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란 아이디로 대회에 참가한 박정환 9단.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웃음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세돌 9단의 춘란배 실패에 씁쓸해 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이고, 박정환 9단이 TV아시아선수권전에서 이야마 유타 9단에게 패한 것에 충격을 좀 받았던 건 바로 며칠 전인데, 이번에 또 졌으니 그렇다.
일본의 3대 타이틀은 세계타이틀보다 크다느니 하면서 자기들끼리만 논다, 시대 흐름에 맞지 않게 아직도 이틀바둑을 고집하고 있다, 그렇게 진지하게 두면서 왜 세계대회에서는 전혀 힘을 못 쓰는지, 장고 바둑에 길들여져 속기에는 약할 것이다, 등등 일본 바둑은 별로 인정하지 않고 있던 차에 당한 일격이어서 더욱 그랬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많은 기전이 ‘시대 흐름에 맞게(?)’ 속기 대회로 변해 있어서, 속기에는 익숙하고 속기에는 강한 줄 알았는데, 장고 바둑에서 지고 속기에서도 계속 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결승3번기의 두 판을 지켜본 국내외 프로 고수들은 이구동성 “두 판 모두 저우루이양의 완승국”이라고 평한다. 제1국은 박정환 9단이 흑. 초반에 흑은 모양이 좋았고 백은 실리로 달리며 집에서 앞서 나갔다. 이후는 불꽃 튀는 난타전. 공격과 수비가 쉴 새 없이 바뀌었고, 수습과 타개, 패싸움이 꼬리를 물었다. 이 바둑이 얼마나 험난한 판이었는가 하는 것은 수수(手數)가 웅변한다. 바둑은 무려 391수에서 막을 내렸는데, 백을 든 저우루이양이 2집반을 이겼다.
저우루이양 9단
2국은 박정환이 백. 바둑은 175수에서 흑을 든 저우루이양이 불계승을 거두었다. 수수가 1국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단명국이었다. 초반에 백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중반 입구 박정환은 대세점 대신 실리를 선택했고, 저우루이양은 박정환의 대마를 공격하면서 중원을 순식간에 잠실 운동장으로 만들었다.
타개와 수습의 수읽기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권위자 박정환인지라 응원군들은 백이 잠실 운동장에 뛰어 들어가 멋지게 헤집고 나올 것으로 믿었고, 박정환도 팬들이 무얼 바라는지 알고 있다는 듯, 적진 깊숙이 단기 돌입, 붙이고 맞끊고 돌리는 현란한 흔들기를 보여 주었다.
백이 대세점을 방치하고 실리를 탐할 때 “아~ 이건 좀 위험한데요”라면서 심각하게 우려하던 인터넷 해설자 유창혁 9단도 응원에 가세했다.
“그렇습니다. 이제 박정환 9단의 흔들기가 나옵니다. 이래야 박정환 9단다운 거죠. 워낙 이런 부분은 탁월하니까요.”
그러나 저우루이양의 응수에는 공격의 시종, 단 한 번도 빈틈이 없었다. 저우루이양도 강자다. 현재 중국 내 랭킹은 7~10위권이지만 체감으로는 랭킹 1, 2위인 스웨 9단, 천야오예 9단 등과 어금버금하다는 것. 2010년 시즌부터 세계무대에 자주 얼굴을 나타내다가 올해 초 제1회 바이링배 세계대회 우승으로 꽃을 피웠다. 박정환의 격렬한 흔들기에 반면은 요동쳤으나 저우루이양은 예전 전성기의 이창호 9단처럼 흔들리지 않았고, 박정환의 백 대마는 중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함몰했다. 박정환의 대마가 저렇게 허망하게 잡히다니, 바둑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광구 객원기자
우상귀 흑 대마는? 백5로 치중하면 자체로 사는 수는 없다. 그러나 흑6 젖히고 백7 때 흑8로 집어넣는 패가 있는 것.
<2도> 백1로 따내고, 흑2로 팻감 쓰고, 4로 ▲에 따내고, 백5로 팻감 쓰고, 7로 1에 따냈는데, 흑8이 팻감은 팻감이지만 나쁜 팻감이었다. 백9는 흑2 자리 이음. 백11로 팻감을 쓰자, 더 이상 팻감이 없다고 본 흑은 12로 패를 해소하고 백은 13으로 흑 11점을 잡았다. 자체로는 비슷한 크기. 그런데 흑은 8쪽의 넉 점이 잡히는 수가 남은 것.
좌하귀 쪽 흑21, 23은 좋은 끝내기. 다음 24로 젖혀 패를 하는 수가 있고 이건 백의 부담이 큰 패다. 다만 상변 백23 때 이를 외면하고 즉시 24로 젖힌 것이 빨랐다는 것.
<3도> 백1로 막았는데, 흑은 A에 끊지를 못했다. 당장은 팻감 부족이라고 본 것인데, 그렇다면 흑▲ 젖힘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는 것. 흑2, 4로 끝내기를 하고 백5로 따내자 거꾸로 흑이 부담스럽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흑은 ▲를 보류하고 상변 B 자리에 막아 두는 것이 나았으며 그랬으면 흑이 약간이라도 남았다는 것. 거슬러 올라가 <2도> 흑8의 팻감으로도….
<4도> 흑1로 팻감을 써야 했다고 한다. 백4는 어차피 못 받는 것, 그건 실전과 같은데, 흑▲가 살아 있다는 것이 실전과 다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