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토 에밀리아노 은행 금고에 치즈가 가득 차 있는 모습.
이탈리아의 ‘크레디토 에밀리아노’ 은행은 지난 수십 년간 지역 치즈 생산업체에게 치즈를 담보 삼아 대출을 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아무 치즈나 받는 것은 아니다. 치즈 가운데서도 ‘파마산 치즈의 왕자’라고 불리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만 받는다.
이 치즈는 이탈리아 최대 수출 품목 가운데 하나로, 매년 15억 유로(약 2조 2000억 원)의 수익을 내는 귀하디귀한 치즈다. 현재 이 은행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치즈의 가치는 무려 2억 달러(약 2900억 원) 정도. 금고 선반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수만 개의 치즈 덩이가 현금, 다이아몬드, 금 못지않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치즈 대출’은 은행과 치즈 생산업자 모두에게 윈윈 효과를 낳는다. 생산업자는 연 3%의 저금리로 대출을 받고, 또 은행은 이자 외에도 치즈가 알맞게 숙성되도록 관리해주는 비용을 별도로 받는다. 만일 생산업자가 디폴트 상태에 빠진다 해도 치즈를 팔아 수익을 내면 되기 때문에 위험 부담도 낮은 편이다.
이 은행이 치즈 대출을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53년이었다. 당시 지역 치즈 생산업체들의 도산을 막기 위해 처음 시작됐으며, 당시만 해도 치즈 외에 올리브 오일, 프로슈토 등도 담보로 받았다. 하지만 보관이 어렵고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중단했고, 파마산 치즈의 경우에만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까지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까지 치즈 금고에 도둑이 들었던 것은 모두 세 차례였다. 가장 최근에는 570개의 치즈 덩어리를 훔치다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지만 다행히 모두 무사히 회수할 수 있었다.
사실 치즈로 발생하는 이 은행의 수익은 전체 수익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은행 측은 지역 경제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기꺼이 치즈 대출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