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장정남(원 안)이 인민무력무장으로 전격 발탁돼 그 배경에 귀추가 쏠리고 있다. KBS 뉴스9 화면 캡처
지난 13일, 조선중앙TV와 <로동신문> 등 북한 주요 언론매체들은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 공연 관람 소식을 전했다. 주목받은 것은 김 위원장과 동행한 인물들.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인민무력부장으로 ‘장정남’이라는 낯선 인사가 거명됐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지난해 11월, 임명된 김격식 인민무력부장이 임기 7월 만에 소리 소문도 없이 교체됐기 때문. 김격식은 지난 4일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위원장의 은하수음악회 관람 소식을 전할 때만 하더라도 인민무력부장으로 동행했다. 불과 며칠 사이,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김격식이 누구인가. 2009~ 2011년 4군단장 재직시절,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을 진두지휘했던 북한 군부 강경파의 핵심이자 포격술의 대가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학시절(김일성군사종합대학 군사학 전공) 전공 논문이 포격술이라는 점에서 그는 김 위원장의 실질적인 ‘군사적 스승’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여러 채널을 통해 이번 인사와 관련해 몇 가지 중요한 북한 내부 정보를 확인했다는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얼마 전, 북한이 미국에 ‘군축회담’을 제의했고 실제 북한이 군축을 준비하고 있다”며 “김격식을 비롯한 군 내부 기득권층이 이에 대해 극구 반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김격식을 비롯한 노장들을 내보내지 못해 힘든 상황이었는데, 이러한 갈등을 명분으로 전격 인사를 단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김정은 체제가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경제건설-핵 병진노선’의 핵심은 ‘핵만 보유하게 되면, 현재 북한군 110만 명 중 30만 명은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핵개발을 통한 군사적 비교우위만 확보된다면, 군축을 통한 비용절감을 선행하고 이렇게 절감된 비용을 경제건설에 투입한다는 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계산. 하지만 지난 10년간 선군 정치를 토대로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김격식과 군부의 입장에서 ‘경제건설-핵 병진노선’과 거기서 비롯된 군축 논의는 결국 밥그릇을 내놓으라는 말과 같다.
이러한 충격적 인사의 전조는 있었다. 지난 3월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개편된 정치국 인사 면면을 보자. 당시 최룡해 총정치국장에 이은 북한 군부 서열 2위 현영철 총참모장, 김격식 인민무력부장(인민무력부장은 한국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형식상 군 최고지도자지만, 실질적으로는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에 이은 서열 3위다),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등 군부 인사 세 명이 정치국 위원이 아닌 ‘후보위원’, 그것도 명부 가장 끝자리에 머물렀다. 그간 군부 핵심 인사들 상당수가 정치국 위원으로 임명됐던 전례에 비춰보면 군부의 위상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격식의 퇴진보다 더 주목되는 점은 장정남 신임 인민무력부장의 발탁이다. 안찬일 소장은 이번 인사를 두고 “창군 이래 가장 충격적인 인사 단행”으로 평하며 “장정남은 불과 50대 중후반의 나이다. 인민무력부 부부장이나 부총참모장, 부참모장도 거치지 않고 인민무력부장으로 직행했다. 군 내부에서 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군에 ‘선군 시대는 가고 선당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주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작 장정남 부장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장 부장은 지난 2002년 소장으로 승진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오른 2011년경, 중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그런데 최근 모습을 드러낸 장정남 부장의 계급장은 ‘상장’이었다.
불과 2년 만에 또 한 차례 승진한 셈. 정성장 연구위원은 이러한 승진 속도를 들어 “장정남 부장은 분명 충성심 측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 인정받은 인물”로 평했다.
일각에서는 장정남 부장이 강원도 전선의 1군단장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출생지는 강원도 원산. 그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최근 들어 북한 내에서는 백계룡 강원도당 책임비서가 당 경공업부장으로 수직 승진하는 등 ‘강원도 인맥’이 약진하고 있다. 장정남 부장 역시 1군단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강원도 인맥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재 북-중 접경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익명의 소식통은 “워낙 파격적인 인사라 장정남의 발탁 뒤에는 분명 이권이 개입됐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북한 내부에서는 장정남 부장이 ‘백두산 줄기(김일성과 항일 투쟁을 함께 했던 인맥) 3세대’ ‘만경대 줄기(김정일과 학숙한 혁명 유자녀 인맥)’라는 소문과 함께 심지어 성이 같다는 이유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친척이라는 얘기까지 나돈다”고 전했다.
안 소장은 “이번 파격 인사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이미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 군단장 네 명, 사단장 아홉 명이 바뀌었다. 선군이 저물고 선당으로 가는 현 시점에서 군 내부에서는 이러한 인사 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이번 파격 인사에는 김정은 시대 최고 실권자로 떠오른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룡해 국장은 군과는 무관한 순수 ‘당 인사’ 출신으로, 지난해 4월 군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에 전격 임명됐다.
북한 군부에 정통한 소식통은 “현재 북한 군부 내에서는 군 출신이 아니면서도 군 최고자리에 올라 군을 주무르고 있는 최룡해에 대해 불만이 많다. 심지어 ‘최룡해 암살설’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며 “군에서는 이번 인사 역시 최룡해의 지휘계통에서 진행한 것으로 보고 술렁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