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작전>의 한 장면. | ||
요즘 증시는 코스피지수 1000포인트(p)선과 1200p선 사이에 갇힌 박스권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코스닥지수도 몇 개월째 300p선 안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다. 얼핏 보면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어야 정상인 장세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올 들어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제자리걸음이지만 시장에서는 주가가 폭등한 종목이 부지기수다. 특히 각종 테마주들이 주식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대표적인 경기부양책인 녹색뉴딜 덕에 증시에서는 4대강 관련주와 풍력, 발광다이오드(LED) 관련 테마주들이 올해 들어 줄줄이 혜택을 봤다.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줄기세포연구 지원 허용 이후 줄기세포 관련주들 역시 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첫 테마주의 혜택은 4대강 관련주들이 입었다. 4대강 정비사업의 대표적인 수혜주인 NI스틸과 문배철강은 한때 연초 대비 주가가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그러나 최근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한 정치권의 논란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최근 주가 상승률은 50%대로 하락했다.
4대강 정비사업 이후 수면 위로 떠올랐던 테마주는 풍력이었다. 풍력 관련주들은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미국 오바마 정부 등 세계 각국이 녹색성장의 주요 테마로 내놓으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풍력발전 단조제품 생산업체인 용현BM을 비롯해 현진소재 등은 60∼90% 가까이 주가가 상승했다. 하지만 이 역시 최근에는 상승률이 소폭 꺾이면서 연초 대비 주가 상승률은 40∼50%대에 머물고 있다.
이들을 뒤로하고 요즘 테마주의 지존 자리에 등극한 것은 오바마 정부의 ‘줄기세포 연구 재정지원 허용’ 조치에 미소 짓고 있는 줄기세포 관련 종목들이다.
코스닥시장의 대표적 줄기세포주인 메디포스트와 줄기세포치료를 연구 중인 차바이오텍이 우회상장한 디오스텍은 지난 9일 오바마 대통령의 허용 조치 서명 후 주가가 상한가를 쳤다. 또 다른 줄기세포주인 산성피엔씨와 이노셀, 에스티큐브 등도 9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강세를 보였다. 이날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하락했었다.
얼핏 보면 테마주로 부각되면서 혜택을 입은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 종목들이 순서를 정한 듯 돌아가면서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실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느냐, 이를 통해 기업이 실제 이득을 거둘 수 있느냐’보다는 ‘정부 정책으로 혜택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매매가 활발해지면서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 셈이다.
테마주들의 이러한 강세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테마주 중 일부는 실제 사업이 건실하게 추진 중이어서 혜택이 명확하게 보이는 종목들도 있지만 일부의 경우 사업계획만 잡아놓고 테마에 편승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워낙 장세가 좋지 않다 보니까 테마주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오르는 셈”이라면서 “특히 일부 업체들은 테마주 상승세에 올라타기 위해 사업계획에 무조건 녹색성장을 집어넣는 경우도 있다. 사업을 추진한다기보다 주가 상승을 통해 이득을 보겠다는 계획을 가진 업체들이 있을 수 있는 만큼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 들어 상장사들 중 녹색성장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올해 사업목적변경 공시를 낸 상장사들은 모두 25개사. 이 가운데 8개사가 풍력이나 태양에너지, LED 등 녹색성장 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또 장래사업·경영계획 공시를 한 18개사 가운데 4개사가 녹색성장 관련 사업을 장래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사업목적에 녹색성장을 추가했다고 해서 이를 당장 추진한다거나 여기서 수익을 얻는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사업목적 추가와 사업 추진과는 현재로선 아무런 관계성이 없다”면서 “요즘 같은 박스권 장세에서는 일부 종목들을 중심으로 종목장세가 두드러지다 보니 이를 노리는 업체들도 나타나게 된다. 사업목적에 녹색성장을 추가했다고 해서 이를 투자 준거의 틀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종목장세가 이어지는 최근 장세가 영화 <작전>처럼 작전세력들이 주가조작에 나서기 좋은 때라고 입을 모은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정부에서 유동성 확보를 위해 돈을 잔뜩 풀어놓은 데다 마땅한 투자처도 없기 때문에 부동자금이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증시까지 약세여서 모든 종목이 오르는 강세장과는 사정이 달라 일부 종목에 대한 자금 집중이 가능하다”면서 “일부 종목이 소문이나 테마를 타고 오르기 시작하면 갈 곳을 찾지 못하던 자금이 한꺼번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작전을 하기에는 아주 알맞은 때”라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거래소(KRX)는 최근 ‘지나치게 주가가 오르면서 인위적인 시세상승을 가져오는 종목들이 있다면 투자 주의를 요망한다’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시장에서 시가총액 70억 원 미만인 77개 종목 중 65%에 해당하는 50개 종목의 지난 2월 평균 주가 상승률이 무려 56.5%나 됐다. 이 기간 동안 코스닥지수 상승률은 겨우 2.68%였다.
게다가 이들 종목들은 실적도 좋지 않아 주가 상승 이유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 종목의 누적순손실(2008년 1월∼9월)은 평균 86억 8000만 원으로 코스닥 12월 결산법인 전체 평균 4억 6000만 원을 훨씬 웃돌고 있다. 여기에 이들 50개 종목 중 66%에 해당하는 33개 종목은 2월에 ‘투자주의, 투자경고 및 투자위험종목’에 해당하는 시장경보조치를 받았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50개 종목 가운데 18개 종목에 불공정거래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집중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한 증시 전문가는 “투자 종목이 마땅치 않을 때 두세 배씩 먹는 종목이 나오면 자금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과거 코스닥시장에서 열 배씩 먹었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두세 배가 돼도 무작정 들어오는 자금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럴 경우 지난해 열풍을 일으켰다가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안겨줬던 재벌 테마주와 같은 일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 작전주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으니 투자 전에 단순 테마보다는 실제 수익이 가능한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