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들어 증시가 급등하면서 적자의 수렁에 빠졌던 신생 증권사들이 흑자를 기록하며 기존 대형 증권사들과 경쟁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 ||
당시 금융당국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5개월을 앞둔 상황에서 증권업계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고 국내외 금융 및 산업자본의 진출을 허용했다. 기존 증권사들은 신생사 설립으로 ‘파이가 줄어들고 무한경쟁으로 업계 출혈 경쟁이 예상된다’며 적극적인 반대논리를 펼쳤다. 더욱이 모든 산업이 글로벌 경기 침체를 대비해 구조조정에 나서는 분위기에서 증권업계는 오히려 회사가 늘어나는 ‘역주행’이 시작됐다.
1년이 지난 지금 신생 증권사 12개사는 출범 2년차를 맞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리먼브러더스 한국 지사가 사라지고, 하나IB증권이 하나대투증권과 합병하면서 2개가 줄어든 것을 제외하면 신생사들은 출범 1년차를 무사히 넘겼다. 금융투자협회에 소속된 국내외 회원사는 모두 60개사다.
이들 신생 증권사들은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위험한 적자행진을 이어갔다. 심지어 적자규모가 300억 원을 넘어선 회사가 나올 정도로 깊은 수렁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 들어 증시가 급등하면서 신생 증권사들이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이들 신생사 12개 가운데 KB투자 이트레이드 HMC투자증권이 2008년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4월)에 흑자로 돌아섰다. KB투자증권이 470억 원으로 지난해 129억 원보다 263.38% 늘어났다. 이트레이드 HMC투자증권도 각각 212억 원, 14억 원의 흑자를 냈다. 삼성 우리 대우 현대 등 주요 증권사들 순이익이 전년 대비 20∼50%의 줄어든 것과 비교해 볼 때 뛰어난 성과를 거둔 것이다. 여기에 지난 5월 기준, LIG와 IBK도 누적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한 것으로 증권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KB투자증권과 이트레드증권은 지점이 없는 가운데 기존 사업에 집중해 왔으므로 향후 외형성장이 본격화할 경우 질적 성장도 동시에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단 KB투자증권은 지점망 확대, 순이익 증가 등의 단기성과에 치중하지 않을 것으로 밝히고 있다. KB투자증권은 KB금융지주에 걸맞은 대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증권가에서 KB투자증권의 M&A 관련 루머가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회사 방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신생 12개사 가운데 HMC투자증권의 고속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HMC투자증권은 지난해 4월 1일 현대차그룹이 ㈜신흥증권을 인수해 사명을 HMC투자증권으로 바꾸고 새롭게 출범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현대차그룹 및 계열사 임직원 12만 명과 하청업체까지 총 25만 명을 조기에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고객으로 확보할 경우 계열사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카드 신화’를 만든 제갈걸 사장이 HMC투자증권을 이끌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증권가의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HMC투자증권의 출범 2년차 예상실적은 놀랍다. 증권가에서는 HMC투자증권의 2009년 회계연도 순이익이 7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2008년 회계연도 순이익 14억 원과 비교해 4508.39% 늘어난 엄청난 수치다. 2009년 1분기(4∼6월)부터 170억 원의 순이익을 달성할 경우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실적 호전은 공격적인 외형확대로 인한 초기 투자비용 결손을 해소하면서 거둔 성과이기 때문에 더욱 증권가에서 주목받고 있다. HMC투자증권은 현대차그룹의 거점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지점망을 확대해 지점 수를 17개에서 29개, 직원 수는 317명에서 626명으로 2배 가까이 늘렸다. 또 2008년 7월과 2009년 6월, 두 차례의 성공적인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또한 1688억 원에서 5618억 원으로 3배가 늘어났다. 증권업계의 자기자본 기준으로 이는 14번째의 규모다.
IBK은행이 출자해 만든 IBK투자증권도 2008년 12월 월간 흑자전환에 이어 지난 5월 누적흑자를 기록했다. 2009년 연간 흑자 달성에도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유상증자에 성공해 자기자본이 3770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업계 30위권 안으로 진입했다.
IBK증권은 영업 개시 1년 만에 계좌 수 8만 개, 예탁자산 4조 원을 돌파하는 등 신생사 중 가장 탁월한 영업성과를 기록했다. 특히 IBK은행의 고객을 이용한 시너지 창출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은행과 증권 시너지 통장 등 공동상품 개발부터 교차판매, 공동 딜 추진, 자원 공유 등 시너지 관련 중장기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형승 IBK투자증권 사장은 “남들과 똑같은 전략으로는 잘해봐야 중하위권 증권사밖에 될 수 없다”며 “차별화를 통해 조기에 선두권 증권사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LIG투자증권은 LIG손해보험의 100% 지분투자로 2008년 6월 설립됐다. LIG투자증권은 처음 50명의 직원으로 시작해 현재 160명에 이르며 서울 4개, 구미와 부산에 각각 1개씩 총 6개의 지점도 만들었다. 영업개시 4개월 만인 2008년 11월 첫 월간 흑자를 기록한 후 매월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업은 인재가 리드한다’는 소신을 가진 유흥수 사장이 1년 동안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인재 영입이다. 시장에서 검증된 우수인력을 확보, 적극적인 영업을 펼쳐 신설 증권사 최초로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거래증권사로 선정되는 성과를 일궈냈다. 현재 증권계좌 수는 2만 5000개, 자산은 9조 원에 육박한다.
이들 신생사들의 진입으로 증권업계의 인력 수급과 영업 상황은 크게 변화했다. 올 들어 이들의 실적과 재무구조는 급격히 개선되고 있는 추세다. 오히려 100년 만에 찾아온 위기 속에서 기회를 얻은 행운아로 탈바꿈할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회사 자체적으로 생존 경쟁을 위해 치열한 1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존 발판을 마련한 이들 신생사들은 이제 성장을 위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신생 증권사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년 동안 신규 사업 진출과 금융 당국 규제를 포함해 기존 대형 증권사들과의 경쟁이 생각보다 힘들었다”며 “하루하루 벼랑 끝까지 몰렸다는 생각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위기 속에 기회가 있듯이 100년 만에 맞은 글로벌 위기 속에서 생존한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매년 고속성장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