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처의 섹스 파트터였던 애슐리 뒤프레(왼쪽)는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갑작스런 유명세를 치렀다. EPA/연합뉴스
엘리엇 스피처의 뉴욕 주지사 임기는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못 했다. 1년 정도 지났을 때 그의 은밀한 사생활이 드러났다. 낮엔 법과 정의의 화신이었던 엘리엇 스피처가, 밤엔 비밀스러우면서도 부적절한 관계를 즐기는 호색한이었던 것이다.
2008년 2월 13일이었다. 엘리엇 스피처 주지사는 워싱턴에 있는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크리스틴’이라는 예명으로 불리는 콜걸을 만났다. 스피처의 미 연방법원 진술서에 의하면 그녀는 미국계 여성이고 작고 예쁘장하며 흑갈색 머리를 지녔다. 165센티미터에 47킬로그램 정도 되는 늘씬하면서도 글래머러스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뉴욕에서 워싱턴D.C까지 왔고,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모든 경비는 스피처가 부담했다. 뉴욕에서 오는 기차 요금, 역에서 호텔까지의 택시 요금, 그녀가 호텔에서 사용하는 미니바와 룸서비스 그리고 호텔 비용이 모두 그의 지갑에서 나온 것이다. 크리스틴과 화끈한 밤을 보낸 후 스피처는 현금으로 4300달러를 주었다. 여기엔 에이전시 비용 1100달러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이후 이용의 계약금과도 같은 것이었다. 호텔 방을 예약할 때 썼던 이름은 조지 폭스. 헤지 펀드 투자자 이름으로, 폭스는 스피처의 절친이자 거액의 기부금을 낸 사람이기도 했다.
아무도 모를 것 같았던 스피처의 섹스 행각이 드러난 건 돈 때문이었다. 그가 거래하는 노스 포크 은행은 수상한 자금의 흐름을 포착했고, 이에 국세청은 은행 비밀 방지법에 의거해 자료를 요구하게 된다. 스피처는 매춘 조직의 형식상 간판인 프론트 컴퍼니에 거액을 송금하려 했는데 법적으로 1만 달러 이상의 송금은 신고를 하게 되어 있기에 금액을 쪼개서 여러 번에 걸쳐 보내려 했다. 하지만 은행은 송금을 거부했다. 편법이기 때문. 그리고 혹시나 유명인사인 스피처가 범죄 조직에 납치되어 강압적으로 그런 방식의 송금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아이디가 해킹당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은행은 국세청 범죄 수사팀에 의뢰했고, 국세청에선 FBI에 넘겼다. 그렇게 수사는 시작되었다.
FBI의 수사에 의하면 엘리엇 스피처는 적어도 7명의 여성과 6개월 정도에 걸쳐 관계를 맺었으며, 여기에 1만 5000달러의 돈을 썼다(현재 환율로 1700만 원에 가까운 돈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지사 당선 이후의 일이었다. 수사가 계속되면서 밝혀진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그는 뉴욕주 법무장관 시절부터 고급 매춘의 단골 이용자였으며 적어도 8만 달러, 우리 돈으로 9000만여 원의 돈을 썼던 것이다. 사실 FBI는 1년 전부터 스피처를 주시하고 있었다. 2007년 11월 19일 공화당에서 고용한 비밀 정보원인 로저 스톤은 FBI에 “스피처가 플로리다에서 고액의 콜걸을 불러 즐겼다”는 내용의 투서를 하며, 그 상황을 디테일하게 설명했다. 이때부터 스피처는 감시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실체가 이렇게 뿌리 깊고 거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결국 스피처는 3월 12일에 주지사 자리에서 사임했다. 한때 ‘월 스트리트의 저승사자’로 불릴 만큼 경제 정의를 부르짖었고, 주지사 선거 때는 “나의 임기 동안 뉴욕주는 윤리와 진실성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스피처의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 특히 법무장관 시절 뉴욕주의 여러 매춘 조직에 제재를 가했던 그였기에 배신감은 더 컸다.
스피처가 ‘9번 고객’(Client 9)로 기록되어 있던 ‘엠퍼러스 클럽’은 문을 닫게 되었고, 관련자들은 여성을 매춘 등의 목적으로 주 경계나 국경을 넘게 할 수 없다는 ‘맨 법’(Mann Act)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한편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우던 22세 여성 애슐리 뒤프레는 갑작스러운 유명세를 겪었다. 스피처가 사임한 지 3일 후인 3월 15일 <뉴욕 포스트>엔 그녀의 세미 누드가 실렸고, 2008년 10월 말엔 뒤프레의 마이스페이스 방문자가 1200만 명을 돌파했다. <허슬러>나 <펜트하우스> 같은 남성 잡지는 무려 100만 달러를 제안하며 누드모델을 제안했고, 결국 뒤프레는 2010년 5월 <플레이보이>에 누드를 선보인다. 그리고 그해 4월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선 <9번 고객: 엘리엇 스피처의 흥망성쇠 Client 9: The Rise and Fall of Eliot Spitzer>라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