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만남사이트 윙넷은 AK48 전 멤버 마에다 아쓰코(사진) 등 연예인들을 사칭해 팬들의 돈을 뜯어냈다.
좋아하는 연예인 매니저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메일을 받는다면, 당신은 이를 믿을 것인가. 2012년 가을, 일본 사이타마에 사는 40대 남성은 페이스북을 통해 한 통의 메시지를 받는다. ‘일본의 국민아이돌’로 불리는 마에다 아쓰코의 매니저라고 자칭하는 여성으로부터였다. 메시지는 “마에다가 힘든 연예계 생활로 고민하고 있다. 팬으로서 이해해주는 당신에게 상담을 받고 싶어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여성은 “페이스북으로는 연락하기 곤란하다”며 만남 사이트 이용권을 건네주었고, 해당 사이트에서 마치 마에다와 메일을 교환하고 있는 것처럼 그를 속였다.
남성은 하루에 20~30통씩 ‘가짜’ 마에다에게 답장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남성이 한 가지 간과했던 사실이 있었다. 이 만남 사이트는 메일 수신에 200엔(2400원), 송신에 300엔(3500원)이 과금되는 구조였던 것. 남성은 반년 만에 무려 136만 엔(약 1600만 원)을 썼다.
이 같은 수법으로 일본 전역 37만 명으로부터 116억 엔 이상을 챙긴 만남 사이트 운영자들이 지난 13일 체포됐다. 이들이 사칭한 연예인으로는 마에다 아쓰코 외에도 EXILE, 아라시, 무카이 오사무 등 인기 가수나 배우였다.
무엇보다도 피해자 수가 엄청나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단박에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사건을 접한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은 ‘연예인이라고 덜컥 믿고 사기를 당한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특히 37만 명이라는 숫자가 황당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본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니찬네루(2ch)’에는 “37만 명이라니. 일본에는 어째서 이렇게 바보가 많은가” “오타쿠들은 순진한 건가 어리석은 건가. 이런 우스운 사기에 걸리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탄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이렇게나 많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경시청에 따르면 만남 사이트 직원들의 수법은 꽤나 정교했다. 이들은 인터넷이나 구인광고지를 통해 170명이 넘는 아르바이트를 모집. 오피스텔에 약 50대의 컴퓨터를 설치한 후 교대로 피해자들과 메일을 교환하게 했다. 또 연예인들로 위장하기 위한 샘플 메일을 매뉴얼로 만들어 아르바이트들에게 배포했고, 공식 사이트에서 연예인의 일정을 사전에 확인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가령, 마에다 아쓰코를 사칭하는 메일에는 “악수회가 방금 끝났습니다. 메일주세요”라는 글을 썼는데 실제로 그날엔 마에다의 악수회가 있었다. 스케줄을 확인한 후에 메일을 보내 교묘하게 속이려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열혈팬이라도 속아 넘어갈지 모른다.
연예인 매니저를 사칭한 메시지는 특정 팬클럽을 노려 대량 전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포털사이트에 있는 팬 커뮤니티나 페이스북의 프로필에 적힌 ‘좋아하는 연예인’ 등의 데이터를 활용했다. 사칭 메일에는 “탤런트 ○○○가 연예활동에 대해 고민이 많다”와 같은 형태로 접근함으로써 팬들의 동정심을 자극시켰다.
이렇게 가짜 메일을 팬들에게 대량으로 보낸 이유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유료 만남 사이트로 유도하기 위함이다. 즉 사이트에 등록시켜 돈을 가로채려는 게 목적이었던 것. 지금까지는 단순히 여성의 이름으로 “오늘 밤 만날까요?” 등의 메일을 보내는 게 전부였지만, 이는 곧 스팸메일이라는 게 들켜버리기 때문에 특정 팬을 노리는 전략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기보다는 특정 대상에게서 집중적으로 돈을 우려낸 사기라 하겠다. 여기엔 스타에 대한 무분별한 동경심을 가진 팬들의 경우 속이기 쉬운 일면이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유도된 만남 사이트는 처음에는 무료지만 몇 번 메일을 주고받으면 유료가 된다. 메일 열람은 우리 돈으로 2400원, 송신은 3500원 정도를 과금한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이런 시스템을 잘 모르고 있으며 어느 날 갑자기 비싼 이용료가 청구돼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중에는 청구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속는 피해자들도 있다. “나중에 돈을 보내줄 테니 메일을 계속 주고받자”는 말에 두 번 속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된 사이타마의 남성도 “마에다의 상담을 해 준 사례비로 500만 엔(약 6000만원)을 보내주겠다”는 메일에 속아 만남 사이트 이용료를 반년 동안이나 지불한 케이스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이용자의 돈을 뜯어내는 악질적인 만남 사이트를 ‘사쿠라 사이트’라 부른다. 기존에는 남성을 타깃으로 한 사이트만 있었으나 최근에는 여성을 타깃으로 한 사쿠라 사이트까지 발견돼 그 피해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