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두 주인공의 모습.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은 결국 이뤄질까. 마치 30대에 다시 만나 옛 추억을 회상하는 <비포 선셋>의 40대 버전이라거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애처로운 감동을 남기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영리하게도 시작부터 관객의 생각을 뒤엎는다.
<비포 미드나잇>은 전작을 봐야 그 깊이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20대 청춘남녀는 <비포 선셋>에서 9년 만에 만나 그날을 추억하는 30대 남녀를 지나 드디어 <비포 미드나잇>에 도착한다.
<비포 미드나잇>에서 두 사람은 이미 쌍둥이 딸까지 둔 중년 커플이 돼 있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은 제시는 자신의 가정을 포기하고 셀린느를 택한다. 두 사람은 10여 년을 함께하지만 정작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더 내면적인 부분이다.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이미 1편인 <비포 선라이즈>에서부터 시작된다. 처음 기차에서 마주친 그들은 독일 부부의 시끄러운 말싸움을 들으며 혀를 찬다. 제시가 독일 부부의 싸움 이유를 궁금해 하자 셀린느는 “나이가 들다보면 남자는 여자의 높은 톤의 목소리를, 여자는 남자의 낮은 톤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하게 된다”라며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사랑이 영원하리라 믿었던 제시와 셀린느도 마찬가지다. 얼굴을 마주하면 아직도 성욕이 끓어오를 만큼 사랑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헤어짐’을 들먹거리며 소리친다. 영화 속에는 그동안 ‘비포’ 커플이 보여준 ‘사랑’에 대한 낭만이 산산이 부서지는 장면들이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서로 다른 이성과 자지 않았느냐며 치졸한 말싸움까지 벌일 정도다.
하지만 싸움 속에서 제시와 셀린느는 관객에게 ‘이게 사랑이야’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오랫동안 살 맞대며 어쩔 때는 친구로, 어쩔 때는 둘도 없는 애인으로 살아가다가도 원수처럼 목에 핏대 를 세우며 싸우는 사이인 것이다. 유독 대화가 많은 영화인 ‘비포’ 시리즈는 이번에도 두 사람의 끊이지 않는 대화 속에서 40대의 사랑과 인생을 관객들의 가슴에 와 닿게 녹여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진 것도 아름답고 영원한 사랑에 대한 물음도 세련됐다. 40대가 된 배우 에단과 줄리의 만남도 볼거리다. 하지만 오래된 커플들이 그렇듯 말다툼 끝에 셀린느의 화가 풀어지는 장면을 엔딩으로 선택한 대목은 다소 맥이 빠진다.
셀린느의 가슴 노출이 화제가 된 참에 차라리 진한 베드신으로 끝내는 게 어땠을까. 그리스의 낭만적 배경에 낭만적 마무리가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영화는 오는 5월 22일 개봉된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