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최근 에드워드 스노든이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환승 터미널에 갇힌 채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과거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이유로 오랜 시간 공항 터미널에서 먹고 자는 기이한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다.
#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의 모티브가 됐던 인물이다.
이란 출신으로 1977년 팔레비 국왕에 대한 시위 혐의로 이란에서 추방당했으며,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1986년 유엔난민최고대표사무소로부터 벨기에로의 망명 허가를 받았다. 유럽연합 소속국의 국민은 국경을 넘어 유럽 어느 나라에도 정착할 수 있기 때문에 나세리는 벨기에 대신 어머니의 고향인 영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환승 공항이었던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서 여권과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가방을 분실했다. 영국에 도착했지만 여권이 없어서 입국을 거부당했던 그는 다시 파리로 돌아왔고, 그렇게 비극은 시작됐다. 하루아침에 무국적자 신분이 된 그는 프랑스로 들어갈 수 없는 신세가 됐으며,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한 채 1988년 8월부터 2006년 7월까지 무려 18년 가까이 공항에서 생활했다. 그는 공항 직원이나 승객이 건네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으며, 독서나 경제학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2006년 병을 얻은 그는 프랑스 적십자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게 됐으며, 그 후 파리의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노숙자 보호시설에 기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펑정후
중국의 인권운동가로 2009년 11월 4일부터 2월 12일까지 92일 동안 일본 나리타 공항에 체류했다. 일본에 있는 친지를 방문한 후 상하이로 돌아가려던 그에게 중국 정부가 입국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것. 이유는 그가 천안문 시위 때부터 줄곧 중국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해온 반정부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중국 정부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는 의미로 나리타 공항의 보안구역에 머물면서 1인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앞면에는 ‘납치’ 뒷면에는 ‘불의’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공항을 걸어 다녔으며, 노트북으로 트위터나 블로그에 자신의 공항 생활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전 세계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여론에 밀린 중국 정부는 결국 그의 끈질긴 입국 신청을 받아들였고, 그는 3개월 여 만에 상하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 게리 피터 오스틴
영국의 경마 기수이며, 지난해 12월 필리핀 마닐라의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서 25일 동안 머물렀다. 그는 마닐라 공항에 도착한 후에야 비행기 티켓이 취소된 사실을 알았지만 다시 비행기 티켓을 구입할 돈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공항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공항 의자에 누워 잠을 자거나 승객들과 항공사 직원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의 이야기가 언론에 알려지자 이를 딱히 여겼던 한 관대한 독지가가 비행기 티켓을 사주었으며, 그제야 그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비비 루마다
인도 여성으로 안타깝게도 오만의 무스카트 국제공항에서 5일 동안 생활하다 숨졌다. 여권을 분실한 후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됐던 그녀는 공항의 환승 터미널에 갇혀 지내야 했으며, 정신적 충격을 받은 나머지 망상에 시달리면서 심각한 발작 증세를 보였다. 결국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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