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열린 시드니 바둑대회.
유럽 오픈, 미주 오픈에 이어 새로운 콩그레스가 또 하나 생긴다. 호주바둑협회가 내년 1월 ‘호주 바둑 콩그레스’를 개최한다는 것. 지금 대회 준비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바둑계 동향에 밝은 팬들은 눈치를 채셨을 것이다. 준비의 주축이 우리 교포, 한상대 교수(72)와 신명길 회장(55)이다.
한 교수가 세계바둑계의 명사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1975년에 호주로 건너가 20년을 살면서 시드니대학 교수로 한국학을 강의하는 한편 호주에 한국 바둑의 터를 닦았다. 호주 바둑대회에 열다섯 번 출전해 열두 번을 우승했고, (한 사람이 2년 연속 대표가 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세계대회에 호주 대표로 6번 출전했으며 나중에는 호주바둑협회 회장을 지냈다. 1995년에 귀국해 명지대 바둑학과 등에서 ‘바둑 영어’ ‘서양문화사’ 등을 강의했고 몇 년 전에 호주로 돌아가 요즘 답보 상태인 ‘호주 속의 한국 바둑’을 재건하고 있다. 그의 이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아직 세계에 낯설었던 1960년대, 나이 스물예닐곱 살 때부터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바둑을 갖고 세계 곳곳을 돌면서 각지의 바둑클럽, 바둑인들과 방대한 네트워크를 쌓았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유럽 각국에 ‘한국대사배 바둑대회’를 만들어 냈다. 내년에 열릴 호주 오픈에서는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신명길 회장은 사업가다. 시드니 시내에 대형 식당을 열 곳이나 운영하고 있으며 건설 쪽에서도 잘 나가고 있다. 바둑 실력은 호주 7단. 국제대회에 호주 대표로 출전하는 단골 멤버다. 현재 호주바둑협회 회장이며 호주 오픈을 위해 일단 2만 호주달러, 약 2000만 원을 후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금액이다. 얼마 전에는 호주 교민 사회의 여론을 이끄는 일간지 <호주 동아>를 인수해 교민을 위한 언론 창달에도 기여하고 있다. 일간지가 고전하는 것은 호주도 마찬가지여서 매월 4만~5만 달러 적자인 상황이나 그걸 감내하고 가는 것.
호주 오픈 대회의 의의로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북한 선수 초청이다. 세계가 구경하는 무대에서 남북이 수담을 통해 한 쪽이 부르면 다른 쪽이 화답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는 것. 남북의 바둑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3자를 통하거나 제3국에서였다. 우리가 기획-주최-후원하는 호주 오픈에서 남북이 마주앉는다면 제3국인 것은 여전하지만, 제3자를 통한 것은 아니다. 북한이 초청에 응해 남북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왼쪽부터 대한바둑협회 박창규 사업본부장, 북한 바둑팀 임원, 한상대 교수, 신명길 회장. 오른쪽 사진은 안영길과 그의 팬인 호주의 백만장자 톰 포인튼.
안 6단은 호주에 가기 전, 신예10걸전 같은 기전에서 준우승도 하고 아무튼 성적이 좋았다. 기대주였다. 자질이 우수하니 낯선 땅이라고 해서 못 해낼 리 없다. 호주에는 중국 프로기사도 상당수 있는데, 안 6단은 실력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있다.
연구생 출신으로 20대 중반인 오치민 김은국 임미진도 있다. 임미진은 교포청년와 결혼해 잘 살고 있고 오치민 김은국은 바둑을 잠시 쉬고 다른 공부를 하면서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호주는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열심히 하면 일단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이 되는 나라. 그 다음에 다시 바둑을 계속할지, 바둑은 그저 인생의 반려로만 삼을지, 그건 아직 정하지 않았다.
소개한 청년들은 모두 한 교수가 한국에 있을 때 문을 열었던 ‘영어바둑교실’의 학생이었다. 한 교수는 말한다. “우리 연구생들은, 연구생이 아니고도 바둑 잘 두는 어린 기재들도 많지만, 전부 우수한 아이들입니다. 바둑 아닌 다른 것을 했어도 다들 잘했을 겁니다. 그런 우수한 아이들이 입단을 못해 때로 방황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아이들 전부 호주로 왔으면 합니다. 호주는 크기가 남한 면적의 78배나 되는데, 인구는 불과 2500만 정도입니다. 좁은 땅에서 과열 경쟁하다가 좌절하지 말고, 넓고 여유있는 세상으로 와서 날개를 펴는 겁니다. 호주 콩그레스를 준비하는 데에는 우리 아이들이 와서 처음에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마당를 만들어 놓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그렇다. 그럴 수 있겠다. 입단에 막혀 다소 주춤하고 있는 젊은 기재들에게 호주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교수와 신 회장 같은 사람들이 후견인이 되어 줄 테니 더욱 그렇다.
유럽 오픈의 후반부가 미주 오픈과 일정이 겹치니 두 곳을 다 가기는 어렵다. 그런데 호주 오픈은 1월이니 여름에는 유럽이나 미국, 겨울에는 호주, 그건 정말 환상적이다. 휴가비를 둘로 쪼개는 기술이 필요하겠지만. 요즘에는 아마추어 여성 바둑인들도 유럽 오픈에 많이들 간다. 수원여성연맹 회원들 같은 경우는 거의 해마다 단체로 유럽 오픈 원정(?^^)을 간다. 호주 오픈이 생긴다는 갈 알면 그분들은 더욱 신날 것이다. 호주를 가면 뉴질랜드도 가는 것이니까. 유럽 오픈은 역사와 문명의 발자취, 호주 오픈은 원시의 대자연, 난형난제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