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최근 당내 소장파의 ‘5·6공 인물 용퇴론’에 맞서 거침없이 ‘할 말’을 하고 있다. | ||
이런 대립 구도 속에서 김용갑 의원은 현재 ‘외롭게’ 소장파들과 ‘분전’중이다. 소장파 의원들이 ‘5·6공 인물 용퇴론’ 등으로 자신을 ‘콕’ 찍었기 때문에 정면대응에 나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지금까지 보수세력을 자임해온 상징성을 놓고 보면 어쩌면 당연한 대응이다.
김 의원은 최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서슬퍼런 5공화국에서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해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룬 주역이었다”고 주장하며 ‘5·6공 인사 배제론’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또한 “5공화국에서 내가 했던 역할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자신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직언’해 이른바 ‘땡전뉴스’를 없앤 일화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김용갑 의원은 5공 시절 안기부 기조실장을 역임한 뒤 86년부터 88년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김 의원은 지난 86년 4월께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김영삼씨 등이 참여한 개헌논의 현판식장에 ‘변장’을 하고 잠입해 당시의 민심을 담아온 뒤 전두환 대통령에게 이를 가감 없이 전달해 신뢰를 얻었다고 한다. 그 뒤 김 의원은 사표를 가지고 다니며 정권에 여러 가지 쓴 소리를 많이 했다고 말한다. 그 중 대표적인 일이 바로 ‘땡전뉴스’를 없앤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의원은 86년 민정수석에 부임하고 몇 개월이 흐른 뒤 전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 다음은 김 의원이 주장한 당시 두 사람 사이의 대화.
“각하, 혹시 ‘땡전’이란 것 들어봤습니까?”
“아,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다 아는 사실을 각하께서 어찌 모르십니까?”
“대체 그게 뭔데.”
“‘땡’ 하면 9시 뉴스에 ‘전두환 대통령은…’ 하며 공식적으로 레코드 틀 듯이 각하 이야기가 맨 먼저 딱 나옵니다.”
그 얘기에 전 대통령 얼굴이 벌개졌다. 김 의원은 하나의 예를 들며 당시 민심을 전했다.
“지난 83년 KAL기가 격추되어 온 국민이 비탄에 잠겨 있는데도 그날 9시 뉴스에서는 첫머리에 대통령이 새마을 청소한 것이 제일 먼저 방영되었다고 합니다. 국민들이 얼마나 분노하였겠습니까. 그래서 그 뒤부터 ‘땡전 하면’ 5분간 텔레비전을 끄고 있다가 대통령 뉴스가 사라지면 다시 텔레비전을 켰다고 합니다. 왜 각하께서 잘 안보는 텔레비전을 그렇게 합니까.”
전 대통령은 그 얘기를 듣고 몹시 분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오류’를 당장 시정하라고 김용갑 민정수석에게 지시했다. 당시 정구호씨가 공보수석 겸 청와대 대변인을 맡고 있었지만 ‘오더’는 그 사실을 보고한 김 수석에게 내려갔다고 한다.
김 수석은 먼저 정구호 수석에게 방송사 사장들을 만나라고 했다. 공보수석의 관장사항이었으므로 방송사 사장단과 만나서 땡전뉴스 폐지를 논의하라고 지시했던 것. 그리고 사장들에게 ‘무조건 땡전뉴스 하지 말고 가급적 대통령 뉴스는 내지 말라. 뉴스 밸류대로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부인도 너무 자주 나온다며 국민들이 싫어하니까 절대 영부인을 뉴스에 내보내지 말라”는 지시도 곁들였다고 한다. 한편 김 민정수석은 당시 청와대 방송사 출입기자들과 따로 만나 위의 지시사항을 그대로 전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다”며 지시사항을 반신반의하던 기자들을 안심시켰다고.
그런데 3~4개월 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전 대통령이 중요한 행사에 갔다온 뒤 뉴스를 봐도 전혀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 전 대통령은 자신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전혀 비치지 않자 ‘김용갑 말이 맞긴 맞는데 그래도 이놈들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면서 서운해했다고 한다.
그래도 전 대통령은 김 민정수석에게는 직접 말을 못하고 정구호 공보수석에게 간접적인 압력을 넣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정 수석은 6개월 만에 공보수석에서 도중하차한 뒤 KBS 사장으로 ‘좌천’되었다는 게 김 의원의 설명이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정 수석이 KBS 사장으로 간 게 잘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당시는 ‘잘렸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당시만 해도 권위주의 시대라 아무 말도 대통령 앞에서 못하는데 내가 직언을 많이 했다. 나는 5공화국에서 내가 한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김 의원의 ‘자부심 버전’은 앞으로도 소장파들의 예봉을 피할 방패막이로 계속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과연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은 김 의원의 자부심을 얼마나 인정해줄까. 표가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