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동구 운림동 임야(위 사진). 전남 영암군 미암면 토지(아래 사진). | ||
조사위가 이번에 국가귀속을 결정한 현준호 후손 명의 부동산은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 4××-24 등 전답 2필지와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산 1××번지 등 임야 6필지로 총 8필지다. 토지 면적은 총 3만 2762㎡(약 9927평)이며 이 토지들의 공시지가 합산액은 5억 6000만 원에 이른다. 조사위가 공개한 실거래가는 10억 원을 웃돈다.
현준호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9호의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를 한 인사에 해당돼 2006년 7월 조사위 출범 당시부터 주요 조사대상에 올라 있었다. 조사위는 지난 2007년 여러 차례에 걸쳐 현준호가 소유했던 땅들에 대한 조사개시 결정을 내리고 국가귀속을 위한 조사활동을 펼쳐왔다.
조사대상에 올랐던 땅은 전남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와 학산면 학계리 일대, 그리고 광주 운림동에 있는 임야였다. 조사개시 결정이 내려진 직후인 지난 2007년 4월 광주지방법원과 목포지원 등은 이 땅들에 대해 양도 담보권설정 등 일체의 처분행위를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조사위는 2년여에 걸친 조사활동 끝에 지난 4월 24일 전남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 일대, 그리고 5월 22일 광주 동구 운림동 일대 현준호 후손 명의 땅에 대한 국가귀속결정을 내렸다. 조사대상에 포함돼 있던 학계리 땅이 환수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 조사위 관계자는 “친일행위로 취득한 재산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학계리 땅에 대한 법원의 가처분등기는 지난 7월 1일자로 말소됐다.
▲ 현준호 | ||
그러나 현준호의 후손들은 “친일파가 아닌 항일지사”라며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이번 조사위의 국가귀속 대상으로 결정된 토지 소유주 현 아무개 씨는 과거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헌납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며 호남은행을 설립해 힘없는 동포들을 위해 많은 돈을 쓰셨고 동포를 괴롭히는 일본 경찰과 멱살잡이도 서슴지 않은 분”이라 밝혔다.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고 해서 상세한 내용도 살피지 않고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주장이다. 현준호 본인 역시 지난 1949년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서 친일행위를 강력하게 부인한 바 있다. 당시 현준호는 “중추원 참여나 군비 헌납 등이 조선인을 위한 활동의 일환이었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친일재산 국가귀속 절차는 ‘조사개시결정→조사활동→국가귀속결정→국가귀속조치’의 순으로 진행된다. 해당 재산 소유자는 조사개시결정과 조사활동 단계에서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국가귀속결정 이후에는 90일 이내 행정소송을 제기해 국가귀속을 막을 수 있다. 조사위에 따르면 국가귀속결정이 내려진 이후 아직까지 현준호 후손들의 소송 제기 움직임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위 관계자는 “대부분 소송 준비로 90일을 다 채운 뒤 기간 만료에 임박해서야 공개적인 법적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 조사과정에서 현준호 후손 측은 “돈 때문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이의신청을 했던 만큼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커 현준호 친일 논란은 법정에서 판가름 날 듯하다.
현준호의 친일행적은 국가인권위원회 새 위원장 선임을 둘러싼 논란의 밑거름이 돼 더 많은 시선을 받고 있다. 김을동 친박연대 의원이 최근 취임식을 치른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관련해 ‘현 위원장의 종증조부가 현준호’라며 자격시비를 건 것이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과 광복회가 공동으로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된 데다 최근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까지 내려진 현준호의 후손이 인권위의 수장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편 현준호 외에도 조사위의 친일행위자 조사대상 중에는 현준호가 설립한 호남은행 전무를 지낸 데 이어 중추원 참의에 올랐던 김신석이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김신석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부인 홍라희 씨의 외할아버지가 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국가귀속 대상재산 리스트엔 오르지 않은 김신석에 대해 조사위는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므로 당연히 조사대상엔 포함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