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은 바로 아랍어로 ‘메뚜기’라는 뜻을 가진, 아랍에미레이트(UAE) 내 7대 토호국 중 하나인 두바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경선후보 시절이던 2007년 4월 직접 현지를 방문해 ‘한국이 배워야 할 모범사례’라며 극찬했던 바로 그 두바이다. 쾌속질주를 거듭하던 두바이가 버블 붕괴라는 비상사태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두바이는 정녕 회복 불가능한 몰락의 길로 빠져드는 것일까.
지난 2월 초 두바이 국제공항 주차장에는 얼핏 봐도 3000대가 넘는 장기주차 차량이 목격됐다. 여행을 떠나며 공항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라고 보기에는 차량에 쌓인 먼지가 너무 두꺼웠다. 알고 보니 이 차들의 주인은 최근 들어 본국으로 추방된 외국인 노동자들. 갑작스레 일자리를 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실직 뒤 한 달 내 재취업에 성공치 못할 경우 비자가 만료된다는 규정 때문에 국외 추방되면서 차를 공항에 버려둔 것이라고 영국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한때 외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엘도라도’로 통하던 두바이가 한순간에 ‘눈물의 땅’으로 변해버린 셈이다. 지난해 11월 한 대학병원의 전자의료기록 시스템 공사를 위해 두바이에 입국했던 미국인 모니크 애덤스. 그러나 공사는 자금난으로 중단됐고 그와 동료들은 2월 중순 결국 일자리를 잃었다. 귀국을 앞두고 2005년식 승용차를 중고시장에 내놓은 그는 “매우 실망스럽긴 하지만 두바이도 경제위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며 자위하고 있다.
사실 두바이의 투자자 노동자 소비자는 지난 수년간 두바이 경제가 오로지 위로 올라가기만 하는 롤러코스터라는 환상에 젖어 있었다. 그 환상이 갑자기 깨진 것은 지난해 가을부터. 외부로부터 들어오던 해외직접투자(FDI)는 급속히 줄기 시작했고,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신용경색은 심화됐으며, 거리에는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넘쳐났다.
중산층이 흥청망청 구입했던 자동차들은 할부금을 갚지 못하면서 은행에 차입돼 헐값에 경매에 붙여졌고, 호경기 시절 마치 주식거래하듯 거래가 활발했던 값비싼 콘도들은 가격이 폭락해도 더 이상 거래가 되지 않았다. 놀란 UAE 정부는 지난해 10월 두바이 금융시장에 326억 달러를 투입하며 유동성 확보에 나섰고 금리도 대폭인하, 예금보호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두바이 정부는 올 1월 들어서도 추가로 43억 달러를 지방은행 살리기에 투입했다. 2월에는 두바이 정부 자체적으로 200억 달러를 투입해 국영기업 살리기에 나섰다. 그럼에도 경기하강세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UAE에서 지난해 11월 이후 취소되거나 연기된 대형 건설공사 프로젝트는 57개에 달하며 총액은 25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소된 공사 건수 중 상당수가 두바이 지역에 몰려 있다는 게 <파이낸셜타임스>의 추정이다. 건설이 중단된 프로젝트에는 6억 달러 규모의 팜 트럼프 호텔, 380억 달러를 들여 1000m 높이의 세계 최고(最高) 건물을 만들겠다는 하버 앤 타워 공사 등도 포함돼 있다.
UBS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2년 동안 두바이 지역 주택보유자나 부동산 투자자들이 대금을 제때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액수는 250억 달러에 다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급기야 2월 말부터는 두바이 국영 ‘수자원전력공사’(Dewa)가 예산 부족으로 서비스를 중단할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까지 나돌고 있다. Dewa는 금융기관에 지불해야 할 191억 달러를 ‘지불유예’할 위기에 처했다. 물론 두바이 정부는 Dewa가 실제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정부 차원에서 대납할 여유가 있다며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하지만 핵심 국영기업까지 서비스 중단을 우려할 정도로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두바이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은 사실상 부존자원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외부 자본으로 경제를 이어온 이른바 ‘돈이 돈을 부르는’ 경제 시스템으로 번영을 꿈꿔왔기 때문이다. UAE는 세계 5위 석유 수출 대국이다. 그러나 석유를 비롯한 부존자원은 대부분 두바이가 아닌 다른 토호국 아부다비에 몰려 있다. 대신 두바이는 물류 거점, 관광 대국 등의 모토를 걸고 투자자들을 유혹해왔다.
두바이 정부 차원에서 각종 규제 장벽을 낮추며 외부 자본 유치에 심혈을 기울여왔고 2000년대 이후 저금리 정책을 통해 주택경기를 부양해왔다. 부족한 노동력은 다른 아시아권 저가 노동력을 유입해 충당했으며 알 부즈 호텔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화제를 부를 만한 랜드마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지구촌의 뉴스 포커스를 자국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마치 저금리를 토대로 주택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다 한계점에 이르자 거품이 일순간 붕괴해버리며 금융위기를 맞은 미국과 여러모로 비슷한 경로를 밟아온 것이다.
여기에 그동안 두바이 정부와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장밋빛 환상에 젖어 각종 프로젝트를 무분별하게 진행해왔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애초부터 ‘무모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세계 최초의 F1테마파크 건설이 대표적인 사례. 4억 6000만 달러를 들여 두바이 모터시티에 건립 중이던 이 테마파크는 금융권이 추가 대출을 중단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내년까지 프로젝트 계획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두바이의 추락은 두바이에서 돈을 벌어 본국으로 송금하던 빈곤국 출신 노동자들에게도 큰 고통으로 다가서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자회사 <마켓워치> 최신 보도에 따르면 UAE는 지난해 기준 세계 3위의 해외송금국이다. 즉, 두바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돈이 세계 3위 규모라는 의미다. 이는 전체 인구 600만 명 중 70%가 외국인 노동자 출신인 두바이의 인구 구성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지난 2008년 두바이 외국인 송금액은 그 전년도에 비해 38%나 급증했으나, 세계은행은 올해 외국인 송금액이 지난해보다 9% 정도 느는 것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송금액 증가세가 둔화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경기침체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월 마지막 주 현재 두바이 내 건설현장 인력 중 45%가 해고상태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외국인 출신 노동자로 추정된다.
결국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두바이의 급격한 몰락은 두바이 자체뿐 아니라 두바이에서 성공 신화를 꿈꾸던 해외 투자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모두에게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이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