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격호 회장이 계열사 지분을 결손법인에 무상 증여하면서 증여세 회피 의혹이 일고 있다. | ||
신격호 회장이 보유한 주식을 무상으로 증여한 계열사는 롯데기공 푸드스타 케이피케미칼 등이다. 우선 롯데기공엔 롯데제과 2만 1500주(지분율 1.5%), 롯데건설 16만 3300주(0.7%), 한국후지필름 3650주(2.6%)를 줬다. 패밀리 레스토랑 T.G.I 프라이데이스를 운영하는 푸드스타는 신 회장으로부터 롯데정보통신 5만 5350주(6.47%)를 받았다. 케이피케미칼도 신 회장의 롯데알미늄 지분 3만 7000주(3.88%)를 확보했다. 이번에 신 회장이 증여한 지분을 돈으로 환산하면 총 950억 원가량(롯데기공 약 500억, 푸드스타 250억, 케이피케미칼 200억 원)에 달한다.
신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증여받은 세 회사는 적자 누적으로 인해 결손법인 상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롯데기공은 지난 1월 20일 채권단으로부터 신용평가등급 ‘C’를 받아 워크아웃 대상으로 분류됐다. 현재 롯데는 경영정상화의 일환으로 롯데기공을 사업별로 분리해 우량 계열사들이 흡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푸드스타는 국내 최초의 패밀리 레스토랑인 T.G.I 프라이데이스로 재미를 톡톡히 봤지만 2004년부터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다. 한때 매출액 기준으로 업계 1위였지만 지금은 3위로 떨어졌다. 석유화학 사업을 하고 있는 케이피케미칼 역시 2007년엔 3700억 원의 흑자였지만 지난해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원가 상승으로 310억 원의 손실을 보며 적자로 돌아섰다.
신 회장의 편법 증여 의혹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계열사에 주식을 증여하면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롯데에서는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면서 “횡령을 한 것도 아니고 회장님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줬을 뿐인데 남들이 이래라 저래라 할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신 회장이 결손법인에 주식을 증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0년 자금 사정이 어렵던 롯데전자 롯데산업 등에 60억 원 상당의 지분을 줬던 것을 시작으로 2007년 12월에는 롯데미도파 롯데브랑제리 롯데알미늄 롯데후레쉬델리카 등 4개 계열사에 2000억 원대 주식을 증여했다.
▲ 신동빈 부회장 | ||
이번 주식 증여도 이러한 논란을 피해가기는 힘들 듯하다. 가장 많은 지분을 받은 롯데기공은 롯데알미늄(18.26%) 호텔롯데(17.38%) 등 그룹 계열사와 신 회장의 세 자녀인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7.57%) 신동빈 부회장(7.57%)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4.72%) 등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롯데기공의 지분 가치가 하락할 경우 신 회장 자녀들도 손실이 불가피했지만 이번 증여로 수혜를 입게 된 셈이다.
푸드스타는 호텔롯데(40%)와 롯데쇼핑(39.76%)이 주요주주로 올라 있는데 롯데쇼핑은 신동빈 부회장이 14.59%로 최대주주고 그 뒤를 14.58%의 신동주 부사장이 잇고 있다. 따라서 푸드스타에 대한 신 회장의 지원사격 역시 두 아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신동빈 부회장이 외식사업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신 회장이 ‘한국 롯데의 후계자인 신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케이피케미칼의 경우 최대주주는 51.86%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호남석유화학. 호남석유화학의 최대주주는 바로 롯데물산이다. 최근 호남석유화학은 회사채 발행 등 그룹 인수·합병(M&A)에 필요한 실탄 확보에 동원되고 있는데 이 때문에라도 재무구조를 탄탄히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롯데의 편법 상속 의혹을 여러 차례 지적해왔던 시민단체들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태세다. 경제개혁연대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봤을 때는 신 회장 자녀들이 부당한 내부거래로 이득을 볼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불법 여부는 검토를 해봐야겠지만 도덕적으로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재무구조가 좋아지면 소액주주들도 혜택을 입게 된다”고 반박했다.
국세청에서도 신 회장과 롯데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증여와 관련해) 제보들이 있었다. 세금 회피 의도가 있었는지 주도면밀하게 따져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