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공안’과 ‘신 공안’의 대표주자격인 두 인물을 청와대 핵심 참모로 발탁함에 따라 정치권과 검찰 안팎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야권에서는 이들 두 인물의 과거 검사 시절 전력을 거론하며 강한 거부감을 표하고 있다. 실제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김 비서실장 임명 소식이 알려지자 “유신 공안의 추억, 한여름 납량특집 인사”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김기춘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홍경식 민정수석.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인사를 통해 청와대 비서실장-민정수석-법무부 장관 등 청와대 비서진과 주요 사정라인을 모두 ‘공안통’ 검사 출신으로 채워 넣었다. 경남 거제 출신으로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 비서실장은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이다.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검사 재직 당시(중정부장 특별보좌관) 1974년 8월 박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내면서 이름을 알렸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도 참여했고 이후 유신헌법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과 대통령 법률비서관,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 공안관련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국민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특유의 ‘공안감각’을 발휘해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법무부장관 재임 때 부산지역 유관 기관장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조성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한 ‘초원 복국집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홍경식 민정수석은 검찰 재직 시절 형사부와 공안부, 기획 업무 등을 두루 경험한 ‘신 공안’이다. 홍 수석은 1999년 서울지검 공안1부장 시절 국가정보원의 언론장악 시나리오를 담은 ‘언론대책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이종찬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수사를 맡기도 했다. 대검 공안부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엔 17대 총선과 관련한 선거사범을 수사하면서 현역 국회의원 보좌관과 선거브로커 등 170여명을 적발하고 부정선거운동 관련자 200여명을 입건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공안통 검사들을 참모로 기용하면서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유신헌법에 관여한 경력에서 말해주듯이 국가관에 ‘물음표’를 던지는 인사가 많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검찰 내부에서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인물이 초원 복국집 사건과 같은 헌정질서 문란 사건에 연루됐었다는 점에서 이번 발탁은 의외”라며 박 대통령의 인사 배경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검찰총장보다 사법연수원 여섯 기수 선배이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56·사법연수원 13기)보다 다섯 기수 선배인 홍경식 변호사를 민정수석에 앉히면서 검찰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민정수석-법무부 장관 등으로 이어지는 ‘공안통’ 검사들의 입김에 검찰총장의 입지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MB정부 시절 이명박 대통령은 최측근인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60·사법연수원 10기)을 민정수석에 기용했다.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58·사법연수원 11기)은 민정수석에 비해 사법연수원 한 기수 후배였지만 검찰 수사라인에 대한 권 전 수석의 ‘입김’은 상당했다. 권 전 수석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것도 작용했겠지만 사법연수원 기수 서열을 엄격하게 따지는 검찰문화도 이 같은 현상의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일선 검사들은 김 비서실장과 홍 수석이 검찰 수사에 ‘사사건건’ 개입하며 현 정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수사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실제로 곽상도 민정수석(54·사법연수원 15기)이 정권출범 6개월 만에 경질된 데는 곽 수석이 검찰 수사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잇따른 인사 실패를 겪으면서 검증 업무와 관련한 문책성 인사 성격도 띠고 있지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62) 등 국정원 정치·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곽 수석은 ‘강골 특수통’ 채동욱 검찰총장과의 의견조율에 실패하자 일선 수사 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니들 뭐하는 거냐, 무슨 수사를 그따위로 해”라며 막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검찰이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법 위반 혐의 외에 대선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을 적용하게 되면서 박 대통령 당선에 대한 정당성 논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그 책임이 모두 곽 수석에서 쏠리게 된 셈이다.
박 대통령이 김 비서실장과 홍 수석을 전격 발탁한 배경도 검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사건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진행 중인 4대강 비자금 사건, CJ그룹 정·관계 로비 의혹 등 정치적 휘발성이 큰 사건들로 인해 정부와 여당이 타격을 입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복안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가 채동욱 검찰총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수도권의 한 검사는 “향후 진행과정을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검찰에 대한 청와대의 통제 강화는 불 보듯 뻔하다”며 “청와대가 각종 수사에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역풍이 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사는 “공안 사건과 달리 특수수사는 기업 비리에서 출발해 수사를 하다보면 여당, 야당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특성이 있다”며 “수사 단서가 포착됐는데 그걸 억지로 막으려 한다면 채동욱 총장을 중심으로 한 특수통 검사들이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내부에서는 제2의 ‘검란’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8월 중에 있을 정기인사에 주목하고 있다. 통상 8월 인사는 평검사를 위주로 한 소폭 전보인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번 청와대 인사와 연결 지으면서 검찰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검사장급에 대한 ‘깜짝’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검사장급 인사를 하게 될 경우 채동욱 총장 주변 인물을 정리하는 목적이 될 것이고 이 경우 채 총장은 더욱 고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8월 인사에서 검사장급에 대한 인사이동이 있을 가능성이 현재 높은 상황은 아니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며 “만약 검사장급도 대상에 포함된다면 검찰과 청와대의 긴장관계는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반대로 홍경식 민정수석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식물 수석’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홍 수석은 검찰 재직 당시 꼼꼼한 업무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까지 신경을 쓰다 보니 ‘큰 그림’을 읽고 구상하는 데 약점이 있다는 의견이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한발 앞서 검찰에 ‘액션’을 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홍 수석은 검찰에서 검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별명이 ‘홍 주사’ ‘홍 반장’이었다”며 “너무 세세한 것까지 연연하는 특유의 성격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홍 수석과 채 총장 모두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라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