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둘째아들 김 아무개 씨는 2007년 청계산 보복폭행 사건 때 도피성 출국을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인 바 있다. 사진은 당시 중국에 체류하던 김 씨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최근 인천지검 강력부(정진기 부장검사)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 아무개 씨가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흡입한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를 포착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외국에 나가 있는 김 씨의 대마초 흡입 혐의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인천지검은 앞서 지난 5월 범 현대가인 성우효광그룹 정몽훈 회장의 장남이자 (주)성우효광의 대주주 정 아무개 씨(28)를 같은 혐의로 구속 입건한 바 있다.
검찰이 정 씨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중 김 씨의 혐의가 포착돼 수사선상에 오른 것이다. 정 씨와 김 씨는 동갑내기 재벌가 자제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각각 공연기획 사업을 벌이면서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0년 정 씨가 기획한 공연에 김 씨가 직접 찾아 격려하기도 했을 정도다.
이들은 지난해 9월 경기 오산의 공군기지 소속 주한미군 A 상병이 원두커피 봉지 안에 숨겨 국제 군사우편을 통해 밀반입한 대마초를 한국계 미국인 브로커 B 씨를 통해 건네받아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와 B 씨는 정 씨와 함께 모두 구속 상태다. 검찰은 또한 정 씨가 B 씨 이외에도 서울의 클럽 등에서 다른 브로커로부터도 대마초를 구입해 피운 혐의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김 씨의 변호인을 통해 소환을 통보하고 귀국을 종용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신병 치료차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측에서는 김 씨가 평소 오른팔 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나 이를 치료하기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항간에서는 김 씨가 근육병에 걸렸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한화그룹 측은 김 씨의 병세에 대해 “아픈 것 같은데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다”고 밝히면서 “김 씨는 한화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하지 않고 있는 인물로 그 분의 개인적인 일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청계산 보복폭행 사건’ 이후로 회사 경영에는 일체 발을 들이지 못 한다는 설명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김 씨가 지난해 그룹 경영기획실 산하에 신설된 디지털마케팅팀장으로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상태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나 한화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 김동관 실장의 제안으로 경영기획실 산하에 새로운 조직인IMC(International Marketing & Communi-cation)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김 씨가 팀장이 아닐뿐더러 김 씨는 아직까지 회사에 입사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그럼에도 김 씨의 출국 시점에 관해서는 한화가 명확히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한화 측은 “언제 출국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며 “대략 지난해 여름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말했다. 김 씨가 공식적으로 대중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8월 16일 아버지 김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다.
보복폭행 혐의로 경찰서에 출두한 김승연 회장. 이종현 기자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김 씨가 정 씨에 대한 대마초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확대 양상을 보이자 지난 4월께 도피성 출국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앞서 김 씨는 지난 2007년 청계산 보복폭행 사건 당시에도 교환학생 신분으로 서울대 동양사학과 학생들과 함께 중국 답사를 명목으로 도피성 출국을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인 바 있다.
이번에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김 씨는 미국 예일대에 재학 중이던 지난 2007년, 한화 김승연 회장에게 보복폭행 사건의 직접적 계기를 제공한 장본인. 당시 이 사건은 재벌 회장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으로 비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김 회장이 가장 큰 애착을 갖고 있는 자식이 바로 이번에 대마초 사건에 연루된 김 씨라는 것은 재계에서도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김 회장은 남자다운 모습 등이 자신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이유로 둘째를 가장 아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장남인 김동관 실장만이 한화의 태양광 사업을 맡으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 회장은 오히려 둘째를 자신의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한화그룹이 자식들을 너무 ‘오냐오냐’ 응석받이로 키운 탓에 끊임없이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에 수사를 받고 있는 김 씨는 보복폭행 사건 이후인 지난 2011년엔 뺑소니 혐의로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 해 2월 어느 날 새벽 자신의 재규어 승용차를 운전 중 접촉사고를 내자 사고 지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차를 버리고 도주를 감행했던 것.
국가대표 승마 선수이자 김 회장의 삼남인 또 다른 김 씨도 지난 2010년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바 있다. 당시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서울 시내의 한 특급호텔 바에서 만취한 채 종업원들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하며 난동을 부린 것으로 드러났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황금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재벌가의 자제들인 데다 한화의 경우 여기에 아버지의 맹목적 사랑까지 더해져 자식들이 사회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올바른 관계 형성에 서투른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대부분 유학 가서 ‘못된 짓’
최근 현대가 3세 정 아무개 씨에서 시작된 대마초 수사가 다른 재벌가 자제들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인천지검 강력부는 이번 대마초 사건에 정 씨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차남 김 씨 이외에 다른 재벌가 2~3세들이 추가로 연루됐는지 조사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추가로 2명 정도의 대기업 자녀가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반인이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중견기업 수준의 자제들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해당 기업이 어디인지는 철저히 보안에 싸여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조사가 ‘재벌가 마약 스캔들’ 수준으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 이번 재벌가 자녀들의 마약 연루 사건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아주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해 12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왕회장)의 손녀도 대마초 흡입 사실이 적발돼 파장을 일으켰다.
‘왕회장’의 막내아들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의 딸인 정 아무개 씨(22)는 지난해 자택 근처의 서울 성북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한 외국인 남성으로부터 대마초를 넘겨받아 인근에 주차해 둔 자신의 차량 안에서 다른 유학생들과 이를 피운 혐의를 받았다. 지난 4월 법원은 정 씨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하며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번에 구속된 정 씨는 6개월 전 사건 장본인 정 씨와 6촌간이다. 이에 앞서 지난 2009년에 발생한 부유층 자녀들의 ‘대마파티’에도 정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의 장남이 포함돼 파문이 일었다. 그는 이번에 구속된 정 씨와 사촌간. 범 현대가로서는 망신살이 뻗칠 정도다.
그렇다면 재벌가 자제들은 어떻게 마약에 손을 대게 될까. 아무래도 통제가 느슨할 수밖에 없는 오랜 유학생활 동안 자연스럽게 이에 노출될 기회가 많았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조심스러운 관측이다. 앞선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재벌가 자녀들의 대마초 사건에는 ‘유학생’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함께 등장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재벌가 자제들은 보통 외국에서도 그들만의 모임을 통해 교우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상황에서 국내보다 마리화나의 심각성이나 불법성에 대한 인식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외국 생활에 길들여지게 되고 관련 경험을 갖게 되면 국내 복귀 후에도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