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샤오 4단(왼쪽)이 최철한 9단을 몽백합배 16강전에서 꺾었다.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중국 기사들은, 특히 젊은 기사들은 대부분 하루 종일 바둑 공부를 합니다. 밥 먹고 하는 일이 공부인 거죠. 같이 연구하고, 같이 놉니다. 우리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충암연구회 같은 것이 있었지요. 말하자면 한국 바둑의 싱크 탱크였지요. 그 연구와 열정으로 중국을 이겼습니다. 지금도 연구회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그 모습은 아닙니다. 연구하지 않는 자가 연구하는 자를 이길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중견 프로기사 K 9단의 지적이 날카롭다.
“우리 기사들은 바둑 말고도 할 일이 많아진 거다. 예전에 공식 대국 제한시간이 서너 시간이었을 때, 우리는 최선의 작품, 완벽한 기보를 생각하며 바둑을 두었다. 늦은 시간 대국이 끝나면 따로 뭐 할 일이 없었다. 연구도 같이 하고, 볼링을 쳐도 같이 치고, 술을 마셔도 같이 마셨다. 같이 어울리다 보면 놀거나 술을 마시거나 할 때도 어쩔 수 없이, 바둑이 화제가 되곤 했다. 그런 게 다 알게 모르게 자양분이 되었을 것”인데, “요즘은 대국도 대개 속기여서 일찍 끝나면 뿔뿔이 각자의 일을 찾아 헤어진다”는 것이다.
“가령 좀 조심스러운 얘기이긴 하지만, 이세돌 9단 같은 선배 강자가 연구의 분위기를 이끌어 주면 제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9단이 너무 바빠서 어렵다면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이 해 주면 좋지요. 아, 원성진은 군대 가 있으니 어렵겠군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네요. 그렇다고 이세돌 9단이나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 9단에게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잘나가는 선배들이 분위기를 만들고 후배들을 독려해 준다면 바랄 나위가 없지만, 문제는 누가 방울을 다느냐는 것이다.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고 하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얘기하는 것은 난센스겠지요. 강요할 수도 없고…. 우리나 일본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무튼 좀 더 두고 볼 수밖에요. 뭔가 반전의 계기 같은 것이 생긴다면 다행이고요.”
최철한 9단은 요즘 중국리그에서는 펄펄 날고 있다. 최근 8연승이다. 그런데 세계대회에서는 기대에 좀 못 미치고 있다.
“최 9단만이 아니라 중국리그에 참가하는 기사들 입장이라면 그것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리그는 매판이 승부고, 한 판 이기면 천만 원대의 대국료를 받으니까, 신경이 더 쓰일 수도 있겠지요.”
이광구 객원기자
몽백합배 16강전 흑 렌샤오 4단 / 백 최철한 9단
<1도>는 바둑의 출발 모습이다. 한-중 젊은 기사들의 연구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실례로 들어보았다. 흑5의 걸침에 백6 같은 ‘먼 협공’과 흑7 같은 ‘길게 뛰기’가 이른바 트렌드. 스타일리시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얼마 전에는 <1도> 백6으로는 <2도> 백1처럼 한 줄 좁혀 협공을 했고, <1도> 흑7로는 <2도> 흑2처럼 한 줄 멀리 갔단다.
다음 백3의 날일자에는 흑4, 6으로 붙이고 이단젖혔고, 백은 5에서 7, 9로 흑6을 잡았다. 계속해서 흑은 <3도> 흑1에서 3으로 치고 올라오고, 백6에는 7로 씌워 9로 두들긴 후 11로 잇고, 백12에는 흑13에서 15, 17로 드리블하며 좌변을 돌파하는 진행이 나타났다. 백은 이게 싫은 것.
흑17 다음 백A로 따내면 흑B의 단수가 아프고, 백B로 내려서면 이번에는 흑C의 단수가 아프다. 그리고 그것보다 다 아픈 것은 백가 폐석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1도>가 개발되었고, <1도> 흑9 때는 <4도> 백1, 3을 선수하고 5로 협공했는데, 이건 또 모양을 너무 일찍 결정해 백이 스스로 운신의 폭, 작전반경을 좁힌 꼴이라 해서 백1, 3을 생략한 채로…
<5도> 백1로 협공하는 진행이 개발되었고, 이건 다시 <6도>로 대체되었다. <5도> 백1, 3보다는 <6도> 백1, 3의 자세가 좋다는 것이며. 이번에는 흑이 또 이게 싫어 <1도> 흑11로 붙여간 것.
<7도>는 <1도> 이후의 실전진행. 흑4로 붙여 누를 때 백5로 끼운 것은 익혀둘 만한 수법. 그냥 <8도> 백1로 젖히면, 백은 일단 여기를 젖혀 나가야 하는데, 흑2로 끊겨 곤란하다는 것. 백3의 한 방은 기분 좋지만, 다음이 없다는 것이다.
연구의 공방이 불꽃을 튀긴다. 모르면 지고, 늦으면 도태된다. “우리 바둑계, 행정의 컨트롤 타워도 필요하지만, 연구의 컨트롤 타워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광구 객원기자