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규탄 촛불집회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대선의 공정성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될 경우 박근혜 정권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받을 전망이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먼저 국정원 고유 업무 영역에 대한 논란을 보자. 이는 검찰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결과에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검찰은 지난 6월 1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모두 기소했는데 그 혐의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검찰은 두 사람 모두를 국정원법 위반과 경찰공무원법 위반 등 개인의 영역에서 일어난 위법 사실뿐 아니라 공적영역인 공직선거법까지 위반한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이번 사건의 정치적 확전을 우려하는 청와대와 조율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에 반대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끝까지 기소를 관철시켰다. 검찰이 국정원의 댓글 사건을 원 전 원장 지시에 의한 ‘대선 개입’으로 명확하게 규정한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국정원이 대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원래 심리전단은 인터넷에서 대북 심리전을 하는 게 고유 업무다. 하지만 이번에 밝혀진 것을 보면 국정원 직원들이 국정원 청사에서 버젓이 대선 개입 활동을 한 사실이 드러났고, 심지어 국정원 직원의 댓글 작업에 가담한 민간인에게 거액의 활동비까지 지급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정원 심리전단 일원인 여직원 김 아무개 씨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댓글 작업을 하다가 민주당에 의해 ‘적발’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일부 공개된 검·경 수사기록을 보면 이들은 국정원 본부청사에서도 댓글이나 게시글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국정원 청사 안에서 인터넷 게시글 찬반 활동을 통해 박근혜 후보 반대 글이나 문재인 안철수 후보 지지 글에 반대 버튼을 누르는 등의 대선 개입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정원이 자신들의 청사를 특정후보의 선거 사무실로 이용한 셈이다.
특히 공개된 수사 기록에는 국정원 활동을 도운 민간인의 자금 출처도 나타나 있다.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작업을 도왔던 민간인 42세 이 아무개 씨는 특별한 직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가 누군가로부터 정기적으로 돈을 건네받았다는 것이다.
13일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정청래 야당 간사와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청문회 불출석 의사를 밝힌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핵심 증인들의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이 씨의 계좌에 지난 2011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35차례에 걸쳐 모두 9200여만 원이 입금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또한 대북 심리전 용도의 국민 세금을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자금으로 쓴 셈이다. 특히 경찰은 “(이 씨가) 국정원으로부터 정보원 비를 교부받아 제2, 제3의 공모자들에게 재교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적시하고 있다. 심리전단 요원이 70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1인당 수 명의 ‘정보원’들을 관리한다고 가정할 경우 수십억 원의 국정원 활동비가 특정 후보 선거자금으로 불법 사용된 셈이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국정원이 거액의 자금을 동원해 국정원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특정후보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 씨는 새누리당 A 의원과 대학동문인 것으로 알려져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새누리당과도 연계돼 있을 개연성도 있다.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은 지난 14일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회의에서 “당시 국정원의 모 팀장이 김 씨(국정원 여직원)와 민간인 이 아무개 씨라는 사람을 연결시켜줬다. 그런데 이 씨는 새누리당 모 의원과 같은 학교 동기로서 2004년 총선 때 선거캠프에서 기획업무를 했던 인물”이라고 밝혔다.
A 의원은 재선으로서 국회에 입성하기 전 당 사무처에서 오랫동안 일한 전력이 있다. 그때 당시 A 의원은 인터넷 관련 활동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이력을 발판으로 2004년에는 디지털정당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고, 그 후에도 인터넷 관련 기관의 수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 A 의원이 공교롭게도 이번 댓글 사건의 핵심 인물인 앞서의 이 씨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출신에다 이전에도 같이 일한 적이 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게 이상규 의원의 주장이다.
특히 새누리당은 사이버여론조작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는 수많은 댓글 알바 조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30여 명의 알바를 동원해 댓글을 조직적으로 다는 등 사이버여론조작 활동을 한 것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킨 적도 있다. 한나라당을 계승한 새누리당이 그동안 쌓아온 사이버여론조작 노하우를 국정원의 댓글 작업 과정에서 공유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런 정황 때문이다.
16일 열린 댓글 사건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원세훈 전 원장(왼쪽)과 김용판 전 청장은 모두 대선 개입 의혹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이종현 기자
국정원이 다른 소스를 통해서도 댓글 작업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는 의혹도 나온다. 최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국정원 댓글의혹 사건 국정조사에서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외부 인사를 초청, ‘댓글을 효율적으로 작성하는 법’에 대해 강의까지 듣는 등 조직적으로 정치개입 활동을 했다”는 주장을 했다. 그는 “지난 2011년과 2012년에 댓글을 어떻게 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냐를 (국정원 직원들에게) 강의하기 위해 (보수 논객인 미디어워치 대표) 변희재 씨 등이 국정원에 강사로 갔다는 사실을 제보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박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최근 댓글을 단 민간인에게 국정원 자금이 흘러들어간 의혹이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결국 국정원 심리전단이 헤드쿼터(사령부) 역할을 했으며, 지금까지 경찰이 찾은 댓글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고 밝혔다.
이런 국정원의 조직적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야당의 장외투쟁은 더욱 공세적으로 변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국정원의 대북 심리전 활동비가 대선 댓글 활동비로 지급된 것은 지금까지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특정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국정원 예산까지 쓴 것은 심각한 국정농단 사안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자리를 잡은 국정원 주류들이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상하지 않았겠느냐. 조직안정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보수 성향 정권이 ‘재선’되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장난을 쳤을 수 있다. 국정원 일부 간부들이 댓글 작업을 통해 박근혜 후보에게 줄 대기를 한 것은 아닌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을 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의 TV 토론회에서 “댓글 사건이 사실이 아니면 문 후보가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며 공세적인 대응을 한 바 있다. 하지만 국정원 댓글 사건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쪽으로 사건의 실체가 굳어지고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명백한 사실로 밝혀질 경우, 문재인 후보에게 책임을 물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뭐라고 할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