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치가 있는 모든 것이 담보가 될 수 있다. 때론 예인선, 납골묘 등 상상 이상의 물품들을 담보로 급전을 대출받기도 한다. 사진은 전당포 건물로 기사내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이상민 인턴기자
몇몇 사채업자들에게 담보의 종류에 대해 물었더니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자산가치가 있는 모든 것이 담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답을 원하자 사채업자들은 자산가치가 무엇을 뜻하는지만 알면 된다고 답했다. 그들이 말하는 ‘자산가치가 있는 것’은 ‘누가 사용해도 무리가 없는 것’을 뜻했다.
아무리 값비싼 물건이라도 특수한 환경에서 쓰이거나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담보가치가 떨어짐은 물론이다. 예를 들어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반도체기계가 담보가 될 수 있을까. 단순히 생각하면 워낙 고가의 물건이라 충분한 담보가치가 있을 것이라 판단되지만 정답은 반대다.
이러한 경우 재무제표에는 반도체기계의 가격이 수천억 원으로 표기돼 있으나 담보가치로 봤을 때는 ‘0원’에 가깝다는 게 사채업자의 설명이다. 반도체기계를 담보로 대출을 해줬다가 돌려받지 못할 경우 이를 되팔아 현금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특수기계라 판매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고물가격으로 환산해 대출은 가능하다.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선 주로 냉동육이 담보로 제공된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농어촌에서는 논, 밭, 곡식, 작물, 과목, 어선을 비롯해 울음소리를 내는 가축이라면 모조리 담보가 될 수 있다. ‘씨소’와 같은 몸값 비싼 가축은 한 마리에 수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다만 몸집이 작은 가축은 성체가 됐을 경우에만 담보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가축의 경우 동산이기 때문에 사채업자들의 반갑지 않은 방문을 자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담보물이 잘 있는지를 보겠다는 것을 빌미로 접대를 요구하거나 ‘병에 걸려 곧 죽을 것 같다’며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임의로 판매해버리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심지어 가족납골묘까지 사채시장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매장보다 화장을 택하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담보다. 보통 납골묘를 담보로 할 때는 회원분양금액을 기준으로 40~50%를 대출금으로 설정한다. 서울 용산구의 한 전당포업자는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사채업자들이 종종 납골묘를 받아준다. 하지만 납골묘의 가치가 날로 떨어지고 있어 그리 활발하게 거래되진 않는다. 한창 납골묘 열풍이 불었을 때는 목이 좋은 자리면 프리미엄까지 붙여서 대출을 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특이한 담보들은 끝이 없다. 각종 가재도구, 미술품, 고급와인, 옥상 전광판, 관광버스, 서바이벌 총기류부터 주차장 운영권, 택시면허증까지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어떤 특별한 담보물이라도 돈을 갚지 못해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가지 못할 경우 똑같은 최후를 맞는다. 평범하게는 경매시장을 통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거나 ‘담보물 처리반’을 통해 어둠의 경로로 되팔려 나가기도 한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신용 없는 서민들은 어쩌나
한때 우리는 ‘(연대) 보증 때문에 사업이 망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 연대보증의 ‘사슬’도 이제는 끊어졌다. 지난해 5월 금융위원회의 연대보증 폐지 조치를 시작으로 올해부터는 예외 허용까지 금하기로 한 것이다. 평생을 ‘금융노예’로 살아야 했던 연대보증 피해자들의 숨통도 트이게 생겼다. 여기에 다가오는 7월부터는 제2금융권의 개인대출 분야 연대보증 제도도 폐지돼 순차적으로 100만 명 이상이 보증에서 벗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보증 잘못 서 패가망신했다’는 말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현재 제2금융권에서의 연대보증은 대출, 보증보험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대출의 경우 연대보증금액은 총 51조 5000억 원으로 추산되며 보증보험 역시 23조 3000억 원으로 천문학적인 숫자에 육박한다. 연대보증인수도 각 141만 명, 14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번 조치로 인해 ‘빚 연좌제’의 고리가 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대부업체에서도 연대보증이 사라진다.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 계열사 미즈사랑, 원캐싱), 산와대부, 월켐크리디라인대부, 바로크레디트대부, 리드코프는 연대보증 폐지에 동참하기로 결정한 것. 업계에서는 고객 절반 이상이 그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나머지 대부업의 연대보증은 우선 자율에 맡기고 관행개선 방안을 추가로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금융권에서는 벌써부터 긴급 대출 회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땐 금리를 인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칫 서민들의 가계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될 위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얼마든지 편법을 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저축은행에서도 보증인이라는 이름만 붙지 않았을 뿐 대출을 받을 땐 ‘참고인’을 내세워야 했던 것처럼 또 다른 형태의 연대보증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담보 마련이 불가능한 서민들이 불법사채시장으로 흘러들어갈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신용이 좋지 않아 연대보증으로 겨우 대출을 받던 사람들의 경우 불법 사채만이 유일한 대출 경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업계에서는 대부업체나 불법사채시장의 경우 제도권 금융보다 훨씬 비싼 이자를 감당해야 하기에 서민들에게 더 큰 빚 부담을 줄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담보차 가로채 대포차 만들기
하지만 이는 사기극의 시작일 뿐이었다. 계약서를 서둘러 작성한 뒤 담보에 대한 증거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차를 빌려가서는 연락두절이 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들은 차를 손에 넣기만 하면 대포차로 만들어 손쉽게 중고로 팔아버렸다. 졸지에 채무자들은 100만~200만 원 소액에 차를 잃는 꼴이 된 것. 경찰에 신고를 하더라도 이미 대포차로 만들어졌거나 해외로 빠져나간 경우도 많아 되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담보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감정평가사의 도움을 받는다. 이들의 말 한마디에 따라 담보 가치는 천차만별이 되는데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저축은행비리 사태에서도 감정평가사를 이용한 담보조작 수법이 공개되기도 했다.
감정평가사 이 아무개 씨는 한주저축은행으로부터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고 담보가치가 200만 원에 불과한 부동산을 3억 원짜리로 부풀리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허위감정서를 발급해주다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한주저축은행 대표는 허위감정서를 이용해 차주 40명에게 약 226억 원을 대출해준 뒤 80억 원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은행 돈을 빼돌렸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이자에 발목 잡혀 ‘성노리개’ 전락
이처럼 상환능력이 부족한 유흥업소 여성들에게 사채업자들이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믿을 만한 ‘특별한 담보’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유흥업소 여성들은 목돈을 빌리면서도 재산가치가 있는 담보를 내세우지 않는다. 바로 여성의 몸 자체가 담보가 되는 것. 한 명으로는 위험부담이 높다고 판단될 때 4~5명이 서로 연대보증을 서기도 한다. 만약 누군가가 도망이라도 가면 나머지 사람들이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는 식이다.
몸을 담보로 돈을 빌리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원하는 사채업자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곳이 있어도 일하는 지역이 아닌 곳에서 거래를 했다가는 화를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채업자들도 자신이 관리하는 영역이 있는데 그 범위 내에서 손님(유흥업소 여성)을 빼내갈 경우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 업소에서는 속칭 ‘마이킹’만 사용가능하도록 규율을 정해놓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마이킹은 유흥업소 업주가 직업여성과 계약을 맺으면서 지불하는 선불금을 말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돈을 빌린 뒤 한 번이라도 연체가 되면 곧바로 사채업자들의 압박이 시작된다. 유흥업소 여성들의 특성상 하루 동선이 일정해 꼼짝없이 협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일하는 시간, 쉬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간혹 도망갔다 다시 잡혀오는 여성들도 있는데 이럴 경우 빚이 배로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이자가 쌓이고 결국 막다른 골목까지 몰리면 사채업자는 유일한 담보였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이자탕감을 핑계로 본인이 직접 성관계를 요구하기도 하며 자신들의 손님을 데려와 억지로 성접대를 시키는 날도 있다. 간혹 미모가 뛰어난 여성들은 빚을 없애주는 대신 사채업자의 성노리개로 팔려가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수모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지난 2010년 경북 포항시에서는 유흥업소 여성 3명이 연쇄 자살한 사건도 발생했다.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이들은 서로 연대보증을 섰던 관계였으나 갈수록 빚이 늘자 결국 한 명이 자살했고 그의 빚까지 떠안은 나머지 여성들도 차례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졌다.
포항 사건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유사한 사례들이 발생하자 검경은 특별단속을 통해 불법사채업자들을 단속했으나 일시적인 효과만 있었을 뿐 유흥업소 여성들은 여전히 그들의 검은 손아귀에 갇혀있는 신세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