복구되지 않으며 정자를 찾을 수 있는 확률도 10%라는 말도 들리지 않았단다. 250만 원이라는 비용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 때는 ‘정자만 찾을 수 있다면’이란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다중수술을 통해 김 씨 부부는 정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체외수정을 시도할 수 있는 정도의 정자를 찾아낸 것만으로도 김 씨 부부에겐 기적이었다. 이제 김 씨 부부는 조만간 있을 시험관 시술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폐쇄성 무정자증을 진단받은 정 아무개 씨(37)는 부고환에서 정관으로 넘어오는 곳이 막혀 부고환정관문합술을 받았다. 정 씨는 “현실을 인정하기 힘들지만 처음부터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성 불임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얼마 없어 무조건 수술을 권하는 곳도 종종 있다. 많이 공부하고 냉정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돈, 시간, 몸까지 버리게 되니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남성 불임은 여성에 비해 치료를 포기하는 확률도 높다고 한다.
부산의 대학병원 비뇨기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 아무개 간호사는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불임으로 고통 받는 남성들이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직장에 휴가를 내는 것도 온갖 핑계를 쥐어짜내 겨우 하지 않느냐”며 “게다가 여성 불임은 원인불명이라도 여러 시술이 가능한데 남성은 정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치료조차 할 수 없으니 지레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결국 이들은 아이를 포기하거나 정자은행 또는 입양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