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부산 KT 조성민이 원소속팀인 KT와 재계약을 체결했다는 발표가 났을 때, KT 정선재 국장은 “성민이가 많이 양보해서 이뤄낸 계약이다. 성민이한테 고마운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올시즌 프로농구 FA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던 조성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성민의 결정을 예의주시했던 구단들은 조성민의 KT 재계약 발표가 났을 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계약 기간 5년에 연봉 4억 원+인센티브 7000만 원. 예상보다 적은 조성민의 몸값에 의아한 시선도 있었지만, 조성민은 이미 4월 초에 KT 잔류를 굳혔다고 말한다. 그 중심에는 은인 전창진 감독이 존재한다.
지난 20일, 서울 강남의 한 이자카야 집에서 조성민과 ‘취중토크’를 진행했다. 비시즌이기 때문에 가능한 술자리 인터뷰였다. 코트에서 진중하고 말수 적은 이미지와는 달리 조성민은 충분히 재미있고, 충분히 끼가 있는 남자였다. 3시간가량 진행된 취중토크였지만, ‘토크’보다는 ‘취중’이 더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1쿼터, “소주 두 잔만 마실게요”
(술상을 차려 놓고 앞에 앉은 조성민은 시작도 하기 전에 밑밥을 깔았다. 요즘 ‘빡센’ 훈련으로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소주 두 잔만 마시겠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취중토크’를 진행했던 기자가 경험담을 들려줬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시작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했다가 끝날 때는 2차를 가자고 외친다고. 조성민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생애 첫 FA 계약을 마친 소감이 어떤가.
“FA 계약은 연봉 계약과 다른 느낌을 주더라. 진짜 내가 ‘갑’이 된 듯했다. 주위에서 조언도 많이 해주신 덕분에 구단에 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 FA 계약 과정에서 나에 대한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래도 괜찮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KT와의 재계약을 결심한 시기가 언제인가.
“아내와 장인 장모님께서 더 적극적이셨다. 나를 이만큼 키우고 성장시켜준 팀에 남아 보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돈은 그 다음 문제라는 얘기도 해주셨다. 사실 지난 4월 초 4주간의 LA 트레이닝캠프로 떠나기 전 이미 마음을 굳혔고, 감독님께도 내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다.”
-전창진 감독이 조성민 선수의 생각을 알고 한시름 놓으셨겠다.
“재계약을 할 의사도 없이 KT의 LA캠프에 참가하는 건 아니라고 봤다. 다음 시즌을 KT에서 뛸 마음이 있기 때문에 캠프 참가를 결정한 것이다. 사실 재계약 문제는 나도, 또 감독님도 쉽게 꺼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감독님이 나한테 해주신 배려와 정성을 생각하면 내가 먼저 나서서 말씀을 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으로 출발하는 날, 감독님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내 의사를 전달했다. 감독님도 흔쾌히 내 의사를 받아들이셨고, 구단과의 계약 과정에 알게 모르게 큰 힘을 주셨다.”
-혹시 FA 시장에 나와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고 싶지는 않았나.
“나도 사람인지라 그런 마음이 없진 않았다. 솔직히 KT 잔류가 80%였다면, 다른 팀으로의 이적 가능성이 20% 정도는 됐다. 하지만 올시즌을 위해서는 FA 계약을 빨리 매듭짓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LA 출국 전 결심을 굳힌 것이다.”
-조성민의 LA행을 두고 농구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대두됐다. KT에서 다른 팀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일부러 LA로 떠나보냈다는 얘기도 들렸다.
“LA캠프는 작년에도 갔던 곳이다. 올해 우리 팀 신인선수들 3명과 함께 내가 최고참이 돼 4주간의 트레이닝 캠프를 소화했다. 미국에서 훈련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 무엇보다 훈련에만 집중하고 운동만 할 수 있는 여건이 진짜 마음에 든다. 훈련 끝나면 음악과 독서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농구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최고참이다보니 후배들에게 주머니를 제대로 털렸다. 그들이 KT의 미래를 짊어진다는 생각에 아낌없이 ‘쐈다’(웃음). 장재석 김현수 임종일, 이 친구들은 올시즌 제대로 못하면 큰 일 난다. 내가 투자한 만큼 코트에서 보여주기로 약속했다.”
-질문과 답이 틀리다. 다른 팀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구단에서 LA행을 권유했다는 소문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
“소주 두 잔에 벌써 취기가 도나보다(웃음). LA행은 이미 예정된 스케줄이었다. 단,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KT와의 재계약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LA행은 내가 정중히 거절했을 것이다. 즉, 구단에서 일부러 날 그곳에 보낸 게 아니라는 얘기다.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5월 11일 강병현과 김영환의 결혼식이 있었고, 직접 찾아가 결혼하는 신랑들한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나타나자, 다른 팀 선수들 반응이 저마다 ‘형, KT에서 접촉 못하게 형을 격리시킨다면서요?’라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난 은둔도 아니고, 잠적도 아니고 KT 선수단에 포함돼 수원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진짜 황당했다.”
-그렇다면, 혹시 다른 팀에서의 러브콜은 없었나. 공식적으로는 원소속팀과의 협상 기간에 선수와의 접촉을 금하지만, 그 전에는 연락이 왔을 것도 같다.
“조심스럽게 접근한 팀들이 있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FA 자격을 얻으니까 좋기는 좋더라. 선재 형(KT 사무국장)이 저녁마다 불러내서 맛있는 걸 사주셨다. 그런데 계약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으셨다. 그냥 ‘난 성민이가 참 좋다’ ‘성민이 때문에 농구보는 재미가 있다’ ‘후배들이 널 많이 따르고 의지한다’는 등등의 말씀으로만 무언의 압력을 주셨다(웃음). 갑이 되니까 행복했다(웃음).”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2쿼터, “오이 소주가 맛있는데요?”
(주종이 ‘오이소주’였다. 조성민은 소주를 한 잔 들이킨 후 ‘캬’하는 소리와 함께 술이 맛있다고 얘기했다. 옆에 앉아 있던 홍보팀 박준석 과장한테도 오이소주를 따르며 마셔볼 것을 권유했다. 서서히 발동이 걸린 셈이다. 나중에 정선재 사무국장도 그 자리에 합류했다. 제대로 된 ‘취중토크’가 시작된 셈이다.)
-평소 전창진 감독한테 혼도 많이 나고, 잔소리도 자주 듣는 편이었다. 그런데 전 감독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감독님을 많이 좋아한다(웃음). 여전히 어렵고 무서운 분이지만, 그 분이 갖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KT 선수들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밖에서는 감독님의 스타일에 대해 찬반양론이 있어도, 우리 팀 선수들, 그리고 나는 감독님을 존경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찰스 로드도 농구장 밖에서는 감독님을 많이 따랐다. 감독님도 인간적으로 찰스 로드를 대우해주셨다. 누구보다 난, 감독님을 평생 은인으로 생각한다. 연봉 6000만 원에 불과했던 그렇고 그런 선수를 국가대표 에이스로 키워주셨다. 그런 분을 배신할 수 없었다.”
-지난 5월 15일 삼성 이규섭 선수의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하면서 항간에서는 조성민의 삼성행을 점치기도 했었다. FA 선수 입장에서는 그 자리가 꽤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래도 용기를 많이 낸 것 같다.
“규섭이 형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2010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날고 기는 선배들 틈에서 적응하기 힘들 때 룸메이트였던 규섭이 형이 잘 보살펴주셨고, 그 덕분에 좋은 인연을 이어갔다. 은퇴 기자회견에는 꼭 함께 하고 싶었다. 물론 FA 계약 전이고, 삼성 측 행사라 보기에 따라서는 오해의 소지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만약 삼성과의 계약을 고려했다면 그 자리에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KT 주장 조동현 선수도 은퇴했다. 잊지 못할 송별회를 했다고 하던데….
“FA 계약을 한 날이 스승의 날이었고, 동현이 형의 은퇴도 발표된 날이었다. 그래서 감독님을 모시고 저녁 ‘만찬’을 벌이다 막판에는 재활하느라 술을 마시지 못하는 (김)도수 형과 동현이 형,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밤을 지새웠다. 동현이 형이랑 진짜 많은 얘기를 나눴다. 문제는 그 얘기들이 취중 상태에서 들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함정이 있지만…(웃음). 동현이 형도 울고, 나도 울고, 옆에서 멀쩡했던 도수 형이 진짜 힘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노래방에서 셋이 어깨동무하고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부르고 나왔더니 해가 떠 있었다. 집에 들어가니까 아침 8시였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3쿼터, “감독님, 여기는 어쩐 일로?”
(예고도 없이 전창진 감독이 술자리 인터뷰에 나타났다. 기자도, 조성민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 감독은 강남에서 일을 보고 있다가 정선재 국장으로부터 ‘취중토크’ 얘기를 듣고 잠깐 들렀다고 설명했다. 마침 그 날은 전 감독의 생일. 발 빠른 사진기자 덕분에 케이크가 등장했고, 전 감독은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하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촛불을 껐다. 감독의 등장에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조성민이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보여준 화려한 플레이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당시 유재학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었는데, 소속팀에서 했던 훈련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당시 KT에서는 나 혼자 대표팀에 들어갔다. 그러다보니 책임감이 상당했다. 유재학 감독님과 우리 감독님하고는 동기사이라 내가 잘해야 감독님 얼굴이 산다는 생각에 독을 품고 훈련에 참여했다. 그런데 당시 유 감독님한테 혼난 선수들이 많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지적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속으로는 ‘내가 우리 감독님한테 잘 배우고 왔구나’하고 기분 좋아했다. 대표팀에 합류하면 처음에는 소속팀 유니폼을 입게 된다. 그럴 때 선수들 사이의 기 싸움이 대단하다. 서로 질 수 없다는 각오로 살벌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더 자극이 됐다. 한쪽 가슴에는 태극기가, 또 다른 한쪽에는 KT 로고를 새기고 뛴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조성민이 꼽는 최고의 용병은 누구인가?
“기량면에서는 찰스 로드이고, 인성적인 면에서는 제스퍼 존슨이 기억에 남는다.”
-지난 시즌에는 이런저런 부상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원래 부상이 거의 없는 편이었는데, 지난해 겹쳐서 터졌다. 뜬금없이 골반에 이상이 오지를 않나, 발바닥에 부상을 입지 않나, 잘 안풀리려다보니 부상이 몰려서 찾아왔다. 팀에서 차지하는 내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부상으로 코트에 나서지 못한 데 대한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다. 무엇보다 지난 시즌 6강 플레이오프 탈락은 개인적으로 창피했고, 팀한테 미안했다. 더욱이 다른 팀들이 KT를 쉽게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는 열 받아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올시즌에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후배들도 점차 성장하고 있고, 부상 당한 선수들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KT의 이번 시즌은 기대를 해보기에 충분하다.”
-혹시 어떤 선수가 부러웠거나 질투가 난 적이 있었나.
“그런 건 없었고, 분해서 울었던 적이 있다. 감독님이 원하는 바에 못 미친다는 생각에. 지난 시즌 초에 내가 마구 헤매는 모습을 보이자, 감독님께서 방으로 부르셔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오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왠지 모르게 내 자신이 참 못나보였다. 이런 놈이 무슨 ‘에이스’냐며 자책도 했다. 참으로 가슴이 아팠던 시간들이었다.”
-조성민이 꼽는 현역 최고의 슈터는?
“(한참 골똘히 생각하다가)내가 됐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타이틀을 갖고 싶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4쿼터, “남자, 조성민이 궁금하다”
(이쯤 되면 제대로 된 인터뷰를 진행하기가 어렵다. 녹음기에 의지하면서 중심 잃지 않고 질문에 매달렸다.)
-결혼한 지 1년이 넘었다. 아직 신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조성민의 결혼 생활이 궁금하다.
“훈련 때문에 아내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잘 살고 있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바로 음식물 쓰레기 처리와 화장실 사용법이다. 아내를 도와주려고 생애 처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했다가 통 안에 든 음식물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다른 건 다 해도 도저히 그것만은 더 이상 못하겠다고 버텼다. 화장실도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인 차이로 인해 사용하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아내가 그걸 못 견뎌하더라. 그래서 안방에 있는 화장실과 거실에 있는 화장실을 각각 전담해서 사용 중이다.
-운동선수들이 가끔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다. 집에서의 조성민도 그런 스타일인가?
“집에 가면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있으려 한다. 아내가 많이 서운해 한다. 음식물쓰레기도 싫어하지만, 분리수거하는 날이면 가급적 늦게 들어가려고 꾀를 피운다. 내가 그래도 농구선수인데 분리수거하려고 박스나 페트병 등을 안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좀 그렇지 않나. 경비 아저씨가 날 볼 때마다 ‘(FA)계약했어요?’하고 물어보셨다. 너무 적극적으로 물어보시기에 혹시 토토하시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다(웃음). 경비 아저씨가 예의주시하고 계시는 탓에 더더욱 분리수거를 할 수 없었다.”
-2세를 기다릴 것 같다.
“노력 중이다(웃음). 서로 건강한 남녀가 만났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지 않겠나. 포항에 계시는 장인, 장모님께서 더 아기를 기다리신다. 부모님이 안 계신 나한테 결혼과 함께 또 다른 부모님이 생겼다. 정말 아들처럼 잘 챙겨주신다. 아내와 두 분을 떠올리면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다.”
조성민한테 궁금한 게 많았다. 은퇴한 서장훈에 대한 얘기도 묻고 싶었고, 가드의 계보를 잇는 양동근-김선형에 대한 생각도 알고 싶었다. 특히 2006년 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회한도 듣고 싶었지만,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오이소주에 흠뻑 젖어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굳이 그 얘기를 듣지 않아도 충분히 조성민의 색깔을 느끼고 볼 수 있었다. 팀도, 감독도, 또 선수도 화학적으로 이렇게 궁합이 잘 맞을 수 있을까 싶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