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플루가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
신종 플루 확산 소식에 국제 금융시장은 화들짝 놀라며 심한 몸살을 앓았다. 글로벌 경기 회복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로 주요 선진국 증시의 주가가 이틀째 하락했으며 석유와 구리 등 원자재, 돼지고기 등의 국제 상품가격도 동반 하락했다. 특히 국내외 증시에서는 신종 플루의 영향으로 항공·여행주가 하락한 반면 제약·바이오 관련주들은 상승하는 등 업종별로 주가 등락이 엇갈렸다.
과거 사스가 창궐했을 때 전 세계 금융시장의 초기 충격은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사스 발생국과 인접 국가의 증시다. 사스로 흉흉했던 2003년 3월에서 5월 사이 싱가포르와 홍콩 증시는 연초에 비해 각각 10.1%, 9.8% 하락했다. 국내 증시는 카드 사태의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17.9%나 급락했다.
또 같은 해 1월부터 4월까지 중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한국 등의 증시에서 업종별 등락률을 보면 항공이 평균 20.96% 떨어져 피해가 가장 컸고, 소비심리 위축으로 소비재·의류(-15.45%)도 직격탄을 맞았다. 경기 하강 국면과 공교롭게 겹쳤는지는 엄밀히 따져봐야 하겠지만 전 세계 교역량의 증가율이 2003년 1월 6.7%에서 같은 해 6월 4.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만약 이번에 신종 플루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 환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면 인력과 물자의 이동이 줄어들어 세계 경제와 증시 전반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때마침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신종 플루가 세계 민항업계에 미치는 타격이 과거 사스 수준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과거 끝이 안 보이는 듯했던 사스의 영향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사스가 본격적으로 확산, 환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때 국내 증시는 2003년 3월 저점 대비 6월 말 34.01% 반등했다. 또 싱가포르나 홍콩도 5월 이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며 사스 피해에서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사스 피해가 가장 컸던 중국 증시는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에 힘입어 연초부터 꾸준히 오름세를 나타냈다.
그때 국제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장기적으로 사스효과가 미치는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교훈을 얻었다. 단기간 초기 충격은 불가피했지만 국제 경제환경의 장기 추세를 거스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달은 것이다. 이번 신종 플루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투자심리가 빠르게 안정된 배경도 이러한 ‘학습효과’ 덕택이다.
전문가들은 신종 플루 발생 이틀 후부터 투자자들의 심리적 동요에 휩쓸리지 말라는 조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김승현 토러스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종 플루가 전 세계 유행병으로 본격화될 경우에는 금융시장에 심각한 충격을 가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현재로선 그렇게 우려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이기는 했으나 선제적 조치 성격이 강해 보인다”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초기 백신 대비책을 발표하는 등 대응이 아직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전망처럼 지난주 중반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미국과 유럽 증시는 다시 경기회복 등에 대한 기대감에 큰 폭으로 오르고 유가와 구리 등 상품가격도 상승세를 보였다. 신종 플루 확산에 따른 경제 타격 우려로 하락세를 보였던 원자재 가격도 경기회복 기대 속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심지어 신종 플루의 진원지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이 우려돼 증시와 통화 가치가 급락했던 멕시코 증시도 신종 플루 악재가 제한적일 것이란 기대 속에 반등했다.
전문가들은 신종 플루가 치료가 가능하고 국제사회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으므로 과거 사스 확산 때와 같이 글로벌 증시에 대한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승우 대우증권 연구원은 “신종 플루 바이러스가 일반적인 항바이러스제 약물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세계보건기구가 밝히고 있어 신종 플루가 통제되기 어려운 수준으로 확대돼 국내외 주식시장과 글로벌 경제를 어려운 국면으로 내몰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신종 플루 공포를 넘어선 국내외 증시의 강세 배경에는 경기회복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선진국가의 경기침체 완화조짐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1분기 소비지출이 2.2% 증가했다고 밝혀 예상치인 0.9%를 크게 넘어서며 2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일본도 3월 산업생산이 전달보다 1.6% 증가, 6개월 만에 상승세를 나타냈다. 한국 역시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4월 기업체감경기지수(B신종 플루)가 69로 12포인트 상승, 2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최재식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내 경기가 이미 저점을 통과했다는 확신과 미국 경기의 저점을 지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신종 플루 후폭풍으로 조정 받았던 증시가 반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유선 대우증권 이코노미스트도 “신종 플루 영향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동안 상승속도가 빨랐던 데 따른 조정일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조정이 있겠지만 경기나 증시가 추가 상승 여지가 있어 기존 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로선 낙관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종 플루 잠복기간이 일주일인 데다 국내에도 2차 감염이 현실화되는 등 확산이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시장 역시 일주일 이후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다시 한 번 요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다른 악재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김성봉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신종 플루 영향 등으로 2분기(4∼6월) 실물경제 침체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도 “미국 금융주의 향방 등 남아 있는 대외 악재가 많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