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할인점 중 이마트가 최초로 셀프 주유소를 열어 많은 고객을 유치했지만 주유소 자영업자들의 강력한 반발 등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사진은 용인 구성점에 오픈한 이마트 주유소의 모습. 사진제공=이마트 | ||
지난해 3월 정부는 유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월마트처럼 국내 대형할인점도 ‘자체 주유소 설립을 허용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대형할인점 참여로 경쟁을 유도해 정유사들의 독과점을 막고 석유제품의 유통구조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소식을 접한 업계 선두 이마트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일단 수익성이 불투명했고 인·허가와 교통영향평가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설치 법령이 다르다는 점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경쟁사들 역시 비슷한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대형할인점들의 주유소 개설은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마트 주유소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은 정부 발표가 나온 지 3개월이 흐른 지난해 6월경이다. 이 무렵 이마트는 주유소 설치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 수립에 착수했고 결국 7월 11일 이경상 신세계 이마트부문 대표가 “SK네트웍스에서 석유를 공급받아 연내에 수도권 점포 한두 곳에 주유소를 설치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이를 두고 당시 재계에서는 이마트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여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정부에서 대형할인점 영업시간 단축 등을 거론하며 압박해오자 입장을 선회했다는 것. 기획재정부가 이마트 등 대형할인점 관계자들을 여러 차례 호출해 ‘주유소 추진을 서두르라고 종용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어찌 됐건 이마트는 지난해 12월 22일 용인 구성점에 국내 첫 대형할인점 주유소를 열었고 나흘 뒤엔 통영점도 가세했다. 결과는 일단 ‘대박급’이었다. 영업 첫날부터 기름을 넣으려는 차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휘발유 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그 수는 더욱 늘어갔다. 이마트 주유소의 하루 매출은 일반 주유소의 네댓 배에 해당하는 1억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덩달아 매출도 뛰었다. 이마트에 따르면 주유소 덕에 매장을 찾는 고객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해 매출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구성점은 이용객 수가 주유소 오픈 전에 비해 12.4%, 통영점은 17.2% 늘어났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선보인 주유소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책 추진에 의욕을 보였던 정부의 표정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형할인점들이 직접 석유를 수입해 정유사들과 경쟁해줄 것을 원했지만 이마트 주유소는 일반 주유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또한 이마트를 비롯한 대형할인점들의 주유소 설치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말 못할 고민거리다. 이마트는 올해 서너 곳에,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많아야 두세 곳 정도에 주유소를 연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우선 진입장벽부터 낮춰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영 주유소 운영자들은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주유소협회(회장 함재덕)의 한 관계자는 “벌써부터 이마트 주유소가 있는 구성점과 통영점 주위의 일반 주유소 매출이 급감했다. 시장경쟁논리가 아닌 대기업의 힘의 논리가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이마트 불매 운동 등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주유소 업계에서는 이마트보다는 정유사를 향한 분노가 더욱 커 보인다. 한 자영 주유소 운영자는 “이마트는 마지못해 뛰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전국 9000여 개의 자영 주유소에 등을 돌린 정유사의 행태에 배신감을 느낀다”라고 털어놨다. 또한 SK네트웍스가 자영 주유소보다 싼 가격으로 이마트에 석유를 공급해주고 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주유소협회에서는 이를 대형할인점들이 직접 석유를 수입하는 것을 막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정유사의 전략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 SK네트웍스와 이마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자영 주유소 운영자들은 마트 주유소의 활성화가 ‘군소 주유소의 몰락만 가져올 뿐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면서 프랑스의 사례를 예로 든다. 프랑스는 마트 주유소가 들어선 이후 전국 4만 2000개 주유소 중 2만 8000개 이상의 주유소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경쟁자가 없어진 이후 프랑스 마트 주유소는 가격인하 전략을 폐기하고 수익성 위주의 경영전략을 펴 결국 소비자들은 경쟁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대형할인점의 배만 불렸다는 것이다.
정유사들도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자영 주유소들의 거센 항의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인 데다 정부에서 대형할인점들에게 ‘석유를 직접 수입해서 판매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업 초기 단계라 대형할인점들이 정유사와의 짝짓기를 하고 있지만 노하우가 쌓여 직접 해외로부터 물량 확보에 나설 경우 정유사로서는 호랑이만 키운 셈이 되는 것이다.
고객들의 민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이마트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부분이다. 구성점에서 기름을 넣었다는 한 30대 남성은 “일부러 한 번 가봤는데 (제휴카드) 할인도 없고 (휴지 제공이나 세차 등) 서비스도 없어 다른 주유소에 비해 큰 메리트가 없는 것 같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화장실 가기도 눈치가 보였다”고 지적했다. 적지 않은 이용자들이 이러한 불만을 얘기하고 있다고 한다. 이마트에서는 “셀프 주유소가 익숙하지 않아 그런 것 같다. 지금 가격에서 더 할인한다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기저기서 이마트 주유소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내부에서조차 된소리가 들린다. 이마트의 일부 직원들 사이에선 “아무리 정부의 제안이라고는 하지만 수익성도 보장되지 않는 사업에 성급히 뛰어든 게 아니냐”며 경영진에 대한 비난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이마트 주유소 설립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정용진 부회장이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최근 구학서 부회장을 필두로 한 전문 경영인들에 비해 입지가 다소 약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정 부회장이 향후 어떤 묘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