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 협회장이 바둑수업이 끝난 뒤 어린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바둑강의를 하는 대상은 주로 장애인과 다문화가정의 구성원들이다. 바둑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바둑의 공적 기능,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는 것과 맞물려 이른바 사회 취약층에 바둑을 보급하는 일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정 회장 같은 사람은 그 실천 현장의 선발주자이니 바쁠 수밖에 없다. 8월 2일 금요일, 울산에서 그를 만나 보았다. 강의가 없는 하루다.
“대학에 다닐 때쯤 1급(요즘 식으로 아마5단) 행세를 한 것 같아요.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바둑과 멀어졌던 건데, 잘나가던 시절 다 지나가고 몸이 아프게 되니까 바둑과 다시 만난 겁니다. 인연이라는 게 어쩔 수 없어요.”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06년의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중풍이었다. 병원에서는 몸을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8개월을 입원하면서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의지와 집념 하나로 하루 17시간씩 침대 난간을 붙잡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처음엔 너무 힘들고, 안 되는 것 같았더니만, 어느 날 거짓말처럼 왼손과 왼다리가 움직이더란다. 잃어버렸던 몸의 전부는 아니지만, 절반이 돌아온 것이었다.
퇴원 후에는 재활센터에 나가 운동하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재활센터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있었다. 구경하다 보니 두 자리 급수들 같았다. 훈수를 좀 해 주었더니 바둑 고수로 소문이 났고 하루는 군청 직원이 찾아왔다. 장애인복지회관에서 바둑을 가르칠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바둑교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범위가 빠른 속도로 넓어졌다. 아이들이 왔고, 노인들이 왔고, 양육원에서도 강의 요청이 왔다. 그리고 1년 반 전부터는 다문화센터에도 바둑교실이 생겼다. 동분서주한 보람이 있었다.
“저는 뇌병변장애 3급입니다. 장애도 여러 종류인데, 가령 지적 장애 어린이의 경우, 바둑돌을 교차점에 놓는 데까지 2년이 걸리더군요. 야아~ 무슨 바둑돌 하나 제대로 놓는데 2년씩이나 걸리냐, 그래 갖고 어떻게 바둑을 가르치고, 배우냐,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중요한 건 시간이 걸려도 해낸다는 것이지요.”
중국에서 온 엄마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모습. 왼쪽부터 순치잉, 지위안주안, 리춘밍.
그가 돈을 받는 강의는 이 두 가지다. 나머지는 실비지원-자원봉사다. 중학교와 다문화, 기타 이것저것 합해 그의 한 달 수입은 300만 원 정도지만, 실제는 좀 다르다. 대한바둑협회가 지원하는 교재 이외의 교재와 기자재는 그가 구입하고, 아이들 간식비도 그가 부담한다. 안 해도 그만이지만, 처음부터 돈을 바라고 시작한 것은 아니니, 내 돈을 쓰는 것도 흔쾌하다. 얼마 전에는 보다 효율적인 강의를 위해 ‘거금’을 투자해 노트북과 빔 프로젝트를 장만했다. 다문화가정 바둑교실도, 지원은 8개월, 640만 원 한정이지만, 그는 1년 내내 강의한다. 수강생은 중학교 스포츠 바둑교실이 제일 많아 약 70명이고, 장애인센터 복지관 양육원 등은 20~40명, 여기에다 생활체육회에서 1년에 3~4개월 진행하는 바둑교실 수강생까지 하면 월 평균 500~700명이 그에게 바둑을 배우고 있다.
토요일에 문을 여는 다문화가정 바둑교실에 들어가 보았다.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몽골 필리핀 베트남에서 온 여성들과 아이들이 있다. 한국인과 결혼해 건너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 여성, 재중동포(조선족) 여성은 온 지도 꽤 되었고 생활도 웬만큼 자리를 잡아 엄마와 아이들이 같이 나오는데, 다른 지역은 부모가 모두 일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끼리 온다. 요즘은 휴가철이라 군데군데 빈 자리가 보인다. 그런 중에도 중국에서 온 엄마들은 여섯 사람이나 보인다.
순치잉 씨(36)는 ‘우루무치’에서 왔다. 우루무치에 있을 때는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다. “실크로드!”라고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중국 지도를 그리고는 신장(新彊)성, 위구르 자치구, 칭하이(靑海), 시안(西安) 등을 표시하더니 “한국에서는 5000㎞쯤, 아주 멀다”면서 웃는다. 리춘밍 씨(34)와 왕시얀 씨(30)는 하얼빈, 지위안주안 씨(32)는 내몽고, 진홍메이 씨(40)는 선양(沈陽), 수지잉 씨(35)는 지린(吉林)에서 왔다. 엄마들도 밝고, 아이들도 구김살이 없다.
오후 4시. 숙제를 잘 해오고, 오늘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에게 초코파이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강의는 끝났다. 그는 집이 먼 엄마와 아이들, 혼자 나오는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다준다. 그는 한 손으로 운전도 잘 한다.
“대장 노릇 하기가 쉽나요…^^ 아, 그리고 제 공인 봉사시간이 얼만지 아십니까?… 2500시간이에요. 그런데 그건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이른바 ‘공인 시간’이고, 실제로는 4000시간이 넘는다고 하네요… 내가 바둑을 안 배웠으면 어쩔 뻔했나, 요즘 특히 그런 생각이 자주 듭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바둑 말고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없는 것 같아요…^^.”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