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이 원작인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최근 영화 제작 편수가 늘면서 신선한 이야기를 찾아야하는 제작진의 ‘구애’와 맞물려 웹툰은 기발한 이야기의 원천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웹툰의 영화화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회의적인 시선의 대부분은 “이미 그림과 화면으로 구성된 웹툰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은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대중에게 인정받은 ‘안정된 이야기’로 영화 제작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려는 시도라는 회의론까지 나오고 있다.
연예계에서 가장 ‘핫’한 스타로 꼽히는 연기자 김수현은 첫 주연 영화로 웹툰이 원작인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택했다. 최종훈 작가가 쓴 원작 웹툰은 온라인에서만 2억 40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작품. 온라인에서 숱한 화제를 뿌려온 만큼 영화 기획단계에서부터 상당히 높은 기대를 모았다.
원작 팬들이 거는 기대는 영화의 초반 흥행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개봉 하루 전인 4일, 예매율이 83%까지 치솟았다. 한국영화 사상 예매율 신기록이다. 여세를 몰아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1위까지 차지했다. 3달 가까이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던 한국영화가 비로소 기지개를 펴는 셈이다.
영화계에서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초반 기대를 웃도는 흥행 성적으로 화제를 뿌릴 수 있던 힘은 원작 웹툰이 쌓은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에 있다고 보고 있다. 초반 흥행 기세를 타고 웹툰이 원작인 영화 최고 흥행 기록까지 넘보고 있다.
웹툰이 본격적으로 영화로 옮겨진 건 2006년 강풀 작가의 <아파트>부터다. 이후 2008년 <바보>와 <순정만화>, 2011년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2년 <이웃사람>과 <26년>까지 강풀 작가의 웹툰은 활발하게 영화화됐다.
웹툰이 원작인 영화들. <이웃사람> <전설의 주먹>(왼쪽부터).
물론 웹툰이 완벽한 킬러콘텐츠는 아니다. 웹툰을 영화로 제작할 경우, 그림을 영상으로 옮기는 것 외에는 특별한 재창조의 과정이 없다는 한계론이 나온다. 이를 두고 “웹툰의 딜레마”라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개봉한 스릴러 <이웃사람>은 원작 웹툰의 장면 대부분을 영화로 옮기면서 흥행에 성공했지만 한편으론 “새로울 게 없다”는 혹평에도 시달려야 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도 마찬가지. 원작의 팬들이 영화가 개봉한 뒤 가장 많이 내놓는 평가 역시 “웹툰을 그대로 옮겼다”는 지적이다.
영화화 작업에 있어서 각색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소설과 달리 웹툰은 이야기의 진행과 등장인물, 결말까지 원작의 설정이 바뀌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결국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영화로 다시 봐야 하는 관객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관객의 기대치가 떨어지고 극적인 재미도 사라진다.
이 같은 한계는 웹툰 원작 영화의 흥행 수치로도 증명된다. 그동안 영화로 만들어진 웹툰은 20여 편에 이르지만 최고 흥행 기록은 <이끼>가 세운 340만 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1000만 관객 한국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고, 최근 500만~600만 명을 모으는 영화도 자주 등장하는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그 흥행 수치는 현저히 낮다.
인기 웹툰이 원작일 때, 이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영화 연출자가 느끼는 부담 역시 상당하다. 창작자가 가장 싫어하는 ‘비교 당하는 일’에 처음부터 노출되기 때문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만든 장철수 감독은 “연출을 맡는 순간부터 가진 가장 큰 부담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서, 실패하지 않은 작품으로 기억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는 말로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A급 작가’ 최고 1억대
최근 들어 웹툰 판권을 구매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웹툰이 기발한 이야기의 원천으로 각광받으면서 영화 판권료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강풀이나 <이끼>의 윤태호 등 흥행 실력을 인정받은 기성 작가의 작품은 물론 신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판권 경쟁도 치열하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1000만∼2000만 원에 머물던 웹툰 판권가격이 소위 ‘A급 작가’에 한해 최고 1억 원대까지 올랐다. 과잉 경쟁에 따른 가격 상승의 영향이 크다. 신인 작가라고 해도 아이디어만 좋다면 데뷔작 판권료로 1000만 원 이상을 받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인지도가 높은 작가의 경우 보통 3000만 원에서 많게는 6000만 원대의 판권료가 책정된다”며 “뚜렷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근 1~2년 사이에 금액이 상승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웹툰 작가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에이전시까지 생겼다. 영화 제작으로 워낙 수요가 많다보니, 이 같은 시장 상황을 반영한 판권료 재정립 작업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웹툰 판권료는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영화 제작편수는 늘고 있지만 그만큼 소재가 모자란다. 웹툰은 시대 흐름을 순발력 있게 담아내는 장르이고 경쟁력이 갖췄다”고 인기 이유를 짚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